AI 시대와 대금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AI는 친숙한 주제입니다. 일상의 많은 것에 이미 AI가 접목되어 있으니까요. 상담사를 대신하는 AI 챗봇, 지브리 스튜디오풍의 그림을 그려주는 챗 GPT 그리고 요즘에는 쇼핑몰 리뷰도 AI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대금이라는 악기는 어떨까요? 어? 웬 대금?이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이 더 많으실 것 같습니다. 대금이랑 AI랑 무슨 상관이지?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대금이라는 전통악기는 국악 전공자 혹은 애호가가 아니면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엄밀히 말하면 애써 찾지 않으면 접할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제가 대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단 하나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가 대금에 꽂혔기 때문입니다. 저는 국악에 무지한 한 사람으로 아이의 관심과 선택이 놀라웠습니다. 서울특별시 양천구에서 지난 5월에 진행된 Y 교육박람회의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의 부스에 클릭된 저의 아들은 삽시간에 국악에 빠져들었습니다.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국악에 생소한 1인이지만 예술인으로 살아가는 저는 '이게 무슨 일이지?'라는 생각과 함께 잠시 아이를 말려보려고 하다가 '내가 무슨 주제라고 애의 취향과 흥미를 내가 정하고 조절하나? 일단 내버려두어보자.'라고 결정을 하고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흥미는 아이의 집중력을 초능력에 가까운 정도로 끌여들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아이 스스로 한 선택'이라는 것과 '태어나고 자라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국악이라는 장르는 국악을 즐겨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오히려 서양의 클래식과 K 팝 음악이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집안에 클래식 음악을 CD 플레이어에 재생시키는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고 청소년기에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졸린 눈을 비비며 등짝을 꼬집히면서 클래식 콘서트를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다녔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클래식 음악에 많이 노출되었고 또 잦은 빈도로 학습한 케이스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해하는 클래식은 '작곡가가 생존한 시대는 이러한 격변기였고 그래서 작곡가는 아래와 같은 감정을 담아 곡을 썼다.'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음악을 듣고 '아~멋있다! 혹은 감명 깊다!'라는 반응을 했습니다.

반면 국악에 대해 생각해 보면 국악에 대해 배운 적은 초등학교 시절 단소와 중학교 시절 장구 수행평가가 전부일뿐 그 내용을 깊이 배워본 기억이 아득합니다. 아마도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음악 이론 수업으로 국악에 대해 아주 간략하고 피상적으로 배우고 암기 위주의 시험을 보고 그 내용을 모조리 잊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제가 발견한 아주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국악에 대해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음악을 들었을 때 어느 정도는 이해가 자연스럽게 된다는 점입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지 않았어도 그 누군가 옆에서 설명해주지 않았어도 국악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그 끄덕임의 시작은 '어딘가에서 나도 모르게 들어보았다.'일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타는 지하철에서 나오는 환승음 '풍년'과 '얼씨구야'를 아십니까? 짧은 순간 스쳐가는 곡이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저 지나가버리기 일쑤입니다. 서울지하철의 환승음 '풍년'과 '얼씨구야'는 가야금 등 다양한 국악기로 연주된 국악입니다. 특색 있는 음정과 리듬감으로 외국인들에게는 굉장히 이국적으로 들릴 테지만 매일같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서울시민들에게는 특별히 인지 하지 못하는 무의식에 가까운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를 대금으로 되돌아가자면 이 악기의 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곡이 '청성곡'입니다. 그리고 이 '청성곡'을 우리는 어디서 들어보았냐, 바로 '전설의 고향'입니다. 이제 대금의 소리가 대강 머릿속에서 그려지십니까? 구미호가 등장하거나 흰색 소복을 입은 귀신이 등장할 때 그 뒤에서 아련하게 들리던 곡이 바로 대금의 소리입니다. 사실 '청성곡'의 청성은 높은 음역대로 연주되는 맑은 소리를 뜻합니다. 귀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설의 고향이 1970년대부터 TV에서 방영된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호러물이라면 그 배경음악으로 연주된 대금은 자그마치 신라시대 때 탄생한 악기입니다. 대금은 전설의 고향만큼 인상적인 악기의 탄생 설화도 가지고 있습니다. 신라시대 신문왕(682년)은 만파식적이라는 세상에 온갖 파란을 없애고 평화롭게 하는 피리를 불었다고 전해지는데 이 피리가 바로 대금의 원류라고 합니다. 이 연도를 역산해 보면 대금은 한반도에서 연주된 지 약 1300여 년이 된 아주 오래된 악기입니다. 문무왕이 통일신라를 완성하고 그다음 왕으로 재위한 신문왕은 이제 막 통일이 된 삼국을 하나 되게 하기 위해 만파식적이라는 신비한 설화가 그의 안위를 위해 필요했을 것이며 또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진 삼국을 음악으로 통합하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파식적의 이야기를 두고 삼국사기를 작성한 김부식은 괴이하여 믿을 수가 없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대금이 한반도에서 연주되기 시작한 이래로 수많은 왕조가 한반도에서 탄생하고 사라졌습니다.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에 이른 유구한 세월 동안 대금은 분명 조금씩 변화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변해도 대금은 사람들의 입과 손을 통해 전승되어 연주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AI 시대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바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의 65%가 종국적으로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컴퓨터에 입력하여 처리하던 많은 프로세스들을 AI가 순식간에 처리하게 되면서 그 일자리들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다른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과연 그러면 AI 시대에 국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대금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저는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통일신라 시대부터 전해져 온 대금은 AI 시대라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선 자연의 소재인 대나무로 만들어지는 대금은 장인의 손을 통해 제작되고 다듬어집니다. 해마다 다른 기후 속에서 성장을 달리하는 대나무를 일률적으로 기계가 다듬어 소리를 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연습용으로 사용되는 플라스틱 대금이야 지금도 기계로 제작하겠지만 연주용인 대나무 대금은 자연과 인간의 손을 거쳐 탄생됩니다.

몇 백 년간 그 명백을 유지한 국악이 AI시대에 사라질 것인가? AI의 힘을 빌려 곡을 일부 창작은 할 수 있겠지만 한민족의 핵심정서인 '한'을 과연 AI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은 AI가 이해하기엔 너무나 오래되고 복잡하며 동시에 인내가 수반되어야 하는 총제인 감정입니다. AI가 한국사람처럼 많이 참고 살 것인가? 이는 확실히 아닐 것 같습니다. '한'을 연주하는 음악 장르인 국악은 어쩌면 지독하게도 아날로그적이면서 한국적이기에 AI의 영향을 적게 받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AI시대에는 분명 많은 것들이 변화할 것입니다. 지금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의 진학과 취업 그리고 삶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의 것과는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변화의 물결이 시작된 이 시기에 저는 저의 아이가 오랜 시간 한반도에서 생존하고 연주되어 온 악기를 선택한 것에 적지 않은 안심을 하곤 합니다. 스마트폰이 가져온 변화를 사용하기 이전에 우리가 예측할 수 없었듯이 AI가 일상에 만연해진 사회의 총체적인 변화를 지금 현시점에서 그려보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국악과 대금은 AI 시대에도 고유의 모습을 상당히 유지한 채 변화의 시대에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저는 경복궁, 종묘, 수원화성 등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은 소나무와 한 세트처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유적지들의 건축적인 미와 조형적인 선을 완성하는데 소나무의 자연스러운 굴곡은 빠질 수 없는 자연적인 요소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공간의 틈을 자연스럽게 채우는 것이 국악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나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문화를 재발견하는 것도 삶의 재미인 것 같습니다. 저는 마띠에르가 두꺼운 서양화가 좋아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지만 서른이 넘어서는 화선지 위에 여백이 넉넉한 한국화가 자연스럽게 좋아졌고 마흔이 넘어서는 자식 덕분에 국악이 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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