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로운 보물지도'의 테마는 자신의 삶에서 인상 깊은 추억의 장소를 그리기입니다. 회화 장르로 치면 '풍경화'에 해당하는 작품이겠죠.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영감을 받은 ‘상서로운 보물지도'는 한국화풍의 그림을 그리는 프로젝트입니다. 우리가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해본 풍경화 그리기는 8절 혹은 4절 도화지에 수채화 물감으로 그려본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수채화 물감이 물을 만나 번지는 효과가 신기하여 물을 더하여 옅은 물감색을 조색하면서 도화지의 보푸라기를 만들어내 본 경험을 다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한국화 그리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우려되는 점이 하나 있다면 ‘한국화 작업 자체가 낯설어서 과연 제대로 작품 창작이 될 것이냐’입니다. 화선지는 아무래도 도화지보다 훨씬 물감이 스르륵 자연스럽게 번질 것이고 먹물의 농담을 조절하여 윤곽선을 그리는 작업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몇십 년 만인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타고난 한국인의 얼로 한국화를 일필휘지로 완성할 것인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서양화에서의 풍경화와 한국화에서의 풍경화를 비교해보고자 합니다. 오르세미술관전, 루브르박물관전, 대영박물관소장전 등 국내에서 진행된 굴지의 박물관 소장전을 방문해 보신 분들이라면 풍경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연상되는 작품 이미지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연두와 초록이 빚어내는 색채의 향연, 푸르름과 자연광의 조화, 간혹 등장하는 인물 등 전형적으로 떠오로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반면 한국화의 풍경화, 즉 산수화는 어떤 스테레오 타입을 가지고 있을까요? 거대한 바위와 깎은 듯한 절벽과 그 사이의 폭포 그리고 마치 개미처럼 작게 그린 사람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본 서양의 가치관과 다르게 동양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조화를 이루는 삶을 이상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한국화에서의 인물은 만물의 영장이 아닌 자연을 구성하는 작은 요소로 등장합니다. 즉,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 비칩니다. 또 하나 한국화에서의 흥미로운 점은 작품 속에 소장가나 작가의 글이 작품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적힌다는 점입니다. 이는 서양화의 풍경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지요.
한 예로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Weekly 겸재 정선>이라는 브런치북에서 소개한 작품 중 하나인 금강전도는 겸재 정선의 대표작입니다. 금강산의 봉우리를 하늘에서 마치 새가 내려다본 것처럼 하나의 시각으로 표현한 이 그림의 좌측 상단에는 '금강전도'라는 제목이 적혀있고 우측상단에는 60글자의 비문이 적혀있습니다. 이 기문에 대해 겸재 정선이 직접 작성했다고 오래 기간 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왔지만 강관식 교수님(한성대학교 회화교 교수,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및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 활동)은 겸재 정선의 본인이 아닌 후대의 소장가들이 작품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훗날 더했다는 분석을 제시하셨습니다. 실제로 한국화의 경우 작가가 작품의 일부에 자신의 글을 남기기도 하지만 소장가들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 작품의 해석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소장가에 따라 해석이 변화하는 역동성을 가지기도 합니다.
한 화폭에 그림과 이에 대한 글이 함께 있는 한국화의 구성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에 좋은 구성입니다. 작가가 남긴 글을 보고 작가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도 있으며 시대가 흐른 뒤 소장가가 남긴 글을 통해 해당 시대에서 바라본 새로운 맥락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했던 우리의 선조들은 작품을 대할 때도 시대에 따른 해석의 여지를 남긴 것 같습니다.
‘상서로운 보물지도'의 한국화 작업도 이렇게 풍경과 글을 함께한 구성으로 진행합니다. 추억이 담긴 장소를 한국화의 필치로 묘사하고 그에 대한 글이 간략하게 작품 상단에 적어 감상하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 창작자에게는 추억의 장소를 작품화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각자의 추억을 은은하게 담은 동시대적인 한국화 작업을 상상해 보며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