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물방울 화가의 더 깊은 지난 이야기들

물방울 화가로 잘 알려진 김창열(b.1929) 작가의 회고전 <김창열>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025년 8월 22일부터 12월 22일까지 진행됩니다. 저는 어제 폭우를 뚫고 전시장에 다녀왔습니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의 유작들을 보기 위해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뚫고 가다 보니 왠지 모르게 심적으로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 오는 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저는 1990년대 김창열 작가를 저희 어머니의 한복 치맛자락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김창열 작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대중적인 인기와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면서 급기야 여인네들의 한복 치마에 물방울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 회화를 굉장히 좋아하셨고 추석을 맞이하여 작은 어머니들과 함께 물방울이 그려진 한복을 맞추셨습니다. 물론 저희 어머니의 한복 치마의 물방울 그림은 모작입니다. 고운 연두 빛깔의 한복 치마에 그려진 백색의 물방울과 좀 더 짙은 초록빛을 띤 저고리는 저희 어머니와 매우 잘 어울렸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제 눈에도 물방울은 영롱한 형상을 가진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였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저는 미술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되었고 2007년 KIAF에서 영어 도슨트를 하게 되면서 다시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 회화와 조우하게 됩니다. 당시 한국의 미술시장은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국내의 유명갤러리들이 너도나도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 회화를 매물로 내놓았습니다. 미술시장에서 만난 김창열 작가의 작품들은 크고 작은 물방울이 캔버스 위에서 또르르 굴러 내릴 것처럼 매우 사실적이었습니다. 고가의 작품가도 놀라웠지만 크고 작은 사이즈의 극사실적인 물방울 모티브와 캔버스 가장자리를 빼곡하게 매운 한자의 조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025년 9월의 비 오는 어느 날, 저는 유년 시절 어머니가 명절마다 즐겨 입으셨던 물방울무늬가 그린 한복치맛자락을 생각하며 전시장에 찾았습니다. 비로소 그림 속의 물방울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되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물방울의 의미를 기록했습니다. "6.25 전쟁 중에 중학교 동창 120명 중 60명이 죽었고, 그 상흔을 총알 맞은 살갗의 구멍이라고 생각하며 물방울을 그렸다. 근원은 거기였다." 평안남도 맹산 출신으로 15세에 홀로 월남을 한 김창열 화백은 해방, 분단, 전쟁이라는 대한민국 근현대 역사의 격변기를 온몸으로 겪게 됩니다. 아마 이 시기에 혈혈단신으로 생존하면서 고난을 몸소 이겨내는 법을 체득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의 물방울은 단지 아름다움을 표상하는 모티브가 아닌 실존의 의미를 담고 있는 상징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에 김창열 작가는 <제사(rite)> 연작을 제작합니다. <제사> 연작은 1950년대 후반부터 김창열 작가가 주축이 되어 이끈 앵포르멜 운동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앵포르멜 운동은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유행한 추상미술운동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 말 한국 화단에서 활동하던 젊은 작가들 위주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혼재되어 수용되면서 전근대적인 사회 체계와 국전에 대한 저항정신의 일환으로 표출됩니다. 김창열 작가는 앵포르멜 운동을 리드하던 작가로 앵포르멜을 단순한 양식이 아닌 전쟁의 흔적과 고통스러운 절규를 캔버스 위에 표현함으로써 자신만의 제의를 치르게 됩니다.



제사(rite), 1964, 캔버스에 유화, 180x325cm, 개인소장



1965년 김창열 작가는 김환기 작가의 권유로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뉴욕으로 건너갑니다. 당시 뉴욕은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예술가들은 뉴욕이라는 자본주의의 꽃이 주는 열정적인 에너지에 매료되어 이 도시를 찾게 됩니다. 그러나 김창열 작가는 소비사회에 정서적으로 큰 이질감을 느끼게 되었고 회의감을 갖게 됩니다. 또한 그가 한국에서 정진해 온 앵포르멜 회화도 뉴욕에서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김창열 작가의 작품은 뉴욕시기에 유의미한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기존의 두껍운 질감과 추상적인 형태의 작품들이 매끄럽고 정제된 화면으로 바뀌고 기하학적인 모티브가 등장하게 되면서 옵아트를 연상시키는 반복적인 화려한 패턴과 컬러가 작품에 나타나게 됩니다.


구성, 1969년,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셀룰로스 라커, 162 x 136cm, 개인소장



1969년 김창열 작가는 파리로 거쳐를 옮기게 됩니다. 넥타이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뉴욕에서의 삶처럼 파리에서의 생활도 녹녹지 않았습니다. 파리 외곽 팔레조의 마구간을 작업실로 사용하며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나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물방울 회화가 탄생하게 됩니다. 캔버스를 재사용하기 위해 뿌려둔 물이 맺힌 것을 본 순간, 그 물방울을 통해 완성된 형태의 충만함을 발견합니다. 1960년대 서울에서의 앵포르멜 운동과 뉴욕에서의 조형적인 변화가 한데 어우러져 마침내 매끄러운 캔버스 표면 위에 실존의 의미를 담고 있는 물방울 모티브가 작품 속에 등장합니다. 이어서 1973년 Knoll International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뒤 김창열 화백은 드디어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회귀, 1991년, 마에 먹, 유화물감, 300 x 19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회귀, 2013년, 리넨에 아크릴 물감, 유화물감, 200x500cm, 개인소장


물방울, 1993년, 브론즈, 유리, 54 x 50cm, 개인소장



1980년대에 이르러 김창열 작가는 본격적으로 화면에 문자를 도입합니다. 5세부터 조부로부터 천자문을 배웠던 유년기의 기억이 작품과 관계 맺게 되면서 천자문을 도입한 <회귀> 연작이 제작됩니다. 캔버스 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천자문은 세계를 이해하는 관문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기반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천자문의 세계와 작가의 예술적 상징인 물방울이 만난 탄생된 작품들은 단순히 물방울이 시각적으로 반복되는 그림이 아닌 삶과 예술을 관통하는 한 편의 시로 다가옵니다. 전시를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대한민국에는 김창열 화백처럼 대한민국 역사의 격변을 관통하며 온몸으로 고난을 이겨내는 법을 체득하여 생존한 화가는 없겠다." 물방울 회화는 단순히 영롱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 뒤에는 수많은 고통과 삶에 대한 통찰력 있는 질문과 그에 대한 김창열 작가만의 답이 담겨 있는 예술적인 총체였습니다.


'고난을 이겨낸 화가'는 미술사에 등장한 수많은 화가들에게 사용된 관용구입니다. 정말 클래식한 클리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난이 허락하는 깊은 사유와 통찰을 통한 한 줄기의 빛과 같은 시각적인 형상은 일반적인 화가와 대가를 구분하는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요즘에는 많은 작가들은 캔버스 위에서 쾌락, 상실, 우울감과 같은 개인적인 감정을 노래합니다. 물론 지금은 매우 개인적이면서 일상적인 감정들이 가장 큰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런 시기에 시대적인 사명을 전면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등장하면 많은 사람들은 분명 '무겁다'라고 느낄 것입니다. 김창열 작가의 작품이 가진 실존적인 의미만을 따지면 분명 '무겁고 역사적인' 회화일 테지만 그의 상징과 같은 극사실주의적인 물방울 모티브들이 주는 조형성은 그의 작품을 아름다운 예술로 인식하게 합니다. 제 유년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방문한 <김창열> 전시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미술을 통해 다시 한번 접하게 된 뜻깊은 기회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중년의 시기를 지나는 제가 요즘 많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한국적인 그 무언가가 가장 큰 울림을 준다는 것'입니다. 김창열 작가의 천자문과 물방울의 조합이 어떤 의미에선 '가장 한국적인 그 무언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창열> 전시는 6.25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저의 부모님 세대부터 저처럼 박물관과 역사책을 통해 전쟁을 배운 세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자신만의 감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전시이기에 많은 분들이 전시장을 찾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각자의 물방울을 가슴속에 담아 오시길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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