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관현악을 위한 '무혼'

고구려의 미천왕과 무용총 벽화를 연상시키는 대서사시

어제 초등학생인 두 아이와 함께 국립극장에서 진행된 '2025 작곡가 프로젝트'에 다녀왔습니다. 국립극장의 관현악 시리즈 II '2025 작곡가 프로젝트‘는 만 34세 이하의 국내외 작곡가를 대상으로 공개모집을 하여 8명의 작곡가를 최종 선정하고 이들이 작곡한 국악관현악을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선정된 젊은 작곡가들의 창작곡 완성도를 높이기 위하여 국립국악관현악단 상주 작곡가 손다혜, 홍민웅의 멘토링을 진행했으며 연주자와 전문가들의 피드백도 받았습니다. 공연의 지휘는 국악관현악 장르에서 지휘자와 작곡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 김성국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교수님이 맡으셨습니다.

최종적으로 선발된 만 22세부터 31세 사이의 ‘Gen-Z’ 젊은 작곡가들이 생각하는 국악은 어떤 모습일지 처음에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흔히 우리가 'Gen-Z'라는 단어를 듣고 떠올리는 이미지들은 소위 '힙합'의 이미지들입니다. 자유분방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기존의 질서와 잘 타협하지 않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젊은 세대인 'Gen-Z'를 바라볼 때 기성세대들은 우려의 시선과 기대의 시선을 반씩 섞어서 바라보곤 합니다. 사실 저는 이번 공연에 앞서 우려보다는 기대감이 훨씬 컸습니다. 국악이라는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예술 장르를 기반으로 젊은 작곡가들이 창작한 새로운 국악의 선율은 어떨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김여진, 이한빈, 서민재, 양동륜, 김지호, 조성윤, 하준영, 전다빈 등 8명의 작곡가들이 창작한 8곡은 모두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강렬한 새로움을 선보여준 무대였습니다. 신선하다고 해야 할까요? 관현악기들이 들려주는 악기 고유의 청량한 음색과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완성하는 타악기들이 어우러진 8곡의 서사적인 국악관현악 연주곡들은 연주를 감상하면서 익숙한 가락을 찾는 것이 아닌 새로운 음악 그 자체를 경험할 수 있는 값진 기회였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스쳐 지나가듯이 들어온 익숙한 레퍼토리들도 있었지만 새로움의 경험이 월등히 강렬하게 다가온 연주회였습니다.

저는 8명의 작곡가 중 작곡가 양동륜 씨의 국악관현악을 위한 '무혼'에 대해 리뷰하고자 합니다. 미술사를 전공하고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는 제가 이 곡을 듣자마자 바로 생각한 작품이 하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고구려의 무용총 벽화입니다. 양동륜 씨는 무혼은 무인의 혼이라는 뜻한다고 설명하면서 해당 곡을 들으며 연상되는 무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연주에 앞서 감상의 팁을 제공했습니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 중국 지린성 지안시, 5세기 중엽 제작 추정



‘무혼'의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강렬한 사운드는 저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무용총 벽화의 말을 타고 리듬감 있게 움직이는 고구려인들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한반도의 역사상 가장 호전적인 국가는 고구려였을 것입니다. 고구려는 중국 쪽과 국경을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크고 작은 전투가 지속적으로 발생했고 기마민족이었던 고구려 인들은 말을 사냥과 전쟁에 자유자재로 활용했습니다. 특히 고구려의 미천왕은 313년에 낙랑군을 축출하여 한반도에서 중국세력을 완전히 몰아냄으로써 고대국가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소설가 김진명 씨의 작품 「고구려」에서는 부친을 정치적인 소용돌이에서 잃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기고 떠돌이 생활을 했던 을불이 미천왕이 되어 고구려의 영토를 확장하면서 국력을 강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미천왕은 왕의 신분으로 군대를 직접 이끌고 매서운 겨울철의 추위와 험한 산세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며 승전하는 지략의 왕으로 묘사됩니다.

무용총 벽화는 기마민족으로서 고구려인들의 삶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림 속에 묘사된 인물들은 빠른 속도로 말을 타면서 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사냥꾼과 이들을 피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도망치는 동물들이 사선의 구도로 박진감 넘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오른쪽 상단의 갈색 상의를 입은 인물은 말을 탄 상태로 상체를 뒤로 틀어 사슴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습니다. 기마민족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말을 능수능란하게 타는 면모를 보여줍니다. 무용총 벽화에 묘사된 모습처럼 고구려는 말과 활을 활용하는 전쟁에 능했을 것입니다.

작곡가 양동륜 씨는 '평화', '희생, '투지'라는 3개의 악장으로 된 '무혼'을 통해 무인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들을 한 편의 청각적인 대서사시로 완성해 냈습니다. 국립국장의 해오름극장을 강렬한 울림으로 가득 채웠던 국악기들이 빚어낸 장엄하고 강렬한 소리는 공연이 종료된 이후에도 긴 시간 동안 뚜렷한 잔상을 남기며 뇌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무혼'은 그야말로 새롭고 강인한 인상을 주는 곡이었습니다.

8명의 젊은 작곡가들이 선보인 전통을 기반으로 자유를 향한 무한한 확장을 보여준 작품들은 창작의 저변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 잘 보여주었습니다. 온전히 새롭기에 관현악 연주곡 그 자체로 다가왔으며 국립국악관현악단과의 협업을 통한 높은 완성도는 젊은 작곡가들의 기량을 더 뽐내게 하였습니다. '젊은 세대를 응원하게 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해보았습니다. 이번 공연은 젊은 작곡가들의 창작곡이 초연되는 무대였지만 앞으로 이분들의 작품들을 영화, 드라마 그리고 게임 OST에서 만나보기를 기대해 봅니다. 국악과 게임 OST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지만 저는 '무혼'을 들으며 박진감 넘치는 게임을 배경으로 이 곡이 재생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강렬한 사운드와 웅장함을 무기로 한 양동륜 씨의 '무혼'을 음원으로 만나는 날이 곧 오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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