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아연, 밤의 황홀한 잔치

고종이 사랑한 우리 음악

2025년 9월 3일 수요일 '덕수궁 야연'에 다녀왔습니다. 국립국악원과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가 공동주최한 ‘덕수궁 아연’은 ‘고종이 사랑한 우리 음악'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음악회입니다. 선착순 100명 중 93번째로 티켓 6매를 신청한 저는 아주 운 좋게 관람을 다녀왔습니다. 저와 아이 둘, 친정 부모님과 막내 이모님과 함께 찾은 저녁의 덕수궁은 낮의 모습과 다르게 핑크빛 조명으로 물든 새로운 모습이었습니다.

본격적인 공연 리뷰에 앞서 친정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하고자 합니다. 저는 태어나서 아버지께서 노래하시는 모습을 딱 세 번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1990년대 한창 노래방이 유행할 때 가족이 동네 노래방에 가서 아버지가 윤수일 씨의 <아파트>를 부르시는 모습이었고 두 번째는 2010년대에 막내 이모 가족과 제주도 리조트에 여행 갔을 때 리조트 가라오케에서 또다시 윤수일 씨의 <아파트>를 마지못해 부르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세 번째 본 아버지가 열창하시는 모습은 바로 '덕수궁 아연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춘향가의 <사랑가>였습니다. 세상에나 <사랑가>라니! 저는 제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참고로 70대이신 저의 아버지는 금융기관에서 30년 넘게 근무하신 철두철미한 이성을 지니신 분입니다.

'덕수궁 아연'은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황제인 고종이 사랑했던 곡들을 110년이 지난 지금 대한제국의 황궁이었던 덕수궁 자리에서 듣는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의 첫 곡으로 서울특별시 지하철 환승곡인 <얼씨구야 환상곡>이 연주되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들리는 친근한 곡과 달리 모든 국악기가 총출동한 이 곡은 음역대가 넓고 풍부한 사운드를 자랑했습니다. 특히 청명한 고음의 소금 연주가 인상 깊게 기억에 남는 곡입니다.

두 번째 곡은 피리, 태평소 협주곡인 <정명>이었는데, 저는 난생처음 직접 듣는 피리의 독주곡 앞에 뒤가 트이고 눈이 휘둥그래 해지는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전 늘 피리 소리를 유튜브로 들으며 갈대가 바람에 따라 그 줄기가 구부러지는 유연한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쨍쨍한 피리 소리는 갈대의 가냘픔을 뛰어넘는 강단이 있었습니다. 우렁찬 태평소의 소리는 메인 멜로디의 악기답게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정명>이라는 곡은 궁중의 격조와 무속의 격정,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마주할 때 발생하는 찰나의 빛을 담은 곡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순서는 민요였습니다. <서도민요연곡>과 <경기민요연곡>으로 가사가 구성진 민요는 자연스럽게 청중들이 함께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예술감독과 부수석님이 이끄는 합창은 전 객석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민요의 가사를 정확히 100%를 몰랐지만 학창 시절에 한 번쯤은 들어보고 불러본 민요를 따라 부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또 성장하면서 TV에서 흘러나오는 민요를 들어본 경험들이 농축되어 나타난 현상 같았습니다.

다섯 번째 순서는 소리꾼 서의철 님이 협연한 수궁가 중 <고고천변>과 춘향가의 <사랑가>였습니다. 내용과 음색의 변화가 극적인 판소리는 듣는 사람이 절로 빠지게 되는 장르입니다. 고음과 저음을 자유자재로 오가고 마치 현대의 랩을 하듯 속사포처럼 지나가는 내레이션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전개입니다. 물론 고어가 많이 사용되어 가사의 100%를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흥이난 분위기에 심취해 바닷속 용궁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친정아버지를 열창하게 한 춘향가의 <사랑가>는 소리꾼 서의철 님의 화려한 음색과 넓은 음역대를 더욱더 돋보이게 하는 곡이었습니다. 무르익은 분위기 속에 친정아버지께서는 본인도 모르게 열창을 하셨고 할아버지의 노래를 들은 저의 아들은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엄마, 할아버지는 엉터리 명창이야. 저렇게 크게 노래를 부르면 뒤에 앉은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무뚝뚝하신 친정아버지를 십여 년 만에 신명 나게 노래하게 만들어주신 국립국악원창작악단과 소리꾼 서의철 님에게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마지막 곡은 <세계명곡기행>으로 서양의 명곡을 편곡하여 국악관현악으로 연주한 순서였습니다. 급변하는 근대화의 시기에 고종이 서양의 음악을 국악기로 듣는 상상을 해보니 가슴 어딘가가 아련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의 노래와 전혀 다른 서양의 음악을 들었을 때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클래식 명곡의 아름다운 선율이지만 이 곡들이 당시에 온전히 이해가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니 국력을 잃은 나라의 수장으로 화려한 황궁에서의 갇힌 삶이 괴로움의 연속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악기의 애잔한 소리가 안타까움을 더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깊은 한이 서린 서양명곡 연주였고 타임머신을 타고 대한제국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간이 지닌 역사성이 돋보이는 마지막 연주였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친정아버지께 여쭈어봤습니다. "아빠 공연이 재미있으셨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 이거 재미있다. 하나도 졸리지 않더라~." 우리가 국악에 관해 서술할 때 흔희 사용하는 관용적인 표현이 바로 '신명 나는 국악 한마당'입니다. 이 표현을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관용구를 클래식한 클리쉐 중의 클리쉐라고 생각했습니다. 국악에 대해 몇 십 년 동안 저렇게 묘사해 왔으니까요. 그런데 공연을 보면서 생각한 점은 '신명'과 '국악'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판소리를 리드하는 소리꾼과 반주하는 소리북 연주자를 관찰해 보면 소리북 연주자도 공연을 위해 반주를 하고 있지만 본인 자체도 웃으면서 공연을 즐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덕수궁의 아름다운 야경과 국악의 어울림을 한껏 기대하고 간 이 공연은 저희 가족에게 ‘신명’이라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다음번에도 판소리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는 공연에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관람을 가야겠습니다. ‘신명 나는 국악 한마당’을 이제야 아버지와 즐기게 된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앞으로 이런 기회를 더 자주 만들어야겠습니다. 혹시 누가 알겠습니까, 저희 아버지께서 정말로 명창이 되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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