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간의 임정로드_Chap.17
우리 조선의용대는 항일전선의 일익을 담당하여 왜적 타도의 실천부대로서 그 책임을 다하고 있다.
계림(桂林·구이린)에 집결한 동지들은 각자의 과거를 묻지 않는다. 오직 오늘 이후 조국 해방을 위하여 총과 펜을 함께 들 것을 맹세할 뿐이다.
현재 대본부는 정치훈련과 선전공작을 병행하여 조선 민중에게 항일의식과 조직된 행동의 필요를 널리 알리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조선의 독립은 타인의 선의로 주어지지 않는다. 오직 조선 민중 스스로의 투쟁에 의하여 쟁취될 것이다.
<조선의용대통신, 1939년>
류저우를 떠나 구이린으로 향하는 길은 믿기 어려울 만큼 수려했다. 강과 산이 번갈아 시야에 들어왔고, 물길을 따라 늘어선 석회암 봉우리들은 형태도 높이도 제각각이었다. ‘계림 천하 갑천하’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 장가계의 풍경이 웅장함과 기이함으로 사람을 압도한다면, 구이린의 그것은 질서와 여백으로 시선을 붙잡았다. 지나치게 완벽해 오히려 현실감이 옅어질 만큼의 풍경이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길이 피난의 동선인 동시에 전쟁의 배경이었다는 사실이 겹쳐지며 묘한 느낌을 선사했다. 총성과 피난, 폭격과 죽음 같은 것들이 끼어들 틈 없어 보였지만, 그 시절 어떤 이들은 그 이질감 속에 이곳을 통과했을 것이다. 살아서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아침에 도착한 구이린의 풍경은 그렇게도 투명했지만, 도시에 내려앉은 공기는 눅눅하고 침전돼 있었다. 류저우와 상당히 가까운 곳임에도 공습 사이렌 속의 급박함이 좀처럼 그려지진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이 고요함이 어색했다. 한동안 이어져온 긴장이 갑자기 끊기자 몸이 먼저 경계를 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도시는 어딘가 그런 과거의 공기가 흐를 것이라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이곳에 감도는 고요함은 전운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많은 일이 진행되는 순간일 수 있겠다는 짧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구이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머물렀던 도시는 아니다. 그러나 류저우와 충칭을 잇는 길목이었고, 무장 독립운동 세력이 잠시 숨을 고르며 전열을 가다듬은 공간이었다. 전선의 한복판이 아니라 전투를 지속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기착지였다. 계속해서 맞서 싸우기 위해 싸우지 않는 시간 역시 필요했던 이들이 이곳에 머물렀다.
약산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의용대 본부가 이곳 구이린에 있었다. 조선의용대는 중일전쟁이 본격화되며 중국 대륙 전체가 전장으로 변해가던 1938년 중국 우한에서 창설됐다. 김원봉과 의열단 인사들은 더 이상 개별적인 투쟁이나 소규모 거사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조직화된 무장부대, 그리고 중국군과의 본격적인 협력이 필요했다. 그렇게 조선의용대는 한인 무장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중국 국민당 정부의 정식 승인을 받으며 출범했다.
그러나 우한 역시 오래 버티지 못했다. 일본군의 진격 앞에서 도시들은 차례로 무너졌고, 조선의용대도 다시 이동을 결정해야 했다. 싸움을 계속하려면 싸울 곳은 바뀌어야 했다. 그렇게 옮겨온 곳이 구이린, 그중에서도 칠성공원 일대였다.
칠성공원은 겉으로 보기엔 군사시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 물길과 산책로가 어우러진 풍경 좋은 넓은 공원이었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바꾸어 보니 이곳이 왜 선택됐는지 알 것도 같았다.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면 내부에서는 주변을 넓게 조망할 수 있는 동시에 외부에서는 안쪽의 움직임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접근로는 제한적이고, 은폐와 관측이 동시에 가능한 구조다. 등화관제와 소음 억제를 통해 모습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이는 육군 병장 출신 비전문가의 눈에도 쉽게 들어온다.
지휘관을 선발하고 병사를 모아 훈련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그걸 어디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과정은 더욱 쉽지 않았을 터다. 전투나 훈련이 아닌 시간에도 목숨은 사선에 걸려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이런 지형이 직관적으로 읽혔다. 부대에 필요한 것은 상징이나 미관이 아니라 생존과 지속성이다. 훈련이 가능한 공간, 감시를 피할 수 있는 입지, 그리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퇴로. 조선의용대가 이곳에서 했던 일은 전투가 아니라 준비였다. 병력을 정비하고 훈련을 반복하며, 전략을 고심하는 시간.
하지만 안타깝게도 칠성공원에 그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표지석도 안내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록에만 남은 ‘본부’라는 단어와 지금 눈앞에 펼쳐진 평온한 공원 사이의 밀도 높고 무거운 간극. 현장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게 역사라지만, 매번 이러한 아쉬움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이곳에 오래 서서 주변을 훑고 있자니 김원봉의 시선과 시간이 조금은 느껴지는 듯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의용대의 훈련은 주로 이른 새벽이나 해가 완전히 진 뒤에 이뤄졌다. 안개가 짙게 깔린 시간대, 말소리는 최대한 줄이고 손짓과 짧은 신호로만 움직였다. 한 번은 훈련 도중 갑작스럽게 중단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멀리서 들려온 정체 모를 소리 때문이었다. 확인 결과 별다른 위험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김원봉은 그날 훈련을 더 이어가지 않았다.
싸움을 미루는 결정은 비겁함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이었다. 눈앞의 훈련보다 이곳을 들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싸움은 다시 할 수 있지만 한 번 드러난 은신처는 되돌릴 수 없었다. 김원봉은 늘 싸움의 한복판에만 있던 인물이 아니었다. 언제 싸워야 하고 언제 물러나야 하는지를 냉정하게 계산하던 사람이었다. 의열단 시절의 과감함과 조선의용대 시기의 신중함은 단절돼 있지 않았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만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었다.
구이린은 그런 판단이 응축된 공간이었다. 당장 승리를 가져다주는 전투는 없었지만, 패배하지 않기 위한 준비가 이어진 곳. 조선의용대가 훗날 충칭으로 이동해 한국광복군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준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고 공원 곳곳은 평온했다. 그러나 이곳에 머물렀던 이들의 시선은 분명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의용대원들이 누볐을 넓은 공원을 감상에 빠져 하염없이 걷던 도중 길을 잘못 들었다. 지도에는 분명 이어진 산책로였지만 어느 순간 사람 그림자가 뚝 끊겼다. 관광객들이 북적이던 길에서 몇 걸음만 벗어났을 뿐인데 숲은 갑자기 깊어졌고 발밑의 길은 희미해졌다.
돌아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조금 더 들어갔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노출시키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적의 위협 안에서 움직인다는 건 아마 늘 이랬을 것이다. 정확한 정보와 확신도 없더라도, 잘못된 선택이 아닐 것이라는 감각 하나에 의지해 움직였을 시간.
이토록 아름다운 산수를 바라보며 전쟁을 준비했다는 사실은 끝내 묘한 여운을 남긴다. 평온한 풍경이 오히려 결의를 숨겨줬고, 질서 정연한 자연은 혼란스러운 시대와 잠시 거리를 둘 수 있게 만들었다. 구이린의 시공간은 전쟁의 무대가 아니었지만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시간과 공간이었다. 이 조용한 도시에서 그들은 승리할 수 있는 더 큰 싸움으로 나아가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