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조명불빛 조절자로 살아가기

육아에세이 28편

by forcalmness

난 부모되기를 선택한 사람이다. 한번의 유산과 난임휴직, 인공수정, 시험관을 거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둘이 살아도 괜찮다는 신랑에게 인공수정에 실패하고 쉬던 어느날, 시험관 한번은 시도해보고 싶다고 전했던 카페의 풍경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신랑을 기다리면서 바깥을 살피는데 카페 안만 환하고 밖은 어둠이 내려 앉아 있었다. 그때 바깥풍경이 내 마음의 어둠 같았다. 이제 마지막 한번은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신랑에게 전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그 시간. 내 생각이 그렇다면 해보자고 신랑이 건넨 그 말. 그때의 결심과 신랑의 응답이 우리를 부모의 길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기 일년 전, 벌써 일곱살이 되었다. 오년의 시간이 언제 어떻게 흘러갔는지 요즘 자주 놀라곤 한다. 그 시간 동안 부모되는 게 이렇게 인내와 헌신이 필요한 일인 줄 알았다면 이 길을 선택했을까 수없이 반문하곤 했다. 그렇게 바라던 아이였는데도 부모로 사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 자괴감도 들었다. 누군가 결혼한다고 하면 꼭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씁쓸하게 말을 건네던 때도 있었다.



한 사람이 너무 좋아도 매번 같은 강도로 좋을 수 없고 가끔 이해 못하는 순간이 있듯,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들도 힘듦과 수월함이 교차곡선을 그리며 흘러갔다. 육아서를 탐독하며 우왕좌왕하던 내가 내 아이에게 맞는 게 뭘까, 어떻게 표현하고 다가가야 할까를 주체적으로 고민하는 부모가 되는 시간이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듯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것도 천편일률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고 인정하는데 그만큼 시간이 필요했다. 문득 부모가 된 사람들의 모습이 조명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정 거리를 띄우고 혼자서 빛을 내는 조명. 내뿜는 빛으로 조명 아래 앉은 사람을 온전히 빛나게 한다. 부모는 조명이 되어 그 아래 앉은 아이를 환히 비추려 부던히 노력하는 게 아닐까. 그 조명 불빛은 은은할 수도, 강렬할 수도, 환하기만 할 수도, 약간의 그을음이 끼어있을 수도 있겠지. 그 조명 불빛을 적절히 조절하며 점점 성숙한 부모가 되어가는 우리 모습을 상상한다. 그 조명의 빛은 관심일수도 애정일수도, 사랑 표현일수도 지지와 응원일수도, 단호한 대답일수도 포옹일수도 있겠지.



부모되기가 힘든 건 모두 조명 독립군이기 때문이다. 일정 간격을 띄우고 띄엄띄엄 놓인 조명처럼. 다른 조명이 어떠하든 참고만 할 수 있을 뿐 합쳐질 순 없다. 온전히 부모 둘이서 하나의 조명을 직접 조절해간다. 언제 어떤 빛을 얼마나 비출지 상의해가며. 익숙해지는 부분도 있지만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빛의 조도로 조절해야 하는 부담은 항시 대기다. 어찌보면 부모가 된다는 건 어떤 습관 들이기와 비슷한 것 같다. 부모를 '독립적 조명의 조도 조절' 을 연마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수월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부모로 사는 모든 분들을 조용히 응원하고픈 아침이다. 힘들어도 행복하다. 아이의 말 한마디에 웃음꽃이 피는 건 잊히지 않는 영원의 순간이니까. 정말이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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