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덕질의 엽서들

일상에세이 37편

by forcalmness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살면서 덕질이라는 걸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무언가에 크게 빠져본 적이 없는 사람 같다고. 인생의 큰 동요없이 조용히, 무엇에도 큰 감흥이 없어 보이는 사람 같다는 얘길 들었다. "그래 보여요?" 하고 웃어 넘겼지만 나에 대한 타인의 그런 생각이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내겐 어떤 큰 열정 자체가 없었다는, 삶에서 뭔가가 빠져있을 수도 있다는 의문이 피어올랐다.



사실 에세이 책을 읽다보면 나 같은 사람, 크게 뭔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접한다. 나 말고도 그런 사람들이 꽤나 있네 안심하지만 그뿐 왜 그럴까란 질문에 답을 찾진 못했었다.



그러다 최근에 그 질문에 답이 될만한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한 발자국 그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않는 사람. 그 이상 넘어가면 되돌아오지 못할까봐. 그 이상은 가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봤다. 그 사람처럼 자신의 한계지점을 스스로 긋는 사람이 내가 아닐까 싶었다. 스스로 정한 바운터리 안에서만 움직이는 사람들. 그 바운터리를 조금씩 확장해나갈 수는 있어도 그 선을 먼저 작정하고 넘어볼 생각은 없는 사람들.



내가 정말 해보고픈 건 사실 즉흥여행, 즉흥휴가 같은 즉흥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해본 적이 없는 이유는 즉흥적으로 하면 다른 시간들이 무너질 것 같아서 자신이 없다. 그 시간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데 시간을 쓰느니 약간의 일탈을 미리 계획하고 실행하는 게 마음이 오히려 편하다. 그게 일탈이냐 물으면 할말은 없지만. 그래서 한가지에 꽂히면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서라도 해보는 마음으로 이해되는 커다란 덕질은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걸 포기하고서라도 한계를 넘어 성큼성큼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큰 덕질은 평생 경험할 수 없으리라. 그 대신 내 주변에 씨를 뿌리듯 소소한 덕질을 하며 만족하는 일상을 보내려 한다. 벽면에 다닥다닥 붙은 엽서들을 수집하듯이. 언제든 한권의 책은 읽고 있고, 에세이 메모는 수시로 적어두고 틈틈이 에세이를 쓴다. 좋아하는 디저트들을 한번씩 돌아가며 기분좋게 챙겨먹는다. 요즘 빠진 드라마는 두번째 돌려봤지만 또 볼 생각이고, 그 드라마 OST만 매일밤 귀에 대고 감상하고 있다. 그렇게 같은 드라마를 두번 봤다고, 내게 무엇에도 큰 감흥이 없어보인다 했던 사람에게 은근슬쩍 말을 흘렸더니 그것도 덕질인데!라며 호응해주었다.



묵묵하게 작은 덕질들로 조용히 기뻐하며 지내는 게 좋다. 꼭 큰 열정이 없어도 평온하고 자신의 지금 모습이 좋으면 됐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덕질의 엽서들을 모으는 취미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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