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 1편 공주
여행을 다니다 보면 유독 마음이 가는 곳이 있다. 내겐 공주가 그런 곳이다. 처음엔 그저 우연히 맛본 밤라떼가 너무 맛있어서 또 생각나는 줄 알았다. "우리 밤라떼나 마시고 올까?" 가볍게 여행 기분을 낼 수 있는 가까운 곳이라서. 시작은 밤라떼였는지 몰라도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짙어졌다. 갈수록 내가 이 도시에 어떤 점을 좋아하는 걸까 좀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뚜벅이인 나 대신 매번 운전해서 아이와 반나절 공주여행을 가는 신랑은 공주를 이렇게 표현했다. '모든지 적당한 도시.' 복잡하다 못해 혼잡한 서울이 힘들어서 내려온 우리에게 적당하다는 건 참 좋은 의미였다. 침체되어 활력이 없는 것도 너무 과하게 밀집되어 힘겨운 것도 아닌,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과유불급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듯한 도시 같았다.
밤라떼, 깨끗하게 정돈된 골목, 골목골목 아기자기함, 옹기종기 모인 한옥풍경, 문화재를 잘 가꾸는 자세, 자연스레 묻어나오는 레트로 감성, 뚜벅이가 걸어다닐수록 자꾸 새로운 게 나오는 볼매(볼수록 매력적인), 은근한 맛집들. 지금까지 짧게나마 여러번 오가며 내가 공주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들이다. 매번 '어쩜 이렇게 골목들이 깨끗하지?' 감탄하고, '못본 풍경이네. 또 새롭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다음에 또 와보고 싶어진다. 다른 골목으로 걷다보면 어떤 새로운 게 또 나올까 싶어서.
반짝 봄날 같았던 햇살 내리쬔 주말, 공주에서 새로이 발견한 건 바로바로 만화책 대여점과 공중전화부스였다. 만화책을 빌려 보며 중고등학교 중간기말고사 사이 휴식을 취했던 내게 만화책 대여점은 파라다이스의 상징이었다. (만화카페와는 다르다. 만화책을 빌려 학교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온전히 휴식을 누리던 장소의 자유로움과 일탈의 기분이 중요하므로.) 그 공간을 더 누릴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는데 공주의 한 거리를 걷다가 사라진 줄 알았던 만화대여점을 발견했을 때의 환희란. 그 만화대여점 하나로 공주에 살고 싶어졌다. 그 거리를 좀 더 걸으니 공중전화부스가 나왔다. 아이에게 수화기를 대보고 통화하듯 말해보라고 부추겼다. 어찌나 반갑던지. 이렇게 공주의 거리와 골목은 우리를 추억의 파라다이스 공간으로 데려다 주고 함박웃음을 짓게 해주었다. 정갈히 정돈된 레트로의 세계 집합소가 공주라는 도시의 정체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태주의 풀꽃 시 구절처럼 오래 보고 자세히 볼수록 예쁜 도시라서 그런 시도 나올 수 있었나 싶기도 하고.
누군가 내게 '슬로우모션'으로 사는 사람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슬로우모션이란 말을 떠올리며 살진 않았지만 '느긋하고 차분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줄곧 해온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한 뒤 천천히 행동하는 게 편안하고 오히려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 내게 공주는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도시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늘보처럼 슬로우모션으로 살아도 충분히 슬로우라이프 도시 공주처럼 매력있고 분위기 있다고 말해주는 소리가 들린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질 때 공주로 여행을 다녀오면 속도의 벅참에서 다시 내게 맞는 흐름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차분한 확신이 든다. 또 가야지, 환희에 차 발견한 만화책 대여점에 만화책을 빌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