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39
오월 제주도여행을 앞두고 있다. 일월에 비행기표를 예매한 뒤 이젠 삼월, 남은 이개월 동안 내게 중요한 여행준비 중 하나는 여행에세이 한 권을 읽는 것이다. 여행을 실제로 하기 전 나름의 의식 같은 것. 여행의 기대와 마음가짐을 워밍업하는 방식으로.
그 워밍업 책으로 알랭드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집어들었다. 워낙 유명작가이다 보니 책제목은 들어봤는데 실제로 읽는 건 처음이었다. 책 목차에서 '~에 대하여'란 소주제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을 떠나는 출발은 '기대에 대하여', 여행에서 돌아오는 귀환우 '습관에 대하여'로, 목차가 구성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여행에서 생각하는 것들로 '동기, 풍경, 예술'을 적어두었다. 알랭드보통의 여행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따라 읽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의 기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사소하지도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문장에서부터 확연히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이유가 뭔지, 그 이유와 따라가는 여행방식에 대한 에세이라는 걸. 김영민 작가의 산문집 <가벼운 고백>에서도 이런 문장이 나온다. "진정한 여행이 여행 전 기대와 여행 후 기억이듯이, 진정한 삶은 살기 전의 기대와 산 뒤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알랭드보통도 여행의 '기대와 기억'에 대해 집중하고 있었다. 현실이 따분하게 긴 시간들의 반복들로 우리를 지치게 한다면, 기대와 기억은 단순화와 선택으로 우리를 핵심적인 순간으로 데려가준다고.
여행에서 사람들이 추구하고 바라는 건 '생존, 일'과는 동떨어진 삶이라는 생각을 줄곧 해온 것 같다. 생존을 위한 현실의 지리한 반복에서 벗어난다는 기대. 자신의 삶에서 너무 파묻혀 살면 전체를 조망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살고 있는 삶 자체를 한번씩 멀리 떨어뜨려보는 시도가 여행이 아닐까. 그러면서도 공감했다.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과의 심리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어긋난 상태에서는 여행지의 좋은 풍경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점점 심리적 안정감과 같은 기본이 충족되는 일상이 꼭 기본값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평소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든다.
책을 읽으며 여행의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본다. '여행을 위한 장소'라고 말하는 기차,배, 비행기에서 '공동의 고립감'으로부터 생겨나는 최대치의 내면 집중력이 내겐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행의 매력이다. 꼭 거창한 여행지가 아니어도 좋다. 여행을 가는 길에 타는 기차 안에서의 시간을 사랑한다. 그 시간만큼만 일상에서 확보된다면 아마 일상이 여행처럼 느껴질 것 같다. 쉴 때 기차를 타고 가까운 어디든 가볼까 싶다. 기차 안에 머무는 시간이 목적인 여행으로.
"이 공간이 내포한 삶을 가지고 싶었다." 이 문장 하나면 여행의 결정적인 동기가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이국적인 여행지에서 엿보는, 내 일상의 공간들과는 다른 공간으로 삶을 그려보는 기회. 이 바닷가, 이 집, 이 공원, 이 산책길. 이 모든 풍경들을 엮어서 이어지는 삶. 여행 속 공간과 풍경들을 머릿속에 담아와서 내 일상을 조금씩 수정하고 변하게 만드는 힘을 얻는 게 내가 여행을 하는 결정적인 동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풍경과 공간에 매료되는가를 여행을 하며 깨닫고 내 일상의 일부로 만들어가는 것. 내 마음에 담아두고 언제든 꺼내보는 배경으로든. 내 일상의 일부요소들을 좋아하는 풍경과 공간들로 변경하는 일이든. 그게 내가 여행을 하는 결정적인 이유라는 걸 정리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중간중간 다양한 작가들이 그린 여행지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들은 어느정도 패스해가며 읽었다. 그러면 금방 책 끝자락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제주도에서 어떤 풍경과 공간을 담아올까. 준비가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