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단 버퍼링

일상에세이 8편

by forcalmness

요즘 좋아했던 드라마 '그해 우리는'의 영상짤을 보며 웃고있다.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게 두달 정도 지내니 아무 생각없이 마음편히 미소 지을 수 있는 순간을 간절히 바란 행동이었다. 그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를 발견했다. "아등바등 사는 건 제 취향이 아니라서요". 맞다. 정말 아등바등 사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잘 살기위해서는 적절한 하중이 필요하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 몇명이나 낳을 것인가, 얼마나 열심히 일할 것인가?' 같은 질문은 인생의 하중을 조절하기 위한 질문이다." -<가벼운 고백>,김영민 산문집


이 명대사 같은 말처럼 잘살기 위해서 적절한 하중으로 자신의 일상을 조절하며 살아야한다. 그게 생각만큼 안될 때가 많은게 슬프지만. 업무변동이 생길 때, 아이가 부모 손길이 많이 필요할 때, 체력이 예전같지 않게 떨어질 때. 이 모두 한발자국도 움직이게 싫게 만드는 순간들이다.


인생이 정돈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큰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내가 뭘하고 있나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데 속수무책으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때가 참 힘들다는 자가진단을 했다. 버퍼링이 걸려있는 시간이 긴 사람이라고 할까. 근데 두달여의 여유없는 순간 후에 깨달았다. 그 버퍼링이 길어도 괜찮다고 자신에게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난 버퍼링에 걸려있는 중이야. 그래, 이럴수록 차분히 생각하고 움직여도 괜찮아. 지금 서두르면 더 깊은 버퍼링일 뿐. 이래도저래도 버퍼링인데 뭘.' 이 순간에서 차분하게 생각하면 된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주었다. 그랬더니 옴싹달싹할 수 없게 갑갑했던 머리속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보다 버퍼링에 걸려 정지된 얼굴의 모습을 한 사람에게 내면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더 걸려도 좋다. 그 느림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되는 말을 뿜어내지 않을 수 있다면. 속도를 위해 다른사람에게 가시돋힌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난 그렇게 살고 싶다고. 버퍼링의 시간 속에서 마음의 앙금을 스스로 해독하면서. 혹시 속도에 마음이 잡혀서 상처될만한 말을 뱉었다면 그 미안함을 전하며 살 수 있는 사람으로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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