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에 얽힌 포근한 추억

일상에세이 20편

by forcalmness

시간이 겹겹이 쌓이고 교차하는 순간들을 요즘 자주 마주한다. 비슷한 경험으로 예전 기억이 떠오르는 기억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걸 보면. 그만큼 나이가 차곡 쌓였다는 의미인 듯. 나이가 들어 기쁜 건 좋았던 순간들이 포개져 만나는 느낌이 가슴에 와닿을 때인 것도 같고. 최근에 슬쩍 웃음이 나는 순간은 바이킹과 이어져 있었다.



놀이동산 가면 꼭 하나는 있는 바이킹 놀이기구. 신랑과 처음 놀이동산 데이트를 갔을 때. 난 놀이기구의 스릴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신랑은 어떤지 모를 때, 처음 놀이동산에 가서 내가 첫 놀이기구로 바이킹을 타자고 제안했던 것 같다. 내 입장에선 배려였던 게 롤러코스터도 아니고 가장 수위가 낮은 놀이기구로 생각해온 바이킹을 언급한 것이었다. 신랑은 바이킹 타자고 할 땐 아무 소리도 없더니 타고 내려서는 벤치로 가자고 했다. 왜 그러지 싶었는데 갑자기 벤치에 눕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이지 놀이기구를 못타는 사람인데 처음이라 말도 못했나 속이 타는데 신랑이 말하는 자초지정은 이랬다. 자기는 롤러코스터가 더 낫다고. 좌우로 추처럼 왔다갔다 움직이는 바이킹을 타면 너무 어지럽다고. 자신에겐 바이킹이 최상위 놀이기구라는 것이다.



이렇게 다를 수가. 바이킹이 최상위 놀이기구라는 생각은 태어나서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놀이기구란 당초에 높고 낮음의 낙차에서 오는 심장 내려앉는 소리가 기준이 아니었나. 그렇게 설계된 게 놀이기구 맞지 않나. 그래서 롤러코스터를 잘 타는 사람과 못 타는 사람이 나눠지는 세계가 놀이동산 아니었나. 그때 난 차마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을 생각은 못했다. 놀이동산에서 처음 내가 고른 놀이기구를 타고 벤치에 드러누워서 심호흡을 하고 있는 신랑이 애처로워서. 보통의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각자의 상황이란 게 다 있긴 하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최상위 놀이기구였던 바이킹을 아무말 없이 타준 신랑이 고마워서. 그때의 추억은 놀이동산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일생의 추억으로 남았다. 지금도 슬며시 웃음이 나오고 신랑이 귀여워지는 마법의 기억이다.



그런 바이킹에 얽힌 추억이 최근 아이 어린이집 가을행사에 등장한 바이킹으로 재소환되었다. 아이는 하원후 어린이집 앞에 떡하니 놓인 바이킹을 보고선 탄다고 한다. 단, 엄마와 같이. 역시 처음 타보는 바이킹 앞에서 작아지는 어린이. 그 옆에 바이킹에선 멀찍이 떨어져 탈 생각이 없는 어른 남자. 그옆엔 없어서 못타는 어른 여자가 있었다. 대부분 어린이들만 쪼르르 일렬로 앉아있는 바이킹에 거의 나 혼자 어른이지만도 전혀 쪽팔림을 느끼지 않았다. 그동안 아이와 놀이동산에 가서 비싼 자유이용권을 내고도 회전목마만 탔던 세월을 보상받는 기분으로 당당했다. 바이킹이 좌우로 추처럼 움직이는 시간동안 솔직히 두손을 위로 하고 싶어 얼마나 참았는지 모른다. 환호로 그 마음을 대신했다.



나도 바이킹을 타고 싶다, 간절히. 이젠 아이와 신랑과 셋이서 놀이동산에 가면 바이킹은 같이 탈 수 있겠구나 기뻤다. 물론 신랑말고 아이와. 신랑이 아이와 내가 바이킹 타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보내줬다. 안심하는 목소리로 이제 아이랑 타면 되겠다고 말을 넌지시 건네면서, 제일 신난 것 같다고도 말을 보탰다. 그리 티가 낫나 민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같이 즐기라고 구성한 행사니까.



아이가 조금 더 크면 바이킹에 같이 타서 손을 위로 들고 환호하자고 해야겠다고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그때 엄마 주책이라고 하지 않는 아이로 자라도록 해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얹으면서. "비밀인데 아빠는 바이킹을 무서워해" 소곤거리며 비밀을 발설해도 아빠를 놀리지 않는 다정한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도 얹어서. 이렇게 시간이 교차하는 걸 포근하게 껴안으면서 늙고 싶다.

이전 07화끝방 서재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