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방 서재의 탄생

일상에세이 18편

by forcalmness


우리집 구조는 조금 특이하다. 대부분 요즘 30평대 집은 방3개에 거실1개인데, 우리집은 방이 4개로 하나방을 두개로 나눠 놓은 느낌이다. 이집에 살기로 결정했을 때, 탑층이라 층간소음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이 가장 큰 결정요소였지만 방이 네개로 구획되어 있다는 특이함도 좋았다. 20평대에서 좁게 느껴졌던 옷방도 하나 만들고, 아이 자는방 하나, 놀이방 하나, 안방 하나까지 딱딱 머릿속에 정해졌다.




그렇게 네개의 방을 우리가 자는 방, 아이가 자는 방, 장난감 가득한 아이 놀이방, 옷방으로 정해 일년반을 보냈다. 그 사이 아이가 꽤 자라서 층간소음방지 폴더매트도 이젠 처분해야하나 싶고, 놀이방에 있는 장난감도 잘 찾지 않는 시기가 왔다. 감이 왔다. 정리로 한바탕 방을 재정비해야 하는 때라는 느낌이.




사실 방이 네개인 집구조라고 이사 초반에 얘기했을 때, 사람들이 다 하는 말이 서재방이었다. 여유분의 방 하나는 서재겸 취미방이냐고 하나 같이 다 묻곤 했다. 네개 방 각각의 용도를 말하면 아이 놀이방으로 서재방이 밀렸다는 얘기에 아쉬워하는 투가 많았던 기억이 난다. 그땐 그냥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혼자만의 방'을 꿈꾸는 자신의 희망을 투영한 게 아닐까 싶다.




그 기억이 남아서인지 이번엔 아이놀이방 바닥에 배치된 부피 큰 장난감들을 중고로 팔기로 아이와 합의했을 때, 아이 놀이방 한켠에 우리 서재방을 마련하는 걸 계획하게 됐다. 사실 우리가 끝방이라 부르는 옷방은 양옆으로 시스템장이 배치되어 옷들이 걸려있고 가운데에 창이 있어 그곳에 긴 테이블이 있다. 긴 테이블은 전에 식탁으로 사용했던 4인용 식탁 테이블. 6인용 새 식탁을 사면서 버리긴 아깝고 나중에 책상으로 쓸 수 있겠다 싶어 둔 꽤 큰 테이블이다. 이걸 아이 놀이방 한켠으로 옮기자는 얘기를 신랑과 나눴다.




드디어 실행의 날, 바닥의 아이 폴더매트 대신 브라운 카페트를 깔아두고 신랑과 끝방에 있던 긴 테이블을 옮기는데 두둥 아이방 문으로 이 테이블이 들어가지 않는다. 방과 방 복도 간격과 방문 간격이 어떻게 해도 그 긴 테이블이 들어가지지 않는 것이다. 식탁 조립을 분해해야만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서 결국엔 다시 끝방으로 테이블이 돌아왔다. 아쉽다고 생각하기엔 아직 이르다. 제자리로 돌아왔으나 실제로 제자리는 아니었다. 끝방을 옷방 겸 서재방으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실행이 놀랍게도 다른 방향을 떠올리게 한다.




그 자리에 있었으나 전혀 사용할 마음을 먹지 않아 덩그러니 놓여있던 긴 테이블 위에 조명등, 달력, 책, 다이어리, 연필꽂이와 아이가 만든 미술 작품들을 장식으로 올려두며 서재 느낌을 냈다. 편안한 의자까지 셋팅하고 주말 아침에 앉아 다이어리를 끄적이니 세상 이리 좋을 수가. 끝방이라는 위치상 이점으로 거실과 마주한 주방 6인용 식탁의자에 앉아 주말 아침부터 카봇 영상을 보고 계신 상전, 아이의 영상소리가 작아진 것이다. 유레카! 그동안 소리 민감성이 높은 내가 아이 영상소리에 힘들어하던 게 이 끝방이 서재로 변신하면서 해결될 수 있겠구나 우연히 방법도 얻었다.




끝방 서재가 탄생했다. 이 탄생은 뭐랄까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우리 생활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아이가 우리와 어느 정도 떨어져서 우리의 도움 없이도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집안에서 아이와 공간분리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진심으로 실감난다.




지금도 점심 먹고 아이와 신랑과 셋이서 거실 쇼파에 모여 신나게 실내 풍선놀이 겸 풍선 피구놀이를 즐긴 다음,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것도 어느 정도 분리된 공간에서. 창가 블라인드 사이로 비춰 들어오는 은은한 햇빛을 느끼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에세이도 끄적, 다이어리도 쓰고, 책도 보다 조용하게 보고. 거실에서 아이 모습을 보며 분리되지 않은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아늑하고도 만족스럽다. '끝방의 서재'의 탄생은 세가족의 공간 안에 독립된 섬 같은 곳으로 앞으로 위치를 공고히 다져갈 것이라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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