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공감

일상에세이 22편

by forcalmness

오랜만에 신랑과 영화관에 다녀왔다. 둘다 애니메이션영화를 좋아해 <쥬토피아2>를 보고 왔는데, 전편 <쥬토피아>도 영화관에서 본 기억에 언제봤나 찾아보니 개봉연도가 2016년도였다. 무려 9년 만에 다시 만난 영화였다. 우연찮게도 우리의 결혼연도도 2016년. 영화가 1편에 이어 2편이 나오기까지 9년의 시간이 흘렸고, 딱 우리가 결혼하고 함께 지낸 시간이었다.


내가 에세이를 쓰면서 몇 번이고 쓰려 했다가 내려 놓았던 주제가 두가지 있었다. 하나는 공감, 또 하나는 부모의 역할분담. 아마도 내게 가장 어려운 두 주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9년이라는 시간의 힘으로 용기 내어 그 주제에 대해 다시 써보고 싶어졌다. 공감부터 먼저 시작해 보려한다.


난 내 감정을 쉬이 표출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 어릴 때 내 감정이 잘 수용되지 않는 경험이 쌓였고, 얘기했을 때 도리어 역효과가 나는 경험 속에서 감정을 숨기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임을 습득했다. 내가 공감받은 경험이 적어서 누군가의 감정에 어떻게 공감해야할지 머뭇거릴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신랑과 연애할 때, 신랑이 어떤 상황에 화를 표출하면 난 사실 어쩔 줄 몰라했다. 솔직히 그 화가 내게까지 미치면 어떡하지란 생각으로 얼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신랑은 다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한 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단 이 상황에선 어떤 감정이든 표현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사고회로가 자동으로 돌아갔다. 신랑은 아무말도 아무 반응도 없는 내 모습에 공감능력이 없다고 투덜댔다. 신랑은 같이 화내주길 같이 욕해주길 바라는데 난 그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입을 다무는게 안전하다는 생각이 너무 공고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감정을 솔직히 표출하는 게 신기해서 멍하니 바라보게 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내가 그동안 너무 감정을 억압해 온건지 그 정도로 감정이 분출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사실 그게 총체적인 공감능력 부족이겠지만.


이런 내 모습을 약간은 체념한 신랑은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아이의 모든 상황들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으로 그래 이런거지 이래서 그런거지 하면서 말 못하는 아이의 상황조차 이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배신감까지 들었다고 얘기했던 적이 있다. 누구보다 아내에게 이해받고 싶었는데 그게 잘 되지않는 사람이라고 이해하려 했는데, 아내는 태어난 아이에게는 모든 걸 공감해줄 줄 안다는 사실이 신랑 마음에 사무친 것 같다.


사실 나도 할 말은 있다. 아이가 울긴 하지만 내게 화내진 않으니까. 화냄이라는 특정한 감정에 대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일말의 변명 같은 것. 그러다 최근에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화는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한 걸 표출하는 방식'이라고. 신랑에게 결혼할 때 내게 바라는 걸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신랑 대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날 더 많이 사랑해 달라고.' 신랑은 화라는 감정을 표출하면서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게 아닐까. 가장 날 것의 감정을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 수용받는 경험을 원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난 내가 선택한,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가족 안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다. 내 감정을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는 사람이 신랑이고, 감정을 투명하게 내비치고 싶은 사람이어서 결혼했다. 그리고 아이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려 부던히 노력하는 동안 내 공감 능력도 올라갔다. 이젠 신랑의 누군가를 향한 화에도 같이 험담해주고 '그럴만하다'는 응답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최근 이런 일이 있었다. 토요일 점심, 집 근처 꼬마김밥집에서 꼬마김밥 두팩을 사와서 스티로폼에 쌓여있는 포장지를 뜯는데 어찌나 꽁꽁 싸맸는지 잘 뜯기지 않았다. 신랑이 한팩을 뜯은 뒤 나머지 한팩도 힘겹게 뜯다가 김밥이 쏟아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신랑이 화를 표현했다. 순간 난 얼음이 되어 내 특유의 반응으로 한동안 무반응이었다가 자꾸 다른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신랑은 입이 앙 다물린 표정. 자신의 화에 대해서는 아무 공감도 받지 못했다는 불만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러다 내가 이 말 한마디를 잔잔하게 던졌다. "오늘 그 꼬마김밥 신규가 말았나봐." 그 말에 신랑 표정이 스르르 풀렸다. 화를 내도 '그럴 만했어'라는 공감의 말이었다. 쉽진 않지만 내가 할 수 있게 된 건 이런 방식의 '잔잔한 공감'이었다.


<쥬토피아2>에 이런 말이 나온다. 닉이 주디에게 자신이 말을 하지 않고 무관심한 척하는 이유는 내가 감정적으로 불안정해서 그걸 표현하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게 싫어서라고. 네가 상처받는 게 싫다고. 네가 소중하다고. 닉과 주디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속사포 같은 시간도 있고, 9년이 흘러서야 비로소 변하는 것도 있다. 앞으로 내 평생의 과제는 잔잔한 공감으로 사랑한다 표현하는 것. 공감을 사랑이라 느끼는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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