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19편
다행히 독감은 아니었다. 토요일 오후부터 열이 오르락내리락 했는데 월요일 오후 소아과 독감검사에서 아이가 음성판정을 받았다. 어린이집에서 독감에 걸린 아이들을 알음알음 알고 있어서 갸우뚱하면서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이는 소아과를 가는 내내 "예방주사 맞아? 피뽑아? 약만 받아?" 이 세가지로 자신의 앞날을 알고 싶어했다. 귀여운 것.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운 마음.
요즘 유행하는 독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코로나검사처럼 코점막을 깊게 훑는 독감검사를 하리라 예상했지만 짐짓 의사선생님이 어떻게 하실지 결정하실 거라고 아이에게 쉬이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도망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결국 코점막 훑는 독감검사로 아이는 눈물을 흘렸지만 꿋꿋하고 똑부러지게 의사선생님께 물었다. "의사선생님, 이제 다 끝난 거에요?" 그모습이 어찌나 당당하고 멋지던지. 많이 컸다.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확인하고 마음을 추스리고자 하는 그 물음을 하는 아이가 진정 커보였다.
이렇게 아이는 불쑥불쑥 나를 놀라게 한다. 요즘 난방텐트 안에서 자기전까지 나란히 누워 아이가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주는데, 아이가 자기가 하고픈 말을 내게 다 하곤 "이제 자자" 말하고 잠을 청하는 코스로 이루어진다. 오늘 아이가 잡은 주제는 무엇이었는고 하니, "엄마 뱃속에 있을 땐 뭐 먹었어?"였다. 아이에겐 궁금할 법하다 싶었다. 엄마가 너를 뱃속에 품었을 때, 처음엔 입덧을 해서 잘 못먹고 게워내다가 새콤달콤을 먹었던 얘기도 하고, 그러다가 지금 평소 먹는대로 먹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아이 배꼽을 가리키며 "배꼽 있지? 원래는 그 배꼽에 줄이 있어서 엄마가 먹은 음식의 영양분이 너에게 간거야" 하고 설명해주었다.
"빨대처럼 내가 먹은거야?"하고 묻는 아이 표현에 빵 웃음이 터져버렸다. 이럴수가 배꼽이 빨대가 됐네. 그치 맞네. 빨대처럼 꽂아서 엄마가 먹은 음식을 네가 먹은 게 맞다고 했더니 수긍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아이와 나의 이야기에 "빨대 배꼽"이란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났다. 아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래는 우리처럼 포유류며 새끼를 낳아 키우고 그와 달리 상어는 물고기며 알을 낳아 키운다며 자신이 아는 지식을 내게 자랑스레 조잘대며 설명한다. 신나게 자신이 말하고픈 것들을 다 말한뒤에야, "이제 자자" 홀가분하게 끝맺는다. 그모습도 어찌나 귀여운지. 독감은 아니었지만 이틀 내내 열에 시달린 아이가 에너제틱하게 말하는 모습이 고마워서 더 귀여운 건지도.
나중에 아이와의 시간에서 어떤 시간이 애틋하게 생각날까 생각해볼 때가 가끔 있다. 아마 자기전에 이렇게 아이가 들려주는 자신감 넘치는 설명과 궁금한 걸 물어보며 독특한 아이의 언어에 웃었던 때가 아닐까 싶다. 우리 아이는 빨대 배꼽으로 영양분을 먹은 아이였음을, "빨대 배꼽"이라는 아이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꿈나라로 갔던 시간을 오래오래 기억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