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29편
겨울이 다가오면 이런 생각이 든다. 따뜻한 난로 앞에서 아니면 따뜻한 이불로 몸을 감싸고 책속에 빠졌다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빠졌다를 반복하며, 반나절 정도라도 시간을 허비하듯 채워보고 싶다고.
장류진의 에세이,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은 꽤나 오래 내 도서관 예약도서였는데, 책을 반납하지 않는 어느 분에 의해 예약에 머물러 있었다. 도서관에 비치된 같은 책 여러 권 중에 하필 그 책을 예약했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검색해보니 대출 가능한 책이 버젓이 나와있어 드디어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이 시기에 이 책을 든 건 우연 아닌 필연이라고 되뇌이면서.
눈에 나무가 묻힌 듯한 핀란드의 풍경. 노을빛과 새하얀 눈이 가득 담긴 사진 한장이 눈을 사로잡는다. 핀란드는 전부터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휘게'라는 단어가 있는, 휴식을 사랑하는 문화를 지닌 핀란드를 여행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추운 나라지만 사우나라는 따뜻한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게 매력적인 곳이 내가 핀란드를 떠올리는 이미지였다.
여행을 가고픈 마음이 샘솟을 때, 누군가의 여행기책에 몸을 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승한다. 추운 겨울이 약간 우울한 건 겨우내 여행이 멈추기 때문이다. 이번엔 장류진 에세이,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에 내몸을 싣고 핀란드로 두둥실 떠가야지 생각했다.
작가가 같은 학교 다른 과 학생으로 한 핀란드 대학교 교환학생으로 만난 친구와 15년만에 다시 핀란드에 가는 이야기. 그 소재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모두 육아의 세계에 한창 빠져있는 친구들과 한해를 넘기는 12월을 바라보면서도 쉬이 송년회 한번 하자고 연락하기 힘든 현실을 마주하고 있기에. 각자의 개인시간을 만드는 게 더 우선일 것 같아 더 선뜻 연락하게 되지 않는 마음도.
이 책을 한 오육십 페이지 정도만 읽었는데도 마음이 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듣고 싶었던 종류의 칭찬'이라던가, '따뜻한 음성을 마음속 깊은 곳에 소중히 품고 곱씹게 되었다'는 말이나, '인생의 소중한 챕터를 고이 접어낸다는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라는 구절들에 잔눈물이 나왔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들을 누군가 해주는 듯 마음을 적시는 기분이 들었다. 점점 더 읽고 싶어졌다.
중간중간에 담긴 사진들이 또 어찌나 마음을 들뜨게 하는지.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일광욕을 즐기는 편안한 모습은 우리 가족이 애정하는 행복의 풍경이다. 일상에세이로 'Let's go picnic' 이라는 글을 썼듯 그 시간은 잔잔한 행복의 풍경으로 머물러 있다. 이 책 안엔 얼마나 풍성한 평온의 풍경들이 담겨있을까 기대가 차올랐다. 핀란드를 보는 호기심과 두 친구의 아름다운 우정여행이 주는 여운들 그리고 사진속 풍성한 풍경들이 이 책을 계속 읽게 하는 동력이 되주었다.
15년전 교환학생으로 핀란드에서 처음 만난 두 친구가 다시 15년만에 핀란드에 가서 느끼고 경험하는 10박의 시간을 온전히 대리 체험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어느 시기가 되면 인생은 겪어온 시간과 현재 겪는 시간 간의 교차 기억임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그 교차 기억으로 이야기가 물 흐르듯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세계 1위의 커피원두 소비국이어서 커피부심이 있는 핀란드에서 커피를 마셔보고 싶어졌고, 핀란드의 상징 같다는 시나몬롤을 떠올리며 침을 꼴깍 넘어갔다. 사유지여도 누구든 숲에 들어가서 누릴 만인의 권리가 있다는 핀란드의 자연을 마음껏 누려보고도 싶었다.
이 에세이는 두 친구가 처음 만난 대학교가 있는 핀란드 쿠오피오에서 시작해 저자에게 특별한 소설의 공간인 탐페레를 거쳐 헬싱키에서 끝이 난다. 쿠오피오와 탐페레에서는 친구들과의 추억이 메인인 느낌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헬싱키에서 친구와 여행을 하면서도 자신의 내면에 조용히 침잠하며 생각을 이어가는 부분들이 참 좋았다. 마음에 남았다. 가족에 대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에 동질감을 느끼면서. 또 다른 세계의 내모습을 상상하는 것. 또 다른 유니버스에 살고 있는 내모습을 상상해보는 게 유한한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 조금 다른 모습으로도 살아보고픈 욕구를 채우기에 참 좋은 방법이 아닐까. 그 방법을 알려준 작가에게 고마웠다. 이 책을 다 읽고나면 난 또다른 어떤 삶을 상상하는지를 생각해보면서 나만의 소설을 그려보고 싶어졌다.
헬싱키에서 오디 도서관엔 꼭 한번 가보고 싶어졌고, 추운 걸 싫어하는 우리 가족에겐 여름 핀란드 여행이 딱이겠다는, 여름 핀란드 여행을 마음에 품게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으면서, 티없이 맑아서 모든게 반짝거리는 핀란드의 완벽한 여름 날씨를 너무나 느껴보고 싶어졌다. 자작나무 접시도 사고 싶고, 르베인이라는 브런치카페도 가고 싶고, 특히 사우나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황홀한 경험도 해보고 싶다.
이책은 핀란드 여행 전에 한번 더 읽어 봐야할 책으로 기억될 듯하다. 내가 강릉여행 가기 전 두근두근한 마음을 증폭시키려고 <강릉 한달 살기>라는 에세이를 두번째로 읽었던 것처럼. 꼭 한번 더 읽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