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5편
책 표지가 봄날을 지나가는 내게 손짓했다. 그 손을 슬며시 잡았다. 언제든 미지의 세계인 새책을 만지는 순간, 책표지를 넘기는 그 순간의 희열은 최상의 기쁨을 준다. 시작이다. 들어가서 빠져있다가 기쁘게 거닐다 오자.
'소설집'이라고 적혀있었는데 에세이에 치우쳐졌던 책편향에 오랜만에 소설책을 읽었더니 단편들을 모았다는 걸 몰랐다. 아, 소설집, 단편소설들을 모았구나. 오히려 장편보다 짧게 끊어지는 단편소설이 내게 더 맞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생각해보면 예전엔 한국근현대소설집으로 해서 김동인의 <감자>, 염상섭의 <발가락이 닮았다> 등을 읽곤 했는데, 중학생 때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내 삶에 이렇게 다양한 시간의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있다는 것을 느닷없이 깨달을 때면 깜짝 놀란다. 그러고선 나이가 주는 기억의 벽돌들에 감사함이 스친다. 이렇게 잘 가꾸어 왔구나, 돌이켜 볼 순간들이 이리 많구나.
백수린 소설집, <봄밤의 모든 것>이 좋았던 건, 자연스레 흘러가는 말투였는지 모른다. 쉼표가 거의 없고 마침표(.)로 자주 이어지는 글. 단편소설마다의 등장인물이 내면에서 쏟아내는 말들을 마침표(.)로 이어서 녹여낸 자연스러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있는 느낌이 참 즐거웠다.
앵무새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다시 내옆에 있는 존재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느끼는 사람,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고 그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들은 공감의 말을 소중히 기억하는 사람, 어떤 검열없이 열렬히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언제오건 존중하는 마음을 떠올리는 사람, 상처 준 사람에게 용서의 말을 서로 듣고파하면서도 쉽게 다가서지 못하다가 하나의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화해의 희망을 연 사람, 상처를 딛고 또다른 삶의 희망이 온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이 무기력에 빠진 사람에게 한 에피소드로 그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장면, 노인의 죽음을 상상하며 자신에게 오게 될 죽음을 떠올려보는 사람.
이런 글들이 <봄밤의 모든것> 단편소설안에 담겨있다. "나에게는 성급한 판단을 유보한 채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직시하고 찬찬히 기록하는 것이 사랑의 방식"이라고 말하는 <여름의 빌라>가 내 독서를 이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