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23편
펌, 머리를 볶았다. 펌이란 그동안 내게 신비한데 쉽게 다가가기 힘든 영역이었다. 사람마다 어울리는 머리가 다른데 내겐 펌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그러다 점점 머리카락이 착 달라붙는 느낌이라 머리에 볼륨감을 주고 싶어 용기 내어 펌에 도전했다. 펌을 한 내 모습을 보고, 잘 어울린다고 주변 사람들이 호응해 주어 얼떨떨했다. 자각하는 모습과의 괴리감에서 오는 반응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내 파마의 역사가 순탄치 않아서 그런 인식이 생겼나 싶다.
내 첫 파마는 유치원 졸업사진 속에 있다. 할머니 손에 자란 어린 시절, 할머니가 동네 가정집 미용실에 데려갔던 기억이 정말 어슴푸레 난다. 아마 파마할 때 머리를 마는 롤들이 작은 내 머리통의 머리카락들을 꽉 잡아당기는 아픔, 파마약품이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흐르는 간지러움 같은 감각이 강렬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한가득 롤을 말고선 수건을 뒤집어 쓴, 손녀와 함께 파마를 한 할머니의 모습까지. 그런 생소하고 신기한 장면들과 감각들이라 내 기억 저편을 차지하고 있었으리라. 어쨌든 유치원 졸업사진 속 내 모습은 지금 부르는 펌종류로 이르자면 '히피펌'에 해당한다. 히피펌을 한 긴머리 유치원생이라니. 그 모습이 귀엽다며 한동안 그 사진은 우리집에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었다.
내 생애 두번째 펌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내내 입시에 억눌려 있던 고등학생은 과감히 동네 미용실에 갔었다. "파마해 주세요." 라고 수줍게 말했겠지. 그때 펌에 어떤 종류가 있는지 설마 알았을까. 장담하건대 몰랐을 것이다. 지금도 펌을 하려고 하면 펌종류부터 검색하고 있는 어른이니까. 그 수줍던 아이는 살짝만 자연스레 컬이 들어간 펌을 원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치만 그때만 해도 동네 미용실은 뽀글뽀글한 컬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막 미용 자격증을 따신 분들이 막 개업한 동네미용실이 대부분이었으니. 그런 사정에 어두웠던 고등학생은 꽤 얇고 뽀글한 단발펌(하물며 단발머리였다)을 하곤 졸업식 단상에 올랐다.
그런 슬픈 펌의 역사를 지녀서인지 중단발을 지나려 하면 기르지 않고 중단발을 유지하거나 단발로 커트를 하곤 했고, 펌을 해도 소심하게 머리 끝만 살짝 구부리는 'C컬펌'을 시도했던 것 같다. C컬은 사실 펌을 한 티도 잘 나지 않고, 볼륨매직 정도를 한 머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펌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티나지도 않고 잘 어울리지도 않으면 왜 하나 하는 마음으로. 분위기 전환용으로 정말 5년에 한번 정도 할까말까 하면서.
펌을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순전히 분위기 변화용이다. 눈에 보이는 변화를 주고 싶을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입는 옷 스타일 변화 이외엔 머리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 마음으로 용기내어 한 이번 펌은 'S컬펌' 종류로 '물결펌'이라고 조금 굵은 컬의 펌이다. 내가 해온 펌 중에 제일 자연스럽고 잘 어울리는 펌인 듯하다. 그래도 아직 내 모습이 전혀 익숙하지 않고 어색하다. 내 마음 속엔 펌을 자주 하지 않는 사람 특유의 긴장감이 이어진다. 펌을 한 뒤 새로 구입한 샴푸, 헤어팩, 단백질 에센스인 컬크림까지 매일매일 삼단계를 거친다. 물결펌 머리가 그날그날 드라이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게 신경쓰이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보이는 내가 신기하다고도 느낀다.
긴머리 히피펌을 한 유치원생에서 뽀글이 단발펌을 한 고등학생을 지나 물결펌을 한 어른이 되어 있는 내 모습. 그 모든 시절이 단 한 사람이라는 게 아연하게 느껴진다. 내 파마의 세계는 앞으로도 간간히 이어질 것이고 지금처럼 새로운 국면도 맞이할 것이다. 지금 내 마음은 그게 무엇이든 잘 어울린다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