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혼자 간 영화관

일상에세이 29편

by forcalmness

연말 아주 오랜만에 혼자 영화관에 들러봤다. 연말연초에 바쁜 신랑을 두고 12월에 나만의 휴가를 이틀이나 내고 있어 일말의 미안함이 없진 않지만. 한해 잘 버티고 뚜벅뚜벅 잘 걸어와준 스스로에게 선물 같은 즐거운 시간을 찾기로. 요즘 깊고 잔잔한 고요의 시간을 찾아 헤매고 있는 중인데 번뜩 영화관이 생각났다. 생각해보면 신랑과 신혼 초 집을 구했을 때 좋아했던 부분이 집에서 걸어서 영화관이 있다는 점이었다. 신기하게도 신혼 초에 살았던 곳도, 지금 사는 곳도 걸어서 코 닿을 거리에 영화관이 있다.


영화관은 참 신기한 장소다. 두시간 남짓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깜깜한 곳에 가만히 앉아 앞의 영화를 아무 말 없이 들여다본다. 주변이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한 곳만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시간. 누군가가 만들어낸 응축된 서사를 음미하는 농밀한 시간. 가끔 그저 누군가의 잡다한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공간에 스스로를 놓아주고 싶을 때 평일 낮의 영화관은 그 최적점이다. 듬성듬성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내 한 자리를 찾아 앉아 있으면 이 세상이 이렇게 고요할 수도 있구나 감사의 팡파레를 혼자 울리고 싶을 정도다. 그런 시간과 공간을 찾아 온 사람들만 모여있나 싶게.


취업준비를 꽤 오래할 때 가슴이 너무 답답할 때 숨통을 트여주고 싶을 때 평일 조조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곤 했다. 그 안에서는 울어도 보이지 않고 졸아도 상관없고 누구 하나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의 세계라 한없이 편안했다. 아침 8시 반쯤 시작했던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오면 어둠을 헤치고 새로 태어나 빛의 세계로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깜깜한 어둠이 깃들었던 영화관 문이 열리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회를 주는 것 같았다. 두세 시간 침잠했다 깨어 나오는 비밀의 공간이 내겐 영화관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영화를 보면서, 재밌게 봐 눈빛을 교환하고 각자 몰입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 영화를 보며 영화가 주는 감각과 여운을 함께 공유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이 될 때도 있고. 우리 이 영화 그 때 그 시절에 영화관에서 봤잖아 얘기할 때도 기뻐진다. 같은 어둠에 속해 빛나는 순간들을 응시했던 기억으로.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할 때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친구와 영화관에 가는 것도 즐겼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한 친구와만 매번 갔고, 해리포터 시리즈도 또 다른 한 친구와만 갔었다. 반지의 제왕 세 시간 러닝타임 동안 주구장창 어떻게 앉아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화장실도 가지 않고 계속 앉아서. 나와서 아마 바로 달려갔겠지. 그 친구들도 날 그 영화와 연결지어 떠올릴까 문득 궁금해진다.


연말, 한해가 이틀 남은 오늘, 혼자 영화관에 가길 참 잘했다. 오랜만에 풋풋한 멜로 영화 한 편을 봤다. 흐르는 눈물을 혼자 손으로 훔쳐가며. 그 눈물로 마음이 정화되었다. 마음의 찌꺼기들이 빠져나가 깨끗해진 기분이 든다. 영화관은 이렇게 내게 정화의 공간도 되어준다. 내년엔 조금 더 자주 영화관을 찾아야겠다고 생각 중이다. 어둠 속에서 고요한 시간에 놓이고 싶을 때.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시키고 싶을 때. 이렇게 좋은 공간을 왜 잊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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