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
20세기 중반 이후 서구의 인문학 서적을 읽다보면 아우슈비츠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 2차 대전 중 나치는 특정 인종을 절멸시키겠다는 계획 아래 수용소를 세웠고, 철저한 계산 아래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 유대계 이태리인 프리모 레비는 지옥과 같았던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던 작가이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자신의 수용소 체험을 여러 편의 글로 남겼다. 그의 첫 번째 책 <이것이 인간인가>는 수용소로의 이동에서부터 수용소가 해방되는 시점까지를 다룬 중요한 역사 기록이다.
끔찍한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상황에 대한 자극적인 표현 없이 경험에 대한 차분하고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수용소로의 수송은 주로 기차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기차는 하루에 한 번, 많게는 다섯 번까지 불철주야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도착한 이들 중 열에 아홉은 바로 가스실에 들어갔다. 간수들은 대개 방역을 위해 샤워를 시키는 것이라고 알리고는 입실이 완료되면 가스를 주입했다. 잔여 가스를 모두 제거하고 시신들을 치우는 등 가스실의 사후처리 작업은 유대인 포로 작업반인 존더코만도에 의해 수행되었다.
수용소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죽음이 닥칠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나가는 길은 굴뚝으로 나가는 길 뿐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별 다른 저항 없이 온순하게 수용소 생활을 견뎌 냈다. 작가는 완벽한 행복이란 실현 불가능하듯이 완벽한 불행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실낱같은 희망이 압도하는 불행으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돌려놓는다는 것이다. 겨울 추위가 가시면 사람들은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오늘 “배만 고프지 않다면!”하고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나 있는 듯 말한다.
작가는 수용자들의 운명을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라는 유명한 비유로 설명한다. 수용소에서 수인은 삶 아니면 죽음이라는 두 가지 선택 외에 다른 아무런 가능성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삶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어서 누군가의 구원으로만 가능하였다. 작가는 이 상황이 물에 빠진 사람이 구조되거나 익사하는 두 가지 가능성만을 가진 것과 같다고 말한다. 보통의 삶에서는 한 사람이 완전히 혼자서 길을 잃는 일이 자주 발생하지는 않는다. 한 국가가 문명화될수록, 비참한 사람은 너무 비참해지지 않도록, 힘 있는 사람은 지나치게 많은 힘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지혜롭고 효과적인 법률들이 더욱 더 많아진다.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의 구분은 이러한 안전장치를 모두 제거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수용소 경험을 통해 작가는 신의 존재, 건강한 인간성에 대한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아우슈비츠가 존재했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시대에 그 누구도 신의 섭리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수용소 안에서 신에게 많은 것을 기댔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절망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함 때문이든 미래를 볼 수 없는 인간의 한계 때문이든 그는 신이 사라진 시대에도 신을 찾았던 셈이다. 작가는 익사한 사람이 아니라 구조된 사람이었다. 레비는 그 구조가 단순히 행운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끝내 행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살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