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홉스봄
긴 인류사 속에서 백 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 조선은 오백 년을 지속했고 인류의 진화에는 백만 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백 년을 못사는 인간에서 지난 백 년의 시간은 자신이 경험한 전부이며 우리가 볼 수 있는 전 세계일 수도 있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1917년 6월 9일~2012년 10월 1일)은 <극단의 시대>에서 지난 세기를 단기 20세기 혹은 극단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는 이 책에서 정치사 뿐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지난 세기를 조망하고 있다.
그는 세계대전 발발(1914)과 소련 붕괴(1991)를 이 시대의 경계로 삼고, 그 전반부를 ‘재앙의 시대’로 후반부를 ‘황금의 시대’로 구분했다. 이 책에 따르면 재앙의 시대에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사회주의는 초기부터 무력했고 갑자기 닥쳐온 공황에 시장은 과격한 민족주의를 낳았다. 전반기의 실패는 1945년 이후의 사회를 바꿔놓았다. 두 번의 전쟁 후에는 승전국도 제국을 유지할 수 없었고 희생을 감내했던 민중들도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다. 반면 이 시기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의 다른 책 장기 19세기 연작을 읽은 사람은 짐작할 수 있겠지만, 홉스봄은 20세기를 짧고 강렬했던 경험들이 지배했던 꿈같은 시기도 보는 것 같다.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에서 그가 본 19세기는 인간 이성이 깨어나고 욕망이 꿈틀대며 지구가 요동치는 역동적인 시대였다. 비록 몰락을 예견하고 있었지만 하나의 흐름 속에서 방향을 정해 나아가던 시대였다. 그러나 홉스봄에게도 20세기는 그렇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가 세기 앞에 굳이 장기와 단기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난 세기 가장 큰 사건은 사회주의 실험이었다. 그는 소련 체제가 후진 농업국의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데는 유효했지만, 그것이 인류가 선택할만한 바람직한 체제였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 속에는 자본주의의 현실적 대안이 사라진 것에 대한 비애도 담겨 있다. 그는 사회주의의 이상마저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현실적 비애를 누르고 냉정하고 날카롭게 지난 시대를 분석한다. 우리는 이 책에서 이상의 실현은 사실에 대한 치열한 인식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않은 강인한 역사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확한 문구는 떠오르지 않지만 홉스봄은 그의 <역사론>에서 역사가의 일은 기억을 지키는 것이라 했다. 남들이 모두 잊고 지나가는 일을 굳이 들추어내어 보여줌으로서 다음 세대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일이 역사가의 임무라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것이 어찌 역사가만의 임무이겠는가.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일은 앞선 세대가 가진 당연한 의무이다.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 분명한 경험까지 거부하고 왜곡하는 우리 시대의 기성들을 보면 나이 드는 것이 부끄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