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그 라르손,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
어렸을 때 접할 수 있었던 외국소설은 주로 서유럽과 일본 작품들이었다. 예외라면 러시아 소설 정도였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체홉 등. 하지만 요즘은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문학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전문 번역가들이 많아지고, 비서구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대형 서점에 가보면 한 쪽에 독일과 북유럽의 추리 소설들이 무리를 이루어 전시된 것을 볼 수 있다.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는 내가 처음 접한 스웨덴 소설이다.
이 소설은 스웨덴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영화로 만들어져 잘 알려진 ‘밀레니엄’ 연작의 첫 편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재미있다. 1부를 읽고나면 2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3부 <벌집을 걷어찬 소녀>를 꼭 찾게 된다. 소설은 잡지 ‘밀레니엄’의 저널리스트 ‘미카엘’이 한 기업 가문의 어두운 과거를 캐는 것을 주요 서사로 한다. 이 과정에서 미카엘은 천재 해커 ‘리스베트’의 도움을 받는다. 그녀가 문신을 한 소녀다. 사진 한 장을 근거로 시작된 수사는 한 집안의 추악한 과거를 파헤치게 되고 예상치 못한 결론으로 독자를 이끈다. 당연히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긴박하고 흥미롭다.
서사를 따라가는 재미 못지않게 낯선 스웨덴의 문화를 엿보는 재미 역시 놓칠 수 없는 소설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등장인물들은 성적으로 매우 개방적이다. 주인공 미카엘은 ‘밀레니엄’ 여편집장과 공공연한 친구 관계이다. 유부녀인 그녀는 남편과 문제없이 지내는데, 남편은 양성애자로 아내와 주인공의 관계를 용인한다. 리스베트는 동성 친구와 동거하는데 함께 일하면서 미카엘을 사랑하게 되고 자주 사랑을 나눈다.
추리소설이지만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이 소설의 특징이다. 멀게는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나치 유산에서부터 가깝게는 정부와 결탁한 경제 범죄까지 복지국가 스웨덴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무리 없이 보여준다. 무엇보다 리스베트를 둘러싸고 이어지는 여성에 대한 성적인 학대는 ‘밀레니엄’ 연작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법적 보호자이면서도 그녀의 성적인 굴종을 강요하는 변태에게 그녀가 복수하는 장면은 매우 통쾌하다.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의 추리 소설이 최근 많이 번역되고 있다. ‘밀레니엄’외에 ‘스노우맨’,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재미있게 읽은 작품들이다. 북유럽 소설은 같은 추리소설이지만 일본이나 미국 소설과 다른 면이 있는 듯하다. 일조량이 부족한 국가의 소설이어서 그런지 다른 나라의 추리소설보다 음침하고 잔인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이들에게서는 무언가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독특한 매력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