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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의자 Jul 22. 2020

브라운 신부와 미스터리를 읽는 재미

체스터튼, 존 불노이의 기괴한 범죄

이름은 자주 들어보았어도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는 작가들이 종종 있다. 주로 비평이나 기사를 통해 중요한 작가라느니 의미 있는 작품을 남겼다느니 하는 정보를 얻지만 별 인연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는 작가 말이다. 내게는 영국 작가 G.K. 체스터튼이 그런 경우였다. 보르헤스를 통해서 처음 그의 이름을 접했고 이후 그가 엮은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를 통해 몇 작품을 읽었다. 보르헤스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가 이름에서 체스터튼을 빼놓지 않았다.      


이번에 큰맘 먹고 체스터튼 추리 소설을 엮는 <브라운 신부> 전집을 구입해 읽었다. 추리 소설의 서사에 미스터리 요소가 가미된 보르헤스 소설의 연원이 여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코난 도일이나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과는 다른 종류의 추리 소설 수십 편을 취한 듯 졸린 듯 재미있게 읽었다. 브라운 신부는 홈즈, 푸아로와 함께 추리 소설 3대 탐정으로 꼽힌다고 한다. 체스터튼의 소설에서는 코난 도일이 아니라 애드거 앨런 포우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서사를 이끄는 힘이 문제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 마무리될지에 대한 궁금증에 있다는 점에서 미스터리와 추리 소설은 통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기괴한 사건에 빠져 인물이 겪게 되는 초조, 긴장, 공포는 미스터리 고유의 영역이다. 그래서 미스터리의 고유한 분위기를 실제 읽지 않은 이들에게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서사를 건조하게 풀어 설명할 수는 있지만 거기에 빨려들어 경악할 만한 경험을 하게 되는 인물의 심리까지 전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추리 소설과 미스터리는 하나의 양식으로 통합되기 어렵다. 홈즈로 대표되는 탐정 소설은 근대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과학과 그것이 만들어낸 도시 문명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근거와 증거에 따른 합리적 추론을 근거로 수사하여 미신의 세계에 빛을 비추는 것이 근대 탐정 소설의 특징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는 일로 만드는 것이 탐정의 역할이기도 하다. 미스터리란 결국 만천하에 명명백백한 논리로 설명되어야 할 운명인 것이다.      


그러나 체스터튼의 소설은 그렇지 않다. 추리 소설이면서도 미스터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소설에서는 미스터리한 방법으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고 사건이 끝내 미스터리로 남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탐정으로 신부가 선택된 것은 필연 같기도 하다. 그는 미스터리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과 끝내 사실을 밝히지 않고 내버려 둘 아량을 갖추고 있다. 철저히 따져 범죄자를 검거하는 도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가능한 최선의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 일도 그에게는 무척 중요하다.      


추리적 요소와 미스터리적 요소가 약하기는 하지만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은 「존 불노이의 기이한 범죄」이다. 무명의 옥스퍼드 출신 존 불노이는 소박하게 칩거해서 사는 인물이다. 어느 날 저녁 신문 기자 둘이 그가 사는 펜드레곤 파크를 방문한다. 한 저속한 신문사에서 온 댈로이 기자는 스캔들의 냄새를 맡고 왔으며, 미국 신문 기자 키드는 불노이가 쓴 논문을 취재하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한다. 불노이와 이웃에 사는 클로드 챔피언 경은 영국의 10대 명사 가운데 한 명이다. 대단한 스포츠맨이자 정치가이며 부유한 인물이다. 볼노이와 챔피언 경은 부유한 대지주와 가난한 무명학자로 지위는 달랐지만 학창 시절부터 변함없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천박한 댈로이 기자의 관심은 얼마 전부터 챔피언 경이 불노이의 아내에게 치근덕거리기 시작했다는 소문이다. 기자들이 도착한 밤은 클로드 챔피언 경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야외 공연을 열기로 한 날이었다. 챔피언 경이 로미오 역을 맡았고 불노이의 아내가 줄리엣 역할을 맡았다. 언젠가 문제가 생길 것이라 예상한 기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밤이었다. 관심이 달랐던 키드는 불노이를 방문한다. 그때 현관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수수한 차림새의 나이 지긋한 하인이었다. 미리 약속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불노이가 급한 일이 있어서 출타했다는 말만 듣는다. 이 시간쯤 펜드라곤 파크에서 챔피언 경이 목숨을 잃는다. 그는 사람들에게 “불노이가…… 내 칼을…… 나에게 던졌어……”라는 말까지 남긴다. 사람들은 연극을 하는 줄 알면서도 그 자리에 오지 않은 불노이를 의심한다. 불노이가 살인 예상 시간에 집에도 극장에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를 불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브라운 신부는 이 사건을 살인이 아닌 자살로 밝혀낸다. 챔피언 경은 평소에도 불노이를 질투하고 있었다. 불노이가 부자이자 유명인인 자신을 전혀 부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질투는 불노이가 논문으로 유명해지자 더욱 커진다. 참다못한 챔피언 경은 불노이의 아내에게 구애하는 등 그를 자극하기 위한 행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 하지만 불노이의 아내도 그의 애정 공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에 분통이 터질 정도로 질투를 느낀 챔피언 경은 펜드라곤 파크의 저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죽으면서 불노이가 자신을 죽였다는 듯한 말을 남겨 마지막 질투심을 폭발시키면서. 하지만 그가 죽을 때도 불노이는 집에서 혼자 행복한 독서에 열중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 사건에서 브라운 신부가 밝혀낸 불노이의 범죄는 하나이다. 불노이는 기자가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 집에 있었다. 하지만 집사인 척하고 자신이 산책을 나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독서에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잡지사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불노이의 이론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런 잡지사의 기자가 약속까지 하고 인터뷰하러 왔는데 그는 독서에 방해가 된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는 욕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 하는 행동이다.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보기에 불노이는 이해하기 어렵고 질투까지 가질만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챔피언 경은 자살은 매우 기괴하지만, 그의 자살이 전하는 메시지가 결코 허황되지는 않다. 오히려 인간 본성의 일면을 극적으로 간취하여 밝혀낸다는 느낌을 준다.      


글을 마치니, 더러운 짓을 일삼는 인간들이 ‘너는 얼마나 깨끗한지 보자’며 게거품을 물거나, 치부를 들춘답시고 졸렬하고 치사한 짓을 서슴지 않는 장면이 떠오른다. 아침부터 기분 나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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