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움베르토 에코
“그녀는 완벽하다. 그녀에게 일은 일이고 사생활은 사생활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연적에 대한 질투심이 가슴에 사무쳐 온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대의 꽃을 꺾고, 샘물 같은 입을 훔치리라. 해면을 채취하는 잠수부 주제에 그 희귀한 진주를 얻고서도, 그자는 자기가 진정 무엇을 얻었는지 모르리라.”
움베르토 에코가 그의 다섯 번째 소설인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에서 발레리의 시를 인용한 부분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는 심정을 이렇게 절절하게 표현하다니. 에코(발레리)는 아직 본 적도,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연적을 향한 질투로 자신의 사랑을 대신 드러낸다. 그 연적이 누가 되었든 그녀의 가치를 자신만큼 알 수 없고, 분수에 맞지 않게 얻은 행운을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할 것이라고.
물론 이 소설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사고로 사적인 기억을 잃어버린 주인공의 과거 찾기가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주인공은 백과사전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과거 자신이 감각했던 정서적 경험은 모두 잃어버린 고서점 주인이다. 주인공은 잃어버린 감각적 기억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추적한다. 그가 하나씩 찾아가는 기억의 내용을 따라가는 일이 이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재미이다. 만화에서 영화, 노래까지 작가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문화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이 고서점 주인에서 작가 에코를 떠올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독자는 문화에 대한 에코의 해박한 지식은 물론 그가 경험했을 것 같은 파시즘 시절의 이탈리아를 만날 수 있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점이 되면 과거를 찾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것과 관계된 기억이든 미래를 보고 달려온 사람에게 낡고 허름한 과거는 갈등 없는 편안한 휴식을 제공해 준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도 LP로 노래를 듣고, 오래된 필기구를 사모으고, 옛날 영화를 다시 찾는 인구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이런 보편적인 인간의 생리와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책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유럽의 20세기 문화가 모두 익숙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그것이 과거의 것이라는 점에서 모두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감상이 아니리라. 과거만큼 아름다운 영토는 달리 없으니까.
에코는 내게 질투심을 유발하는 작가이다. 그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많은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기호학자로서 저널리스트로서 그가 얻은 명성도 부럽다. 그의 외국어 능력은 차마 부럽다는 말도 못하겠다. 게다가 그는 이런 소설을 한번 써봤으면 좋겠다고 잠시 내가 꿈꾸던 그런 소설을 써낸다. 첫 소설 <장미의 이름>부터 마지막 소설 <제 0호>까지 그랬다. 그런데 오랜 질투의 대상이던 그가 이 세상에 없다. 아쉽고 쓸쓸한 일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사랑이란 어떤 감정일까? 우리는 왜 그 희귀한 진주를 얻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젊은 시절 누군가 그녀의 꽃을 꺾을까 두려워 잠을 못 이룬 날이 그리 많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