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로라 와인 Nov 24. 2017

요리에 대한 첫인사, 가니시

너의 재료에 집중해, 끝까지

"지애, 그 블루베리 중에 네다섯 개 정도는 빼놓자, 그거 가니시에 쓰자."

"이거 가니시에 쓰실 거예요?"

"응, 블루베리 소스를 쓰니까, 블루베리를 가니시에 써도 좋아." 


* 이날 랍스터 소스로 사용된 블루베리 소스 역시, 랍스터를 반으로 고를 때 나오는 랍스터의 육즙을 모두 사용해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소스에서는 블루베리 향기와 바다 냄새가 난다. 



가니시: 요리나 음료에 장식 또는 곁들임으로 사용되는 식재료. 한식의 고명에 가깝다. 요리에서의 가니시는 흔히 그 맛이 강하지 않고 담백하거나 부드러운 식감의 식재료를 소테 하여 많이 사용한다.
*위키피디아*


파스타를 제외한 모든 음식에서 가니시를 사용했다. 

가니시를 만들 때는 가장 단순하게, 절대 메인보다 시간을 많이 가져가거나 더 노력하지 않는다. 메인 요리가 놓칠 수 있는 맛의 발란스를 기본으로 하며, 메인이 주지 못하는 식감을 대신하거나, 메인과 같은 식감을 가져가면서 메인을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오!! 이거 너무 예쁜 거 같지 않아요? 이거 가니시에 쓸래요."

"그걸 왜 써? 그건 요리에 들어간 재료가 아니잖아. 가니시는 요리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해. 그 요리의 메인 재료와 조리과정을 가장 처음에 눈으로 소개해 줄 수 있어야 가니시야. 너의 요리와 상관없이 예쁘기만 한 것을 전시하려면 그건 미술관에서나 하는 거지."


역시 오늘도 꽝, 

아니 가니시는 접시를 아름답게 하면 끝 아니었나?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던 말던, 그게 요리의 재료와 상관이 있던 없던 아무 접시에나 파슬리를 올리고, 허브를 뿌렸다.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재료를 삶고 볶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요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 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하나의 도구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접시에 담긴 요리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보는 사람을 항상 염두해야 한다. 

가니시는 요리가 처음 서빙되었을 때, 사람에게 처음으로 시각적으로 인식되는 첫인상인 것이다. 그 첫인상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요리가 가지고 있는 재료를 표현해 주는 것이 마르첼라가 말하는 가니시에 대한 이야기이다. 



옷장이 터질 것 같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옷이 없는 건지, 스트라이프 셔츠를 사 도사도 다 새로워, 간격별로 컬러별로 사이즈별로 다 사모았다. 사놓고 입지 않은 옷들이, 가격택도 그대로 붙어있는 옷들이 항상 있었다. 신발장에는 내 신발만 잔뜩 있었다. 컬러별로 굽 높이 별로 모든 게 다 있어야 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고 어떤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보고 있는지, 내가 맡고 있는 품목이 결국 나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옷들이 결국 나 자신 이자 일이었다. 시장조사를 하다가 하나씩 둘씩 그렇게 사모으고, 한 번에 살 때 많이 샀다. 



"엄마, 보애 오는 편에 감자깎이 칼이랑 반짇고리 좀 같이 챙겨줘. 당근 깎다가 세월이 다 가는 거 같아, 그리고 바지 기장 줄여야 하는데 찾아가기가 너무 귀찮아. 아 그리고 코트랑 스커트도 좀 부탁할게, 여기에서 사러 가는 것도 너무 귀찮아." 

보통 나는 여행을 오면 마치 출장 가듯이 캐리어를 최소한으로 채우고 나머지를 다 그곳의 브랜드들로 채워온다. 지금은 과연 파스타 기계를 캐리어에 넣어갈 수 있을 것인가, 소스병들을 캐리어 말고 가방에 넣는 게 나을지, 핸드블랜더를 살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앞선다. 


세수도 안 하고 스웨터를 챙겨 입고 얼른 시장을 간다. 

2시면 문 닫는 가게가 많아서 얼른 챙겨 부랴부랴 나간다. 

잠깐 필요한 거만 사 와야지 하는 건 그냥 하는 말이고, 이거 저거 만져보고 이 사람저 사람 말하다 보면 2시간이다. 


'미네 스트로에 쓸 거예요, 시금치 이거 오늘 아침 거예요?'

"오, 미네스트로네 만든다고? 그럼 이 시금치가 딱이야, 오늘 아침에 가져온 거야."

"그럼 그거 주시고, 바질도 주세요. 이거 토마토 어디꺼에요? 시칠리아 꺼 찾고 있는데."

"어, 시칠리아 꺼야. 과일은 안 필요해? 오늘 과일이 좋아"

"음...... 괜찮아요. 아, 당근 없어요?"

"아 오늘 당근 없어, 저 앞집에서 사도 되, 저기 당근 있어."


"이거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모데나 거예요?"

"어? 무슨 소리야, 이거 파르마 지역 꺼야."

"오, 그럼 아주 좋네요, 그럼 아주 맘에 들어요. 그거 1kg 주세요."


"이거 새우 어디꺼에요?"

"이거 아르헨티나 꺼야."

"음...... 이탈리아 바다에서 잡은 거 없어요? 난 이탈리아 꺼 찾고 있는데."

"이탈리아 꺼는 이거야 작은 거, 이탈리아 꺼는 작아, 아르헨티나 꺼가 크지."

"하하하하 오...... 이탈리아 남자들 그런 말 잘 안 하던데...... 용기가 있으시네요. 나중에 다시 올게요. 안녕." 



길을 지나가면서 저 사람이 입은 옷이 어떤 브랜드 옷인지 저게 얼마인지에 대해서 몇 번씩 보였다. 어느 지역을 가던 옷차림을 먼저 확인했다. 

지금은 어느 지역을 가든 짐가방을 풀고 시장을 먼저 간다. 그다음 커피, 그다음 빵집 그렇게 하나하나 내가 원하는 것들을 채워 넣는다. 



우연히 백화점을 들어갔다가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낸 곳은 5층 주방기구와 접시 매장이었다. 이제 손에서는 마늘 와 양파 냄새가 나고 매니큐어는커녕 손톱을 기르지도 않는다. 향수는 방향제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정해,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재료와 요리를 벗어난 것이 아니야.
그건 요리가 가지고 있는 본질을 가장 먼저 보여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해. 



가니시는 항상 마지막이다. 가장 처음 보이는 인상이지만 가장 마지막에 결정한다. 

모든 메인 재료들의 조리과정이 끝나고 나서, 모든 재료들의 구성이 마무리되고 난 후, 마지막 kick point를 가니시가 보여준다. 많은 과정과 생각 끝에 가니시가 접시를 마지막으로 채우고, 우리는 가장 처음 가니시를 보며 요리를 이해하게 된다. 


자, 당신의 가니시는 무엇인가.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요리의 마지막은 어떤 가니시가 올라가게 될까.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감각에 집중해,  규칙은 중요하지 않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