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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라 와인 Nov 17. 2017

너의 감각에 집중해,
규칙은 중요하지 않아.

중량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것은 발란스야.  

"마르첼라, 이거 몇 그람 넣는 거예요?" 

"지애, 지금 모하니? 저울은 필요 없어. 
이탈리아 요리는 그런 걸 사용하지 않아. 중요한 건 발란스야. 지금 팬에 있는 너의 재료에 대한 발란스를 생각해. 중량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그건 그냥 가이드일 뿐이야." 



자, 내가 한국에서 요리할 때를 생각해 보자. 


'헐, 나 지금 이거 스푼 흘러넘쳤어 어떻게 해.'

'나 저울 없는데 밀가루 얼마나 넣는 거지?'

'15분이랬지? 알람 맞춰 넣고 확인해야지.'


그래서 항상 정량대로 규칙대로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려 뒷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었다. 

파스타도 마찬가지로 알단테 9분이면 나는 9분으로 알람을 맞춰 놓았다. 뭐가 알단테인지 파스타가 끝나는 시점은 언제여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없이 그저 파스타 봉지에 쓰여있는 대로 시간을 지켰다. 




"펜 달궈졌니?"

"네, 지금 좋아요."

"그럼 지금 올리브 오일을 넣어."

"지금요? 얼 만큼요?"

마르첼라가 바들거리며 팬을 잡고 있는 나의 곁으로 온다. 

"자, 부어봐. 하나, 두울, 셋. 됐다."

나는 빤히 마르첼라를 쳐다본다. 이게 모야 이게 다야?라는 눈빛으로 

"이게 끝이야. 네가 하려는 요리의 양과 재료들을 봐봐, 그리고 불이 어느 정도인지 느껴, 그런 다음에 오일 병을 들고 하나, 둘, 셋 이렇게 세면 끝이야. 숫자는 너 맘대로 하는 거야."


하루는 날씨가 좋고 어느 날은 흐리다. 

어느 날은 갑자기 너무 덥고 또 갑자기 추워지기도 한다. 

어떤 날은 크림을 많이 넣고, 어떤 날은 마늘을 적게 쓴다. 

어떤 날은 라즈베리 대신에 블루베리를 사용하고, 가끔은 화이트 와인 비니거 대신에 레드와인 비니거를 사용한다. 소세지를 구하지 못한 날은 빵과 판체타를 갈아서 고기 속을 채운다. 

생각보다 주방에서는 많은 변수들이 있다. 


"밀가루와 세몰리나의 중량의 정도를 7:3으로 넣나요? 왜 오늘은 지난번 파스타 때보다 반죽이 더 찐덕거리는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날씨가 다르기 때문이야. 기본적으로 밀가루 100g은 달걀 1개가 필요해. 하지만 그건 기본적인 규칙을 뿐이야. 매일매일 날씨가 다르고 습도와 온도가 달라. 그렇기 때문에 매일매일의 파스타가 달라지는 거야. 네가 원하는 정도를 찾아. 너의 손바닥으로 그걸 느끼면서 밀가루를 조금씩 조금씩 한 번에 말고 조금씩 더해가면서 파스타의 텐션의 정도를 정해. 

그렇기 때문에 한 번에 다 넣지 말라는 거야. gradually gradually 너의 느낌으로 만드는 거야." 


마르첼라가 만든 요리책은 재료를 확인하고 순서를 확인하기 위해서만 사용한다. 

대부분의 경우, 베이킹을 제외하고, 재료의 기준점을 정하고 그거에 맞는 다른 재료들의 양을 조절한다. 요리책에 쓰여있는 재료가 중량들은 모두 아주 기초적인 가이드라인으로만 사용한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들도 있다. 

생각보다 버터를 많이 넣었다던가, 생각보다 오일이 적게 들어갔다던가 하는 상황들이다. 

하지만 그런 변수들을 끊임없이 눈으로 보고, 냄새로 맡고, 피부로 온도를 확인하면서 고쳐나간다. 그렇게 하나의 요리가 완성된다. 그러한 변수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하여 불을 점차적으로 올리고, 육수를 몇 번에 나눠서 붙고, 밀가루를 점차적으로 더한다. 


기본적인 가이드로 파스타는 세몰리나 100g 당 달걀1개를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그 목적성과 날씨, 재료의 특성에 따라 가변적으로 변할 수 있다. 


그래서 요리는 재미있으면서 겁나는 일이었다,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하고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요리는 나에게. 

책을 계속 보면서 이다음이 이 건지 저 건지 숟가락을 잡은 손을 벌벌 떨면서 한 방울도 오차 없이 넣으려고 했다. 이렇게 하면 맛없을까 봐, 이렇게 넣으면 안 예쁠 까 봐, 무서웠다. 완성품이 예쁘지 않을까 봐 무서웠다. 맛있는 것도 맛이지만 내가 순서에 틀리게, 규칙에 어긋나는 과정을 지나가는 것 일까 봐 무서웠다. 


나는 틀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틀을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다.  


"이곳 주방에서, 자유롭길 바라. 

자유롭게 시도하고 만들어 보자, 그러려면 모든 것에 열린 마음이 필요해.

오, 나 이런 거 안 해봤어, 난 이런 거 몰라, 난 이런 거 안 좋아해.라는 마음은 내가 금지하는 사항이야. 

그러니까 뭐든지 자유롭게 해봐. 주방에서는 자유롭게."


자유롭게, 


만지고 느끼고 냄새를 맡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상상한 레시피를 만들어보고 다시 맛을 보고 색깔을 보고 질문을 한다. 요리에 대해서는, 특히나 이탈리아 요리에 대해서 나에게는 어차피 틀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질문을 하게 된다. 


'왜 오일을 지금 넣나요?'

'시간을 다르게 가져가기 위해서야.'

'파르마지아노 치즈를 페코리노 로마나 치즈로 변경해서 사용해도 되나요?'

'그럴 수 있겠지만, 각각의 치즈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과 풍미를 먼저 생각해야 해.'

'이 고기는 모든 다른 고기로 대체 가능한가요?'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음식에는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고기 부위를 생각해야 해.' 


수많은 질문들과 대답들 사이에서 이곳에서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고 '고유의 맛과 풍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간다. 

룰은 중요하지 않아. 너의 감각에 집중해. 




함께 수업을 듣게 된 미국인 관광객 부부가 왔다. 이들은 시카고에서 왔다. 

남편인 짐 아저씨는 엔지니어라고 했다. 

"이 오징어는 1인치로 자르는 겁니까? 아니면 1센티미터로 자르는 겁니까?"

"음...... 상관없어요, 한..... 이 정도......?"

바라보던 마르첼라 선생님과 나는 눈을 맞추며 눈썹을 들어 올린다. 


"짐, 중량은 중요하지 않아요, 느낌대로 하는 거예요."


짐 아저씨의 커다란 덩치에 칼과 도마가 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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