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5일은 어떻게 기억될까...
12월의 시작, 이맘때쯤이면 슬슬 우리 자신에게 한 번씩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다 12월 중순쯤 되면 “나는 왜 사는가?”라는 인생의 중차대한 질문보다 더 급하게 처리해야만 할 질문이 되고야 만다.
나는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일에는 크게 세 가지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올해 크리스마스에 뭘 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면 한번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포털사이트의 연관검색어처럼 ‘크리스마스’ 하면 자동으로 따라붙는 단어가 바로 ‘연인’이다. 크리스마스는 본래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인데도, 마치 연인을 위해 존재하는 축제처럼 인식된다. 따라서 연인이 없는 ‘솔로’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각자의 이유로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나’를 위한 크리스마스를 계획해야 한다.
우리는 매일 관계 속에서 누군가와 연결되어 살아간다. 따라서 온전히 나에 대해 돌아볼 시간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야말로 세상에서 분리되어 오직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다들 특별한 날의 의무나 약속에 매몰되어 바쁘기 때문에 나를 찾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기 때문이다. 분위기 또한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일 년 중 가장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는 날이다. 이런 모든 조건을 누리며 우리 자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고, 쉼 없이 달려온 한 해의 여정을 돌아보며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견딜 수 없이 지루한 사람은 책이나 영화라는 매개체를 선택해 보는 것도 좋겠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잘 맞춰 고른다면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으며, 뜻밖에 자신까지 돌아보는 경험을 맛볼 수도 있다.
⦁추천 책: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추천영화: 황수아 감독 <우리 집에 왜 왔니>
보통 연인이 있는 20대 남성들이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이다.
사람마다 인생의 중요한 가치는 변화와 진화를 거듭하지만, 대부분 ‘돈’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이성에 대한 사랑이 돈이라는 가치보다 우위에 서는 유일한 시점이 20대다. ‘돈보다는 사랑’이라는 식의 달달한 것이 아직 남아있을 때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올인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크리스마스와 같이 매우 특별한 날은 오직 상대를 위한, ‘너’를 위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게 된다.
“아재들 시대에나 그랬지 우리는 다르다!”라고 강력한 항변을 한다면 반박할 마음은 없다. 솔직히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니까. 다만, 겪어보지 않아도 시대를 불문하고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나쁠 것은 없다. 특정 시기에만 가치를 발휘하는 시즌권처럼, 그 시기가 아니면 다시는 맛볼 수 없는 하나의 큰 즐거움이자 특권이다. 따라서 “야, 해보니 다 부질없더라~”와 같은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경험상 20대라는 왕성한 혈기와 진심만으로 ‘너’를 위한 크리스마스를 완성시킬 수 없다는 것만 미리 알려주고 싶다. 정말 완벽하게 '너'를 위한 크리스마스를 원한다면 기본적으로 특별한 날인만큼 얼마간의 돈을 마련해 두는 것이 좋겠다.(없다면 당장 단기 알바라도..) 그리고 상대의 취향을 고려한 나름의 계획과 선물, 예약, 멘트 등. 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20대가 아니라면 과거의 자신이 직접 겪었던 추억을 상기시키며, 그 시절의 ‘너’를 기억해보는 것도 좋겠다. 다만, 추억은 사탕 같아서 한두 개는 좋지만 까면 깔수록 정신건강과 현재에 해롭다는 것만은 기억해두자. 예를 들어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과거의 첫사랑을 자꾸 기억한다면 결말이 좋을 리 없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는 만인의 축제인데 나 또는 너와 같이 특정한 누구만 즐길 수 없는 문제다. ‘나’와 ‘너’를 합치면 ‘우리’가 된다. 나와 너는 부족하지만 우리가 되면 충만해진다. 또한 '우리'의 대상은 제한 없이 확장되어 부모님, 형제, 자녀 등 소중한 누구라도 포함시킬 수 있다. 이미 크리스마스 같은 건 멍멍이나 줘버린 지 오래 신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도 좋겠다. 어려서는 한 몸처럼 부대끼며 살았지만 크면 클수록 만나기 어려운 형제를 찾아 대화를 해보는 것도 좋다. 얘기하다 보면 시간의 그늘에 가려졌던 눈부신 추억을 다시 기억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의미를 이해하게 될지도.
사랑하는 자녀와 함께하는 즐거움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다만, 자녀가 성장하여 부모와 함께하는 크리스마스를 재앙으로 받아들일 것 같으면 '용돈과 자유'를 선물하는 정도가 바람직하겠다. 이 외에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도 ‘우리’를 위한 크리스마스를 실현하는데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아니 무슨 크리스마스지 석가탄신일이냐!”라고 외치며 나이트, 클럽, 번화가 등 밖으로~ 밖으로~ 나가 즐기자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시끌벅적한 축제의 장에 참가하여 살아있음을 느끼는 즐거움도 무시할 수 없다. 나도 안 해본 건 아니다. 다만 나이가 드니(?) 이렇게 바뀌더라는 비겁한 핑계로 갈음해야겠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본래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탄생일 아니던가.
물론 나도 어떤 크리스마스를 보낼지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놨다. 이제 얼마간 남은 시간을 잘 준비해서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인생을 살면서 기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추억의 크리스마스 중 하나로 남도록 말이다.
이렇게 몇 자 적고 나니 문득 궁금해진다.
이 글을 읽는 나의 소중한 독자인 당신은 “크리스마스에 뭘 할까?”
그리고 뭘 하던지 무조건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