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강의를 듣고,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브런치 계정을 만들어놓고, 소위 현생에 휩쓸려 아주 긴 시간 노트북을 열어보지도 않는 짓을 저질러 버렸다.
현생이란, 현실의 삶을 뜻하는 신조어로 인터넷상의 자아와 분리하여 실제로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게으른 완벽주의의 전형인 나는 바쁜 현실 생활에 압도당하여 현재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글쓰기를 중단해버리고 말았다. 미루기, 회피, 도망, 무엇이 되었든 긍정적일 수 없는 단어들이 내 뒤를 쫓아오는 듯하다.
완벽함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그렇게 되지 않으면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기는 걸까. 회사 업무나 가족을 돌보는 일은 꼭 해야만 한다면서 모자란 모습에도 꾸준함을 잃지 않는데, 왜 꼭 하고 싶고 즐거워하는 일에만, 쓸데없이 자기평가하여 완벽하지 않으니 '도망쳐!'라고 외치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될까 봐 어떤 야망을 가지지 않고 매일매일 글쓰기를 즐겁게 하려고 마음먹었었는데, 그럼에도 나는 성장보다 포기가 더 빨랐다.
최근 다시 여유가 생기면서 글쓰기로 돌아오는 건 회피하고, 즐겁디 즐거운 유튜브를 보다가 알고리즘이 정신과 전문의 형제 두 분이 하는 유튜브를 보여줬는데, (가끔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무섭다. 나는 이 단어를 최근에 검색한 적도 없는데 이 상태가 된 걸 어찌 알았을까?) 미루는 습관에 대하여 정신과적 관점으로 설명해 주었다.
미루는 사람의 가장 큰 원인은
1. 보상지연을 훈련하지 못했다. - 어린아이를 마시멜로를 주고 먹지 않고 15분을 기다리면 한 개를 더 준다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이때 참지 못하는 사람은 보상지연을 참지 못하고 자극적인 것을 먼저 한다는 것이다.
2. 완벽주의적인 강박으로 시작에 대한 부담으로 회피한다. - 완벽하게 갖추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거나, 시작하면 완벽하게 하려고 너무 큰 고통이 오니까 미루고 미룬다.
어느 쪽이든 마시멜로와 같은 상황을 꾸준히 훈련하지 않으면 이 상황을 고쳐나가지 못한다고 한다. 뇌가 보상(욕구) 지연을 참아내는 쪽으로 지속적으로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재웅 전문의가 이 욕구지연 훈련을 하여 이 문제를 고치는 것을 35세까지는 해내야 한다고 해서 풀이 죽었는데, 양재진 전문의는 40대에도 습관은 바꿀 수 있다고 하여 희망을 갖고 다시 브런치의 문을 열었다. (계정 비밀번호를 한 번에 맞추지 못할 정도로 정말 그간 아예 열어보지도 않았다는 안 자랑스러운 사실.)
완벽하게 사진을 찾아서 넣지 않고, 내 글이 좋다고 느껴지지 않아도, 어떤 큰 계획을 갖고 글감을 배치하지 않아도, 나는 오늘 그냥 쓰려고 한다. 브런치는 일기장이 아닌데 이런 글을 써도 될까? 하는 마음이 들어 써놓고 마무리하지 않은 모든 글들을 다시 꾸준히 작성해야겠다.
나의 마시멜로는 뭘까? 무엇이 되었든 내가 글 써야 할 시간에 하는 모든 것들은 오늘부터 나의 마시멜로다. 알아내는 대로 마시멜로를 잠시 상자에 넣어놓기로 하고, 내일도 나는 글쓰기를 하기로 하겠다.
Just st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