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새끼손가락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을 쓸 때만 통증이 오더니 점차 가만히 있는데도 쑤시고 아파서 동네 재활의학과 병원을 찾았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내부 곳곳이 반짝반짝 윤이 나는 병원은 사람들로 붐비지 않아 일단 마음에 들었다. 곧 이름이 불리고 의사에게 내 새끼손가락의 증상을 고하자 초음파를 찍자고 했다.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모니터 속 내 손가락 영상을 보면서 의사는 염증이 생겨 부어 있다고, 아주 심한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의사 선생님은 나를 책상 앞에 마주 앉게 했다. 그리고 나의 손과 선생님의 손을 한 손씩 마주 잡은 채로 팔씨름하듯 좌우로 여러 번 넘겨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원래 새끼손가락은 일하지 않는 손가락이에요. 옆 손가락에 얹혀가는 애거든요. 오죽하면 뇌가 신체로 인식도 안 할 정도지요. 근데 환자분과 제가 팔씨름하듯 힘을 줘보니 환자분 새끼손가락은 힘을 줘요. 일을 한단 말이죠. 아마 오랫동안 생활 습관으로 굳어져서 쉽게 고쳐지지 않을 거예요. 되도록 새끼손가락에
힘을 주지도 쓰지도 않도록 신경 쓰세요.”
얼떨떨한 기분에도 그저 네네, 고개만 끄덕이다 물리치료사에게 냉동치료를 받은 후 처방전을 받아 들고 병원을 나섰다. 일을 하는 새끼손가락이라니.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내 몸의 비밀을 우연히 알아버린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이제껏 무심하기만 했던 왼손 새끼손가락에 나의 온 신경이 쏠렸다. 욱신거림을 느낄 때마다 내 눈은 자연히 새끼손가락으로 향했고, 이미 그 작달막한 몸통에 바짝 힘을 주고 있는 녀석을 살짝 흔들어 힘을 빼주곤 했다.
무엇보다 빨리 나으려면 새끼손가락을 안 써야 하고 그러려면 왼손 자체를 쓰지 않아야 하는데 의외로 왼쪽 손은 엄청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설거지할 때 무거운 도자기 그릇을 드는 쪽은 왼손이었고 오른손은 주로 수세미 질을 했다. 샤워할 때도 샤워기를 들고 여기저기 물을 쏘아대는 일은 왼손이, 오른손은 내 몸 구석구석을 씻어내는 일만 했다. 보아하니 내가 오른손잡이라 섬세하게 조작하는 일은 오른손이, 무언가 들거나 힘을 써서 보조하는 일은 왼손이 다하고 있었다. 어느 쪽 손이 더 고생한다는 말이 아니라, 왼손도 이렇게 애쓰고 있음을 몰랐다는 뜻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왼손을 안 쓰려고 할수록 그동안 왼손의 쓰임이 얼마나 많았는지 깨달았다. 하물며 왼손의 끄트머리에 붙은 새끼손가락의 존재는 어떠했겠는가. 굳이 안 써도 될 힘을 쓰고 있는 새끼손가락의 안간힘이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쓰였다. 욱신거림이라는 통증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때까지 아무것도 알아주지 못해 미안할 정도였다.
결혼하고 17년 차.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고, 자식들은 애를 쓰고 공을 들여도 마냥 뜻대로 자라주지 않는다. 십 년이 넘게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는 하루아침에 함께한 세월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을수록 내 몸은 여기저기 탈이 나기 시작하는데 이 또한 몸부림쳐 봐도 막을 수가 없다. 안간힘을 써도 안 되는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생각이 많던 차였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처방받은 약을 이틀째 먹어도 차도가 없다. 내일 다시 병원에 가봐야 하나 고민하며 자려고 누웠는데 새끼손가락이 욱신대며 말을 건다. 녀석을 위로 들어 올리고 가만히 쳐다보다 나도 말을 건넨다. ‘너 이렇게 애쓰고 있었구나.’
나에게 내가 위로받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