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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소유 May 07. 2024

아프냐, 나도 아프다

  대부분의 프사가 화사하게 만개한 꽃 사진으로 채워진 친구들과의 단톡방. 한동안 고요하던 방에 누군가의 한마디로 대화의 포문이 열린다. 주제는 바로 ‘누가 누가 더 많이 아프나’. 무릎이 아파 연골주사를 맞는다는 한 친구의 근황 한마디에 걱정과 위로의 말도 잠깐, 곧바로 열띤 대회가 펼쳐진다. 나는 허리가 아파서, 나는 목디스크가 생겨서, 나는 갑상선에 문제가, 나는 위염 때문에... 대화에 끼기 어려울 정도로 각자의 아픈 이야기가 줄줄이 쏟아진다. 우리의 프사에 꽃 사진이 단골이었던 이유가 여기 있었네. 짱짱한 청춘의 상징같이, 활짝 피어난 꽃의 반짝임이 이제야 보이는 거다. 짱짱할 때는 몰랐던 우리의 청춘처럼.


  반년에 한 번 유방 검진을 하러 가고, 한 달 반마다 갑상선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살펴 처방약을 받으러 내과를 찾는다. 더 심각해지지 않으려 내 몸을 감시한다. 늘 감시하는데도 빈틈은 자꾸만 생겨나는 중이다. 정기적으로 가는 병원을 또 늘리고 싶지 않아서 허리가 자꾸 아픈데 병원에 가지 않고 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왔던, 허리통증 분야 명의가 운영하는 유튜브를 보며 따라 해 보는데 신통치 않다. 오락가락하는 내 기분 따라 허리통증 정도도 오르락내리락한다.


  특히 허리가 아프면 익숙하던 일상이 고장 난다. 아무렇지 않게 하던 모든 일에 제동이 걸리니 가만있던 마음마저 상하곤 한다. 이 내 마음을 한강 작가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이렇게 대변해 준다. “언제나 그렇듯 통증은 나를 고립시킨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몸이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고문의 순간들 속에 나는 갇힌다. 통증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간으로부터, 아프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120p)


  아픔에 고립될 때면 나는 정보의 바닷속에서 나의 아픔을 검색해 본다. 지역 엄마들이 소통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주로 검색하곤 하는데 그곳을 통하면 웬만한 정보는 거의 다 찾을 수 있다. 어느 병원이 유명한지, 뭘 먹으면 나아지는지에 대한 온갖 정보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때로는 정보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아, 나만 아픈 것이 아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같은 것. 익명의 아픔들이 나의 아픔을 위로한다.


  얼마 전 노안 때문에 불편해 검진 차 동네 안과를 찾았다. 돋보기를 쓰는 것 외에 노안을 고칠 방법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정말 노안이 맞는지 전문가의 확인이 필요했나 보다.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은 내 눈을 들여다보고 사진도 찍고 하더니 대뜸 녹내장 의심 소견이 있다고 3개월 뒤에 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 했다. 녹내장이 정확히 어떤 병인지 몰라 기본적인 주의 사항만 듣고 집으로 돌아와 검색부터 해보았다. 시력과 상관이 없어 발견이 어렵고 심해지면 실명 위험도 있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에게 생길 수 있는 질환이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인터넷 속 수많은 익명의 위로에도 굳은 마음이 쉬이 풀리지 않았다. 어쩌면 또 평생 함께 가야 할 병이 생길지도 모르니 말이다.


  친구들과 다시 ‘누가 누가 더 많이 아프나’ 회가 열린다면 이번에는 나도 꽤나 큰소리 뻥뻥 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유방외과, 내과에 이어 안과까지 섭렵해 정기검진병원 다관왕에 뽑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친구들의 내공도 만만치 않으리라.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의 아픔을 자랑하듯 떠들고 나면 웃음이 터질 것이다. 허탈해서. 그렇지만 한결 가벼워진 웃음이다. 내 아픔의 작은 조각 하나 슬그머니 날려 보낸 기분이랄까. 그리하여 이런 농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녹내장은 안압을 낮추는 것이 중요해서 특히 상체에 힘을 주는 근력운동은 자제해야 된다던데. 그동안 지독히도 근력운동을 게을리하더니 그거 하나는 다행이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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