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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소유 Feb 08. 2024

제 자리 찾기

  가족이 함께 기차를 타고 서울 영등포역에 가는 길이었다. 아침 일찍 준비를 마치고 콜택시를 불러 부산역으로 향했다. 도넛이니 단팥빵이니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 먹고 8시 17분 서울행 KTX를 기다렸다. 남편이 갑자기 둘째 아이에게 ‘코레일’ 앱을 보여주며 우리가 타야 할 기차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저 앞에 전광판을 봐. 8시 17분 서울행 KTX가 우리가 타야 할 기차야. 122라는 숫자가 우리가 탈 기차의 번호고. 그 옆에 우리가 몇 번 승강장으로 가야하는지 나와 있지? 저걸 보고 승강장을 찾아가는 거야. 자, 한 번 가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흥미가 생기는지 아이는 앞장서서 4번 승강장을 찾아서 내려간다.


  “이제 표를 한 번 볼래? 여기 몇 호차인지 그리고 좌석 번호가 적혀 있지? 기차에서 몇 호차인지 찾아서 탄 다음에 이 좌석 번호만 찾아가면 돼. 간단하지? 우리는 15호차 5A, 5B, 5C, 5D석이니까. 저리로 올라가자.”


  벌써부터 기차를 혼자 태워 보낼 작정인가 싶으면서도, 미리 배워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앞선 부녀 꽁무니를 쫒아 큰 아이와 함께 기차에 올랐다. 자리를 찾아 짐칸에 짐을 올리고 최대한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주변을 정리한 다음 여유롭게 기차의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혹시 자리 맞으세요?”

  “네?”

  불쑥 들어온 질문에 깜짝 놀란 것도 잠시, 재빨리 창가 위에 붙은 좌석번호로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손으로는 휴대폰을 조작하여 코레일 앱을 실행시켜 우리 승차권을 확인했다.

 

  “15호차 5A, 5B 맞는데.”

  “여긴, 14호차인데요.”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민망함에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동시에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어리둥절해하는 아이들 등을 떠밀며 열차 다음 칸으로 도망치듯 자리를 옮겼다. 15호차, 우리의 원래 좌석에 허겁지겁 앉아 한숨 돌리고 나니 헛웃음이 터진다. 내 자리도 제대로 못 찾아 앉으면서 자식에게 기차 타는 법을 가르친다고. 남편은 내 마음의 소리를 엿듣기라도 했는지 입 꾹 닫고 딴청만 피운다.


  어느새 기차는 달려가고 있었다. 이른 아침 기차 특유의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민망함과 어색함이 조금씩 희석되어 사라져 갈 무렵, ‘잠시 후 우리 기차는 동대구, 동대구역에 도착합니다,’라는 방송과 함께 기차가 정차했다. 고요하던 기차 안이 내리는 사람과 타는 사람들로 인해 잠시 북적거렸다. 그때 또 한 번 귀에 익은 질문이 들이닥쳤다.

 

  “여기, 자리 맞으세요?”

  다행히 이번에는 우리가 아니었다. 우리 앞좌석에서 곤히 자고 있던 아주머니가 영문도 모른 채 단꿈 속에서 호출당했다. 비몽사몽간인 아주머니 대신 이웃 자리에서 대신 물었다.

  “몇 호차에요?”

 “14호차 아니에요?”

  “여긴 15호차에요.”


  질문자의 착오였다. 그는 아까의 우리처럼 미안해하는 기색과 몸짓으로 서둘러 자리를 떴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자신의 진짜 자리가 기다리고 있을 14호차와 반대방향으로 황급히 발길을 돌렸다. 나는 그 사람을 불러 세워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는 대신, 잠시 뒤 제 자리를 찾아가느라 이곳을 다시 지나갈 때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모른 척 해주리라, 혼자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 자리를 찾는 일이 이다지도 힘든 일이었던가. 제 자리 찾는 법을 배워야 할 사람은 우리 집 어린이만이 아니었나 보다. 분명 올바른 정보를 확인해서 우리 좌석이 맞다는 확신으로 자리에 앉았지만, 어이없이 실수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또다른 이의 착각 덕분에 나의 민망함은 금세 잊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니 아무 문제 없다. 어깨를 툭툭 치며 잘못 앉은 자리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 제 자리를 찾아가면 될 터이니.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아가더라도 진짜 내 자리는 불평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찰나처럼 찾아올 민망함과 자괴감은 어쩔 도리가 없겠지만(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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