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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소유 Feb 05. 2024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엄마도 그랬으면서 왜?

 귀신 나오겠다, 제발 방 좀 치워라. 다 먹은 과자 봉지는 바로 버리고. 양말 벗으면 바로바로 세탁실에 갖다 놓으라 했지. 숙제는 미리미리 하라니까. 고기만 골라 먹지 말고 채소도 좀 먹자. 이거 얼마나 맛있는데 딱 한 번이라도 먹어보고 안 먹는다 해라. 제발 좀!


  하루라도 이런 잔소리 없이 넘어가는 날이 없다. 아이들은 귓구멍이 막혀있나 보다. 아니면 두 귓구멍이 직통으로 연결되어 제 머릿속에 잠깐도 머물지 않고 슝 빠져나가 버리던지. 그렇게 내 말이 몇 번이고 스쳐 지나가고 난 흔적은 늘 똑같다. “엄마 또 잔소리네.” 그뿐, 곧장 행동하는 자식은 아무도 없다. 속에서 천불이 터지고 갑갑하다. 나이가 불러온 호르몬 영향인지 어느 날은 거친 불을 내뿜는 용처럼 분통을 터트리다가, 또 어떤 날은 세상 서러운 듯 눈물이 흐른다.


  초등이 공부라 해 봤자 얼마나 한다고 늘 하기 싫다 소리가 입에 찰싹 붙어서는 조금이라도 더 텔레비전 보고, 스마트폰 보고, 친구랑 놀 궁리만 하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으면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그래도 어릴 때 저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지 아빠를 닮았나 싶어 괜스레 성질이 나서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남편을 향해 눈총을 쏜다.  


  어느 날 친정집에서 전화가 왔다. 집에 버릴 거 버리고 싹 정리하려 하니 결혼 전에 챙겨놓은 내 물건들을 가져가라 신다. 내 물건이 든 두어 개의 상자 안에는 어릴 적 사진, 일기장, 성적표 같은 자질구레하지만, 선뜻 버릴 수 없는 추억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그중 일기장은 대부분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것이었다. 50대 후반 대머리 아저씨였던 담임은 재밌는 체육, 음악, 미술 수업은 하나도 안 하고 일기랑 고사성어 공부만 꼬박꼬박 시키는 선생님이었다. 일기장 공책 하나를 골라 펼치니 삐뚤빼뚤 갈겨쓴 글씨가 빼곡하다. 얼마나 적기 싫었으면 맘대로 지은 동시로 장수를 채운 날도 많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공부가 너무 하기 싫다’는 내용이 하루 걸러 적혀있는 거다. 선생님이 거의 매일 일기 검사를 했을 터인데도 굳이 적을 정도면 그때의 나는 어지간히 공부가 하기 싫었나 보다. 실소가 터지면서 한편으로 뜨끔하다.


  사실 이것뿐이겠는가. 나 어린 시절 우리 엄마가 잔소리가 심했던 이유가 뭐였겠는가. 철저히 나 좋을 대로만 기억하는 내 머릿속에 우리 엄마는 잔소리가 심했다는 기억만 남아있지, 왜 그렇게 잔소리가 심했을지 그 까닭은 철저히 감춰져 있었다. 애써 드러나지 않았던 그 비밀의 문이 이제 열린 것이다. 딱 어릴 적 나 같은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말이다. 빌어먹을 인생 같으니.


  한번 열린 비밀의 문은 내가 자라며 저질러왔던 크고 작은 행각들을 떠오르게 한다. 초등학생을 지나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으로 커나가며 엄마 몰래 해왔던 수많은 일들이 바로 내 아이들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하다. 아이들에게 쏘아붙인 잔소리가 비수처럼 나에게 돌아온다. 지금 당장이라도 아이들이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엄마도 그랬으면서 왜?”


  정신을 차리자. “그래, 엄마도 그랬어. 그랬지만, 엄마는 말이야. 너희들이 나보다 훨씬 나은 인간으로 자라기를 바랐기에 하지 말라고 그랬던 거야. 엄마가 이미 겪어봤으니 말이야. 엄마의 진심, 이해해 주겠니” 아, 너무 구질구질하다.


  그냥 들키지 않기로 한다. 엄마가 딱 너희처럼 그랬다는 것을. 대신 내가 살아온 날들을 가만가만 떠올려본다. 나에 대해,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믿음과 확신이 있는지 깊이 고민한다. 다행히 긍정적이라면, 내가 낳은 딸들이니 믿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이 빌어먹을 인생의 법칙은 언젠가 너희들에게도 찾아올 것이다.(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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