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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말해연 Apr 21. 2023

사람은 기대어 사는 것

퇴사하고, 아르바이트하며, 아침에 108배 하는 29살

#다섯째 주 수요일: 4월20일

오늘도 108배로 하루를 시작했고, 기도문은 ‘나는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였다. 절을 하며 생각했다. ‘왜 이렇게 마음이 괴롭고 무거울까.’ 그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절을 하니 내가 자유로울 수 없도록 하는 것들이 떠올랐다. 사람에 대한 집착, 가진 것들에 대한 집착, 마음에 대한 집착.


어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와서 새벽 1시 30분까지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어제 서로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있었고, 남자친구는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그런 감정들이 생기는지 궁금해서 대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어제 일어났던 감정이 어떤 서사를 거쳐 나온 것인지 설명하자 남자친구는 본인이 놓쳤던 말들에 대해 사과했고, 이해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내 감정의 서사를 설명하다 보니 어릴 적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 감정과 관련된 기억들. 내 감정이 아직도 어렸을 때에 발이 묶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툴 때 헤어짐을 생각하면 현재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주거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데, 내가 홀가분히 떠날 만큼 내 짐이 가볍지 못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우리는 어제 헤어짐을 선택하지 않았고, 결국 헤어질 거라는 생각을 하며 만날 것은 아니지만 오늘 108배가 끝나면 조금씩 내 물건들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08배가 끝나고, 오늘은 신발장을 정리했다. 지난 1년간 한 번도 신지 않았고, 밑창이 닳아서 혹은 해져서 신을 수 없는 신발들은 버리고, 상태가 괜찮은 신발은 헌 옷 수거함에 넣고, 내가 아꼈던 신발은 당근에 무료 나눔 하기로 했다.(사진은 찍어놨는데 아직 당근에 올리진 못했다. 오늘 해야지.) 신발을 정리하며 내가 신발을 좋아해서 그런지 신발이 참 많구나 싶었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 많은 신발이 필요하지 않다. 평소에 신는 것만 신기 때문에 신지 않는 신발들은 한 달에 한두 번 신고 해가 지나면 아예 신지 않게 된다. 그러면 별로 닳지도 않아서 버리기는 아까운데 연식이 있는 신발이 되어 신지도 못 하고, 버리지도 못하는 신발이 된다. 낭비이고, 짐이다. 더 이상 신발을 구매하지 않고 있는 걸로 신어야겠다.


(좌) 아침 / (우) 점심

신발 정리 후에 밥을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씻고, 일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일을 하다 보면 또다시 점심 먹을 시간이 되어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글을 썼다. 그제 올린 글이 알고리즘을 탔는지 1,000 조회수 알림이 오더니 계속해서 2,000, 3,000, 4,000 … 결국 10,000 조회수를 찍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저 내 일상과 생각들을 담은 글을 많은 사람이 봐줬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쑥스럽지만 좋았다. 개인적인 기록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렇게 살고 있어요. 다들 어떻게 살고 있어요?’라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 쓰는 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회수에, 댓글에 집착하지 않는, ‘나는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분은 좋다.


원래 오후에 남자친구와 함께 또 다른 분에게 꼬막무침 선물 배달을 가려고 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은 탓에 남자친구 혼자 다녀왔다. 집에 돌아온 남자친구가 내민 쇼핑백에는 꼬막무침을 받은, 옆 집 살던 언니의 쪽지와 선물이 들어있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포장을 열기 전부터 코로 들어오는 달달한 티 향에 행복을 느꼈다.


조금 쉬다가 도시락을 챙겨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오늘은 한 번도 함께 일해 본 적이 없는 매니저님과 처음 일해본 날이었다. 아르바이트하는 회사 대표님이 같은 체인점을 두 군데 소유하고 있고, 매니저들은 두 지점을 스케줄 근무로 출근한다. 그런데 오늘 함께 일하는 매니저님은 내가 일하는 매장에 적응하지 못해서 다른 매장에만 있다가 이번에 투입된 것이다. 우리 매장이 많이 바쁜 편이라서 일을 빠릿빠릿하게 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적응을 잘 못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사실 스케줄표가 나온 저번 주 일요일부터 내내 오늘을 걱정하긴 했다. 나조차 일하는 데에 완전히 익숙하지 않아서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괜찮을까 싶었다.


일단 내가 출근하고 매니저님 식사 시간이라서 1시간 동안은 혼자 있었다. 미리 해놓을 수 있는 것들을 좀 해놓고 싶은데 손님이 몰려오고, 배달 주문도 들어와서 그럴 수가 없었다. 1시간 동안 정말 치열하게 음료만 만들었고, 매니저님이 돌아왔는데 매장에 전화 한 통이 왔다. 음료 배달을 받지 못했다는 전화였다. 배달 기사는 음료를 집 앞에 놓고 갔다고 하고, 주문자는 음료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배달 기사가 잘못된 주소에 음료를 놓고 온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이 대화를 창고에서 밥을 먹으며 들었는데 너무 신경이 쓰여서 제대로 밥을 먹을 수도 쉴 수도 없었다. 그 와중에 물류가 오는 소리도 들리고, 손님도 계속해서 들어오고, 매니저님이 손님에게 조금 기다려달라는 말을 하고 이일, 저 일에 치이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30분을 다 쉬지 못하고 매장으로 복귀했다.


복귀해서 매장을 한 번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설거지를 하고, 손님도 맞이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다녀오고, 마감업무를 했다. 너무 바빴다. 그런데 문득문득 행동을 정지하는 매니저님에게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으니 그냥 어떤 생각을 좀 하느라고 그런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속에서 천불이 났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여도 모자랄 판에 생각하느라 계속 일시정지를 한다고!!! 그러나 이내 속으로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를 외웠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상적인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내 마음이 순간 일었던 이유는 ’왜 저래. 이상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고 이상하지 않은 건 어떤 걸 기준으로 나뉘는가? 내 기준 아닌가? 그럼 나는 모두에게 이상하지 않은 사람인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상한 사람,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이 그렇게 행동을 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 맞추면서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지만 나도 어떤 부분에선 내가 수적으로 소수자라고 느끼는 경우가 있고 누구나 그런 부분을 갖고 있지 않은가? 물론 타인에게 불편함이나 피해를 주면 조금 맞춰나갈 필요도 있겠지만.


나는 몸이 빠릿빠릿하니까 오늘 내가 좀 더 움직이면 됐다. 매니저님은 매니저님이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나도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니 마감을 다 해낼 수 있었다. 나도 부족하고 미성숙해서 누군가에게 기대는 부분이 있다. 한자로 사람‘인’의 모양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 선 모습이라고 하는데, 인간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서로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지혜가 담긴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퇴근하고, 씻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오늘 함께 일한 매니저님에게 카톡이 왔다. 본인이 아직 매장에 익숙하지 않고, 컨디션도 좋지 않아서 마음처럼 일이 되지 않았다고, 오늘 수고했다고, 내일은 더 힘차게 일해보자고. 맞다. 우리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우리,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우리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 그걸로 된 것이다. 중요한 건 괴롭지 않은 선에서,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방면으로 나아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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