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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말해연 Apr 25. 2023

사람은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

퇴사하고, 아르바이트하며, 아침에 108배 하는 29살

#4월24일 월요일 (아르바이트 6주 차/ 108배 23일째)

요 근래 하려고 하는 것이 되지 않거나 쫓기는 꿈을 꿔서 숙면을 못하고 있다. 토요일엔 맡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일찍 일어났다 해도, 일요일도, 오늘도 악몽을 꾸고 눈이 일찍 떠졌다. 눈이 뻐근하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이 피곤하지만 다시 잠이 오지 않아서 조금 일찍 108배를 시작했다. 오늘의 기도문은 ‘마음은 요동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을 것이 못 됩니다.’였다.


나는 내가 왜 잠을 잘 못 자는지, 악몽을 꾸는지 알 것 같다. 어제 원래 남자친구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 나 혼자 보려던 영화를, 남자친구의 약속이 취소돼서 함께 봐도 되냐는 남자친구의 물음에 같이 보러 갔다. 영화 제목은 ‘러브라이프’로 가족에 관련된 일본영화다. 무척 심란한 내용의 영화였는데 그 영화는 이기적인 연민을 사랑으로 생각하기 쉽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타인을 향한 연민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연민은 나를 위한 이기심이다. 결국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상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상대는 또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 더 나약한 사람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 연민, 나보다 나약한 사람을 위한 연민은 사실 자신 또한 나약한 사람을 의지해서 서 있는 꼴이 아닐까. 독립된 개체로서의 나와 또 다른 독립된 개체로서의 네가 아니라, 너를 받치고 서있는 나 그리고 나에게 기대고 있는 너의 관계. 연민도 이기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건강한 관계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의 연장선에서 남자친구와 우리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나눴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심란한 감정에 휩싸였다. 나는 지금까지 늘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의존해서 살아왔다. 최근에 남자친구와 자주 부딪히며 각자의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가되 함께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절을 하며 독립적인 내가 되기 위해, 자유로운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의존하고 싶은 마음을 놓아버리지 못하고, 그저 의존하면 안 된다 생각하면서 마음 한편에 남자친구가 나의 뜻대로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이야기를 나눌 때 확실히 나의 뜻대로 할 생각이 전혀 없는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듣자 안에서 미운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그 감정은 왔다 갔다 하며 계속해서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미운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절을 하며 기도했다. 마음은 본래 요동치는 것인데 요동치는 마음에 함께 머리를 풀어헤치고 춤을 추던 습관이 있다면 노력하지 않는 한 바뀌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죽을 각오를 하고 변화하고자 해야 한다. 내가 지금 그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어서 악몽을 꾸고 몸이 좋지 않고 마음도 심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더 이상 이전과 같이 살 수 없다. 어리석음으로 인해 괴로운 삶을 살 바에는 죽겠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절을 하고 기도를 외웠다.


(좌) 아침 / (우) 점심

108배를 하고, 아침을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씻고,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썼다.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데 마음이 힘들어야 글이 더 잘 써진다. 행복하면 세상 모든 게 당연하게 느껴지고 생각이 깊게 파고들지 않는데, 마음이 힘들면 세상 모든 게 영감을 준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지 이것이 나의 특성인 건지 모르겠다. 글을 쓰고 나니 힘이 다 빠져서 침대에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는 정신이 헤롱헤롱 해져서 2시간 동안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도시락을 챙겨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저녁 도시락

오늘은 항상 월, 수 마감을 같이 하는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일하는 날이고, 내가 출근을 하니 퇴근을 기다리는 매니저님 두 분이 있었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저번주에 처음으로 함께 일한 매니저님에 대해 물어왔다. 솔직하게 말해달라는 말과 함께. 저번주 금요일,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며 오늘 함께 일한 매니저님과 일하기 힘들겠다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내가 그만둔다고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와 동시에 내가 늘 참지 못하는 것이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공존하는 것, 더 근본적으로는 나와 맞다, 맞지 않다는 분별을 하는 것이구나 깨달았다. 그래서 그 어떤 선택도 하지 못 하고 그냥 출근했다. 그런데 어땠냐고 물어보길래 “그분도 애 많이 쓰셨다. 그런데 저도 아직 많이 부족해서 둘이 마감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매니저님들을 보니 그래도 말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그런데 두 가지만 좀 개선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운을 뗀 뒤, 두 가지 내용을 전달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매니저님들이 그 두 가지를 모든 아르바이트생들과 매니저들이 느끼고 있다고 답해줬고,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개선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분 덕분이었을까? 나는 평소 함께 일하던 아르바이트생 친구에게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부족했던 나를 많이 도와줘서 내가 내 몫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늘 성실히 함께 발맞춰 일해주는 것이 참 감사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진통제 두 알을 삼키고 출근한 날이었음에도 감사한 마음에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무사히 마감하고 데리러 온 남자친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씻고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나은 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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