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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말해연 May 02. 2023

꽃처럼, 나무처럼, 다람쥐처럼 그저 사는 것

아르바이트하며 아침마다 108배하는 29살

#5월2일 화요일 (108배 30일째)

지난주 유튜브에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며 나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게 됐다. 그것은 ’나를 괴롭게 하지 않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법륜 스님의 말씀은 논리적이기 때문에 텅 빈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장점이 있는데, ‘나를 괴롭게 하지 않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것의 논리는 이렇다. 한 질문자가 스님에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묻는다. 스님은 ‘당신이 누구입니까?”라고 되묻고, 질문자는 자신의 이름을 답한다. 스님은 “당신의 이름을 묻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묻고, 질문자는 나이를 답한다. 스님은 ”나이도 묻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묻고, 질문자는 ”객관적으로는 저를 알겠는데…“라며 말을 얼버무린다. 스님은 물러서지 않고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묻고, 질문자는 고민하다가 “저는 저인 것 같습니다.”라고 답한다. 스님은 “그러니까 저가 누구입니까?”라고 묻고, 질문자는 “느끼고 생각하는 나”라고 답한다. 스님은 “당신의 느낌을 묻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고, 질문자는 답하지 못한다.

스님은 이어서 자신이 왜 집요하게 당신이 누구냐고 물었는지 설명한다. 질문자가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고, 그 방법을 알고 싶다고 질문했는데, 정작 사랑하고 싶은 것, 즉 자신을 모르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냐고 말한다. 누군지도 모르고,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것을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저 본인 스스로를 괴롭게 하지만 않으면 충분하다는 해답을 질문자에게 줬다.


이 말씀을 듣고 무언가 풀지 못했던 숙제를 푼 것 같았다. 나도 늘 나를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노력도 해봤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괴롭기 일쑤였다. 더 나은 내가 되려 할 때는 늘 내가 아닌 모습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잘 되지도 않았고 지금의 내가 부정당하는 느낌에 괴로웠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려고 할 때는 더 나은 사람이 아닌 그저 이 모습 이대로 평생을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러나 해답은 상대적이고 변화하는 ‘나’가 아닌 괴로움을 없애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서 노력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잘 안 된다고 해서 괴로워할 필요는 없고, 그저 노력해 보고 안 되면 또 해보고, 그러다가 하기 싫어지면 안 하면 된다. 그리고 지금 모습 이대로 평생 살 것이 두렵다면 그저 좀 더 나은 내가 되려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안되면 또 해보고, 방법을 달리해서 또 해보고, 그래서 결국 가야 하는 곳은 내가 덜 괴로울 수 있는 상태다. 괴로움에 빠져있으면 내가 어떤 모습이든 괴로울 것이고, 내가 어떤 모습이든 괴롭지 않으면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언젠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괴롭지만 않으면 행복한 것이다.‘라는 답을 들었다. 이 답에 대한 법륜 스님의 논리는 이러했다. 삶의 의미나 행복을 찾으려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길가에 꽃이나 나무들, 산속에 사는 다람쥐나 동물들은 태어났기 때문에 그저 살아간다. 인간이라고 동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도 태어났기 때문에 그저 사는 것이다. 존재의 의미는 없다. 그러니 꽃처럼, 나무처럼, 다람쥐처럼 그저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요즘 우울에 빠져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위의 말씀들을 되새기면 마음이 좀 낫다. 태어났으니까 그저 사는 것이지. 살아야 하니까 먹어야 하고, 몸도 움직여야 하고, 가능하다면 다른 존재에게 도움도 되면 좋은 것이지. 나라는 존재 자체의 의미는 본래 없지.


그래서 어제는 근로자의 날이라 아르바이트도 가지 않아서, 108배를 하고, 집에서 세끼를 챙겨 먹고, 설거지, 화장실 청소 등 집안일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었다. 내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기보다 할 수 있는 것들, 해야 하는 것들을 했다. 오늘도 일어나서 108배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씻고, 글을 쓴다. ‘괴롭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다.’, ‘나를 괴롭게 하지 않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되뇌면서.


+우리 엄마가 해 준 이야기인데, 산속의 다람쥐는 겨울에 먹을 도토리를 하루종일 숲 속 여기저기에 숨기지만, 겨울이 되면 어디에 숨겼는지 기억하지 못해 쫄쫄 굶기도 하고 숲 속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 누군가는 멍청하다고,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다람쥐가 찾지 못한 도토리들은 싹을 틔워 나무가 되고, 나무가 모여 숲이 된다.

나 자신을 존재 자체만으로 귀여운 다람쥐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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