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승진한 남편이 지독한 우울증에 걸렸다.
밤늦게 퇴근하고 돌아오면 침대에 기대어앉아
화석처럼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게임을 하고 있는것...
게임을 하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고 한다.
일종의 현실 도피다.
팀장달고 처음에는 매달 돈 ㅇ백만원
더 받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속은 것 같다고,
돈 ㅇ백 더 받게 된 대신 매일 야근하고
심지어 퇴근해서도
하루종일 회사 생각 뿐이라고 말했다.
그 다음에는 불면증이 찾아왔다.
그러다가 이제 우울증이다.
예전에는 틈만나면 자기네 회사
정년까지 다닐 수 있어 좋다고 하던 남편이,
지난 연휴에는 급기야 '퇴사' 두 글자를 언급했다.
더 이상은 못참겠다고 하며
나에게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진작에 이럴 줄 알았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는 법.
세상에 공짜 점심 따위는 없다.
그래서 내가 더이상 승진을 안하려는 것이다.
팀장 달고서 머리 하얗게 센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기에...
게다가 내 주위 상사들은 죄다 불면증이다.
그냥 가늘고 길게 가는 편이 나았다.
원래부터 일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칭찬에 길들여져 있어
일을 잘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은 뒤 나도 모르게
퇴근시간만 되면 안절부절 못하는
‘6시의 신데렐라'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계약직으로 재취업하면서
일, 승진 욕심은 더욱 사그러졌다.
회사생활을 10여년 남긴 지금은,
머리 쓰는 일은 아예 싫다.
어떻게 하면 건강관리와 노후준비 잘해서
60대 리즈 시절을 맞이할 수 있을까 생각 뿐이다.
앞으로 남은 10년 동안
해마다 얼마씩 모아야지, 계획 중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돈을 모으기 위해
잠시 주말부부 생활도 불사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위험하다.
더이상 못참겠다고 말은 하지만,
퇴사도 쉽사리 못할 성격임을
나는 잘 안다.
그렇지만 저렇게 애절한 눈빛은 처음이다.
ㅠㅠ
정 그러면 그만둬.
남편한테 말했다. 진심이었다.
이왕이면 3-4년이라도 더 버텨주면 고맙겠지만,
저러다가 스트레스 받아 병이라도 나면 큰일이다.
남편은 말이라도 고맙다고 했다.
문득 회사가 고맙다.
내가 일을 안했더라면,
남편은 지금쯤 얼마나 막막했을까?
계약직으로 살아남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