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팬지 Mar 09. 2024

직장맘에겐 너무 힘든 학기초

중학생이 된 둘째가 첫 주를 보냈다.


어땠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했다가, 솔직히 힘들었다고 덧붙인다. 뭐가 힘들었냐고 물으니 준비물, 과제 챙기기가 힘들다고..


며칠 전에는 간단한 수학 과제가 있었는데, 모르고 안해갔다고 한다. 딴 애들은 모두 쉬는 시간에 친구들꺼 베끼기라도 했는데 둘째는 양심상 그냥 안한채 내버려뒀다고...그 결과, 둘째는 반에서 유일하게 숙제를 안해온 아이가 되었다고 한다.


야, 너도 베끼기라도 했어야지!!


나도 모르게 소리치다가, 말이 좀 이상해서 그냥 얼버무렸다. 이런 경우에는 뭐라고 타일러야 하는지...그래도 베끼는 성의(?)라도 보이는 게 좀 더 나은 거 아닌가?


둘째의 올곧은 양심이 때로는 버겁다...ㅠ




학기초는 직장맘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는 시기다. 준비물 안챙겨가서 학교에서 미운털이라도 박힐까봐, 하루에도 몇번씩 강박적으로 스쿨앱을 들여다 보게 된다. 퇴근후, 뒤늦게 엄한 준비물 있는 걸 발견하고 당황스러웠던 적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 전에는 아이 교복 모든 상의에 명찰을 박음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그래도 한달 전 교복을 중고로 들이면서 기존 학생의 명찰을 뗀 바 있는데, 아이 명찰 새로 달 생각은 왜 못했는지.

https://brunch.co.kr/@allthatmoney/85


그 때 진작 해놓았으면 여유롭고 좋았으련만, 이제 시간에 쫓기며 해야 한다. 혼자 명찰이 없어 지적당할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급했다.


맘카페에 수소문해 명찰 제작업체를 알아내고 전화로 미리 주문을 해놓았다. 그리고 오늘 주말을 맞아 직접 찾아가 명찰을 교복에 달아온 것이다.


명찰 제작 총 2만원

명찰 달기 총 1만5천원


도합 3만5천원 쌩돈이 들었다.




큰아이도 어릴 때 organizing 능력이 부족하기로 반에서 유명한 아이였다. 매일 알림장을 안써와서, 밤마다 아이 친구 엄마에게 구걸하며 숙제를 물어봐야 했다. 담임 선생님과 면담할 때면, 전업맘들과 비교당하며 혼나곤 했다.


저는 ㅇㅇ 엄마가 참 좋게 보이더라구요. 그렇게 오시지 말라고 해도 매일 와서 교실 청소를 해주시고, 그 엄마..그렇게 엄마가 집에서 안정되게 돌봐주는 아이는 확실히 달라요.


당시 큰아이는 일기를 아주 생생하고 재미있게 10장씩이나 쓰는 아이였기에 글솜씨를 칭찬받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왔는데, 칭찬은커녕 계속되는 선생님의 질타에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일기 10장씩 쓰면 뭐해요. 숙제를 안해오는데.


그러다가 아이와 미국에서 1년을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 초등학교에는 준비물, 과제가 거의 없는 것이다. 준비물은 학기초에 딱 한 번 school supplies 자율적으로 기부하는 게 전부고,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거의 다 제공되었다. 아이 이름이 적힌 파일도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주셨다. 과제는 간혹 있었지만 due date 한달 전부터 공지되어 여유롭게 준비할 수 있었다.


아이들도, 엄마들도 행복한 파라다이스였다.

학교 카페테리아 음식이 입에 안맞아 매일 도시락은 싸주어야 했지만.

 



영원히 organizing 능력 제로로 남을 줄 알았던 큰아들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친구에게서 스케줄링 앱을 소개받아 이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학교과제부터 시험공부 계획까지 앱을 활용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뿐 아니라, 나에게도 앱 활용을 권하곤 한다. 컴맹인 나는 앱이 더 번거로워 여전히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활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당장은 organizing 능력이 좀 떨어지는 아들들이라도, 늦게 트이기도 하니 때이른 좌절은 금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남에는 별 신기한 과외가 다 있더라구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