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프레스코화에서 현대 정물화까지
토스카나의 발명품 피아스코의 쓰임새는 회화 작품 속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르네상스 시대뿐 아니라 이후로 이어지는 바로크, 인상파, 근현대의 미술 사조에서도 피아스코는 인기 소재다. 종교 미술의 프레스코화로부터 초상화, 정물화, 풍속화 등 다양한 화폭에 피아스코가 담겨있다.
1. 르네상스 회화 속 피아스코
작품 활동이 중세와 르네상스에 걸쳐 있다고 평가받는 조토(1267-1337)는 단테(1265-1321)와 함께 한 시대를 닫고, 또 다른 시대를 열었다. 조토의 그림에는 이집트로 피신하는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아기 예수가 등장한다. 요셉 오른손이 쥔 게 바로 피아스코다. 고리버들로 전체를 감싼 형태다.
조토 작품의 오른쪽 그림은 보티첼리의 작품이다. 4 연작으로 그린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중에서 세 번째 그림이다. 그림 하단부 나무 그루터기 앞에 피아스코 둘이 나란히 서있다.
그 아래 두 점은 길란다이오 스쿨의 프레스코화다. 믿음의 형제들이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제공한다는 메시지다. 큰 통에 담긴 와인을 주전자로 퍼서 피아스코에 나눠 담는 장면을 그렸다.
위 프레스코화는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의 작은 예배당에 속한 그림이다. 세례 요한의 탄생을 축하하러 들어서는 여인의 속도감 있는 등장이 인상적이다. 머리에는 과일 바구니를 이고, 왼손으로 두 개의 피아스코를 쥐고 있다. 길란다이오가 그렸다.
2. 바로크 시대의 피아스코
르네상스 미술 다음 세대는 바로크 미술이다. 빛과 그림자의 뚜렷한 대조를 통해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가 바로 바로크의 특징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용어가 키아로 스쿠로(chiaro scuro)다. 불어로는 클레홉스퀴르 (clair obscure). 우리말로 명암대조로 통한다.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가 명암대조의 창사자로 불린다. 왼쪽 아래 그림은 작자 미상이다. 아마도 피아스코의 재활용으로 가장 인기 있는 쓰임이지 않을까 싶다. 작품처럼 피아스코를 화병으로 쓰기도 하고, 양촛대로 쓰기도 한다. 요즘에는 이탈리아 향토 식당을 표방하는 트라토리아의 테이블을 장식하는 소품으로도 이런 빈 피아스코가 널리 쓰인다.
그 오른쪽 그림은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화가 니콜라 투르니에의 작품이다. 상반신의 군인 뒤에 피아스코가 있다. 그가 쥐고 있는 잔은 아마도 빈산토일 것이다. 수년간 숙성시킨 화이트 와인의 색깔이 산화되어 호박색을 띤다. 바로 그 아래에 또 하나의 투르니에 작품이 있다. 이번 군인은 피아스코 병나발을 불려는 걸까. 선술집 한 탁자에 앉은 군인에게로 빛이 집중되는 효과가 잘 드러난다. 마지막 그림은 제단화로서 '치료가 이미 늦어 버렸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의미를 그림에서는 따버린 피아스코로 표현했다.
바로 아래 그림은 17세기 피렌체 출신 화가 체사레 단디니의 작품이다. 나머지 세 그림 모두 야코포 키멘티가 그렸다. 본격적인 식탁 정물화가 등장한다. 여러 식재료 가운데 피아스코가 등장한다. 먹을 것만큼 마실 것도 자리를 차지했다.
3. 19세기 표현주의와 인상파
왼쪽 그림은 폴 세잔이 1877년에 그린 정물화로 구겐하임 소장품이다. 오른쪽 그림은 프랑스 화가 레이몽 비예트의 작품으로 퐁피두 센터의 소장품이다.
4. 20세기 근현대미술
이탈리아의 20세기 미술을 노베첸토라고 호칭한다. 말 그대로 1900년대란 뜻이다. 우리 미술사에서는 보통 근현대 미술로 정의한다. 세계 미술사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차대전 이후의 시대를 '포스트 워'라고 구분 짓고, 그다음 세대로 컨템퍼러리라고 구분한다.
먼저 이탈리아의 포스트 워에 해당하는 두 점을 보자. 왼쪽 위 그림은 팔레르모 출신의 레나토 구토소의 작품이다. 작가는 부치리아 시장을 그린 유명 작가이면서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 오른쪽은 색채감 우수한 정물화의 대가 조르지오 모란디의 작품이다.
그 아래는 두 점은 20세기 근대 미술이다. 먼저 오른쪽은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된 데 피시스의 정물화이며, 마지막 남은 한 그림은 피렌체의 평범한 풍경을 화폭에 담아낸 화가 오토네 로사이의 수려한 피아스코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