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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페라토, 바르베라의 천국

최상위 바르베라, 니짜 Nizza DOCG

몬페라토의 중심, 아스티

바르베라 명산지 몬페라토(Monferrato)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지방에 있다. 몬페라토의 서쪽 접경 지역은 바롤로로 유명한 랑게 지역이다. 몬페라토는 이런 랑게와 같이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구릉이 끝없이 펼쳐진 경관 좋은 곳이다. 몬페라토의 중심 도시는 아스티인데, 이 도시는 바로 모스카토 다스티의 와인명에 포함된 그 아스티이며, 스위트 스파클링의 대명사 아스티이기도 하다.


아스티 시내. 오른쪽 달팽이 구조물이 줄 지은 건물이 행사장 팔라초 알피에리.

와인 애호가들의 관심이 주로 피에몬테 랑게 지역에 집중된 까닭에 몬페라토는 우리에게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와인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화이트 와인은 다름 아닌 모스카토 다스티다. 아스티는 알바보다 훨씬 큰 도시이며, 모스카토 다스티는 우리의 베스트셀러 상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인 여행자들의 발걸음은 대부분 알바를 향한다. 특히 가을 송로 버섯이 등장할 즈음에는 전 세계 관광객들이 알바로 물 밀리듯이 모여든다.


아스티 시내가 와인 축제로 들썩인다.



탐구심이 많아 가리지 않는 열혈 와인 애호가들에게 이 덜 알려지고 덜 유명한 아스티 여행을 추천한다. 아스티에 거처를 정하고 매일 몬페라토 지역을 드나들면서, 이곳의 와인 문화를 만끽해 보길 권한다. 여기는 모스카토 다스티뿐 아니라, 니짜를 위시한 바르베라 다스트의 고향이다. 특히 바르베라의 향연을 만끽하기 좋은 계절이 왔으니 자 떠나보자.

몬페라토에서는 볕이 잘 드는 남사면에 바르베라를 심는다. 이는 랑게 남향 언덕에 네비올로를 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장 좋은 포도밭에 바르베라를 심는 몬페라토에서도 핵심이 되는 구역은 니짜(Nizza)이다.


바르베라의 품계

여기서 우리는 바르베라 원산지의 품계를 확실히 정할 필요가 있다. 이 단계를 알면, 바르베라의 품질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피에몬테에서 바르베라의 원산지 등급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피에몬테 바르베라 DOC가 있고, 그 상위 등급으로 바르베라 다스티 DOCG, 최상위로 니짜 DOCG가 위치한다. 니짜는 위계상으로 보면, 마치 바롤로와 같은 급이랄 수 있다. 법규상으로 바르베라 다스티에 속한 일부 조그만 구역이 니짜로 구분 지정되어 있다.

바롤로의 조건이 네비올로 100%이듯이, 니짜도 바르베라 100%이어야 한다. 그 아래 등급 바르베라 다스티 DOCG는 바르베라 90% 이상이 조건이다. 바롤로 리제르바가 있듯이 니짜 리제르바도 양조 가능하다. 2014년 빈티지부터 니짜는 DOCG 등급으로 정해져서, 현재 이탈리아의 전체 DOCG 개수는 77개에 이른다.


바르베라 품종과 특징

바르베라는 농부한테 많은 송이를 허락하는 관대한 품종이다. 색깔이 짙고 당분 함유량이 많아 진하고 풍성한 맛을 선사하다. 즉 안토시아닌은 많고, 폴리페놀은 적다. 니짜는 보통 15% 남짓의 알코올 도수를 지니는데, 곳에 따라 빈티지에 따라 16%를 상회하기도 한다.  

바르베라는 피에몬테 품종 가운데 산도가 가장 높다. 그래서 산도와 당도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포도원 농부의 소망이다. 높은 산미를 다스리기 위하여 농부들은 밭에서는 포도의 완숙을 기대하고, 양조장에서는 오랜 숙성을 기한다. 널리 인정받는 숙성 방식은 바리크로 불리는 소형 오크통을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높은 산도는 장기 숙성력을 제공하여 바르베라를 오랜 기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바르베라의 숙성 방식

바르베라는 중립적이고 중성적인 영향을 주는 시멘트통이나 스테인리스 스틸통에서 숙성할 수도 있다. 물론 오크통에서도 그렇다. 예를 들어 여러 번 사용한 오크통, 새 오크통, 작은 오크통, 큰 오크통 등을 사용하여 숙성한다. 숙성 방식에 따라 바르베라 특유의 높은 알코올과 강한 산미가 달리 결합된다. 맛의 조화를 이룬 와인은 어떤 방식을 통하든지 시음자에게 즐거움을 주고,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테누타 일 팔케토'에서는 오크통 숙성을 하지 않고, 스테인리스 스틸통에서 숙성한 것을 ‘네이키드’ 바르베라라고 불렀다.


바르베라의 최상위 등급, 니짜

니짜에서 오크통 숙성 없이 와인을 만들면 즉 이 네이키드 바르베라를 만들면 니짜라고 하지 못한다. 니짜는 18개월 이상의 숙성 기간 중에서 반드시 6개월 이상의 오크통 숙성을 포함해야 한다. 니짜에서는 이런 조건에 미달할 경우에, 한 등급 아래인 바르베라 다스티로 출시할 수 있다.

또한 포도밭이 모두 니짜에 속하더라도 그중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구역만을 따로 챙겨서 니짜로 양조하고 나머지는 모두 바르베라 다스티로 출시하는 와이너리들도 있다. 양조장 '라 지론다'가 이에 속한다. 한편 니짜 DOCG가 최근에 도입된 탓에 기존에 사용하던 바르베라 다스티 DOCG를 여전히 고수하여 니짜 이름을 아직 쓰지 않는 양조장도 있다. 바르베라의 성공 브랜드 브라이다 양조장이 그렇다.

바르베라를 시음하면 이런 결과를 주로 얻는다. 밝고 생생한 빛깔, 강렬한 과일 아로마, 향신료 뉘앙스, 구운 것 같거나 발사믹 같은 향취, 씹히는 산미, 긴장감이 덜한 타닌 등이다. 바르베라는 음식 친향적이다. 다양한 음식과 어울린다. 햄과 소시지 같은 간단한 핑거 푸드, 돼지 불고기, 곱창 볶음, 약간 매운 동남아 음식 등에도 괜찮다.



몬페라토 일곱 군데 양조장 방문하기


위: 빈키오 발리오 세라의 전경과 와인들, 아래: 테누타 일 팔케토에서의 모스카토 다스티 양조 준비


Vinchio Vaglio Serra

방문한 양조장 가운데 유일한 조합 와이너리다. 빈키오 마을과 발리오 세라 마을 사이에 위치한 까닭에 두 마을 이름을 병렬 조합하여 명명되었다. 포도밭을 소유한 조합원 농가들은 막 수확한 포도를 조합에 바로 납품한다. 그러면 조합은 그 즉시 포도의 원산지와 당분 함유량을 기준으로 수매가를 결정한다. 조합은 양조 기술자들을 고용하여 양조에만 전념하는 방식이다. 특이한 점은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덕용 포장(bag in box)으로 출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이런 형태의 와인이 잘 팔리지 않는다.

 

Tenuta Il Falchetto

가족 양조장 테누타 일 팔케토는 핵심 품종 바르베라 이외에도 여러 화이트 와인을 만든다. 최근 각광받기 시작한 샹파뉴 방식의 스파클링, 소위 알타 랑가 양조에 애를 쓰고 있다. 알타 랑가는 프란차코르타와 같이 샴페인의 품종 즉 피노누아와 샤르도네를 위주로 해서 만드는 스파클링이다. 이곳에서는 또 소비뇽 블랑과 모스카토 다스티도 양조한다. 몬페라토 지역에서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의 재배가 증대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이 알타 랑가 때문이다. 일 팔케토가 5년을 병숙성한 이 알타랑가는 밀도감 높고 풍성한 질감과 산미가 잘 뭉쳐져 있다. 여기 모스카토 다스티의 품질은 아주 높다.


Marchesi di Incisa della Rocchetta

피에몬테의 유력한 가문 마르케지 디 인치자 델라 로케타는 약 천년에 걸쳐 피에몬테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 혈족 중에 형 마리오가 볼게리로 이주하여 그 유명한 사씨카이아를 출시하였고, 남아 있었던 남동생 오도네가 가문의 영지를 관리했었다. 이후 오도네의 딸 바르바라가 상속을 했고, 현재는 바르바라의 아들 필리베르토가 대표를 맡고 있다. 필리베르토는 “우리는 와인 생산량의 65%를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으며, 럭셔리 B&B에도 꾸준하게 손님들이 찾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피에몬테의 와인과 음식을 즐기려는 여행자들이 최근들어 여기처럼 조용한 곳을 점점 선호한다”며, 드넓은 농장과 견고한 전통 건축물을 소개했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적포도만 재배하여 레드 와인만 생산하고 있는데, 다만 지인으로부터 구입한 청포도 아르네이스로 한 가지 화이트를 양조한다.


위: 마르케지 디 인치자 델라 로케타의 오너 필리베르토와 그 와인들, 아래: 라 지론다의 오너 수잔나와 아들


La Gironda

니짜 타운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배기 위치한 이 가족 농장은 포도밭 전체가 니짜에 속한다. 오너 수잔나는 니짜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싶다며 우리에게 이십여 년에 걸친 올드 빈티지 시음을 허락했다. 야외 탁자에 차려진 가장 오래된 빈티지는 2001이고, 최근 빈티지는 2020이었다. 2014년 이전 빈티지는 바르베라 다스티 슈페리오레 딱지가 붙어 있고, 그 이후는 니짜가 붙어 있었다. 재미난 것은 최근 빈티지의 알코올 도수는 15.5%인데 반해, 2001, 2003은 13.5%에 불과했다. 기후 변화로 인한 당분 함유량의 증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수잔나는 “바르베라의 높은 알코올은 적당한 음식과 함께라면 문제가 없다”라고 했다. 이곳의 니짜는 아주 곱고 세련된 타닌을 지녔다. 섬세하고 우아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오크통 숙성에서 비롯된 연유 같은 향과 실크 같은 질감이 20여 년을 지나도 근사하게 유지된다. 니짜 바르베라의 숙성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Tenuta Santa Caterina

부티크 호텔을 겸한 와이너리 테누타 산타 카테리나는 수도원으로도 쓰였던 건축물과 지하 17미터에 이르는 넓은 지하 셀러를 지녔다. 책임자 루치아나는 “피에몬테 건축 스타일은 바깥에서 보면 웅장하고 화려하게 보이지만, 안에는 단순하게 벽돌로 치장되어 있다”라고 했다. 경치가 좋은 산등성이 능선에 자리 잡은 이곳의 지하 셀러는 천혜의 와인 저장 공간이다. 습기를 잘 머금는 벽돌로 인해 높은 습도를 자연스럽게 유지하며 오래된 와인 병들을 잘 저장한다.

루치아나는 피에몬테 품종 가운데 하나인 그리뇰리노를 강조했다. “그리뇰리노는 바르베라와 반대로, 안토시아닌이 적고, 폴리페놀이 많다”라고 하며 그 와인의 옅은 색깔과 강렬한 타닌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크통 숙성을 한 그리뇰리노 2019의 이름은 몬페라체인데, 이는 몬페라토의 옛 지명이라고 한다. 양조장이 소재한 이곳이 예로부터 그리뇰리노를 많이 재배한 까닭이라고 했다. 옅은 갈색기미가 보이는 가벼운 색깔을 띠며, 움츠리는 듯한 절제된 느낌이다. 상대적으로 투박한 스타일이며 커피 향내와 스모키한 와인이지만 연신 홀짝거리게 하는 와인이었다.


위: 테누타 산타 카테리나의 지하 셀러와 양조장 건물, 아래: 히켄누크 양조장과 오너 마씨모


Hic et Nunc

히켄눈크는 라틴어로 ‘여기 지금’이란 뜻이다. “2012년 출발한 신생 와이너리 히켄눈크는 ‘카르페 디엠’처럼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자란 의미를 갖는다”라고 매니저 에마누엘라가 말했다.

100헥타르 대지 위에 조성된 포도밭 한가운데 건립된 와이너리는 마치 ‘여기 지금’ 와인을 맛보고 이야기를 나누라고 외치는 것 같다. 이 와이너리의 스파클링 생산 비중이 높은 이유는 아마도 방문하는 많은 여행자들에게 부담 없이 와인을 즐기라는 뜻일 것이다. 다른 와인너리처럼 여기도 와인 리조트를 조성하여 여러 날을 머물면서 포도밭과 와인의 향기가 주는 휴식을 선사하고 있다.



피코 마카리오의 연필 콘셉트 구조물과 와인병 포장

Pico Maccario

피코 마카리오 와이너리의 오너는 현재 바르베라 다스티 연합의 회장을 맡고 있다. 여기는 상대적으로 평탄한 지형에 밀집된 포도밭을 조성하여 기계 수확도 부분적으로 도입한 현대식 와이너리이다. 안티노리와 함께 와인 양조에 있어 첨단 기계화 작업과 AI 기술 도입에도 앞장설 정도이니, 피에몬테 양조업계에서 영향력이 크다 하겠다.

“피에몬테 도처에서 목격되는 연필 모양의 목조각물들과 여기 와이너리가 개발한 연필 모양의 와인 포장용 깡통은 한 지역 예술가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라고 수출담당자 에밀리아노가 말했다.

국내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된 연필 디자인의 와인통은 쉽게 주목을 끈다. 약 오십여 가지의 와인을 담는 제 각각의 연필통이 진열된 장식장은 마치 회화 작품처럼 보인다. 피에몬테의 다양한 와인들을 망라한 구성은 수십 가지 크레파스처럼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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