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 님의 책을 읽었다. 첫 책인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이 퍽 좋았다. 필사도 했으니. 고민 없이 두 번째 책은 구매하려고 서점에 왔다. 제목은 '매일을 헤엄치는 법'. 헤엄친다라.. 새 책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첫 페이지에 나오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콕 박힌다. '직장 내 괴롭힘'. 아, 나도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퇴사했었지. 나쁜 어른은 너무 많다는 생각을 또 하면서 페이지를 넘긴다. 고흐 얘기가 나온다. '예술은 질투가 많다. 두 번째로 밀려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창작자의 의무를 모른 체하며 살다가 이도 저도 아닌 삶을 형벌로 받는 것이다.
회사를 같이 퇴사하는 동료에게 '도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쓴 책을 읽은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책 써야 한다니까요. 작가로 살아야 하는데 지금 다른 일하고 있어서 그런 거예요." 그래, 두 번째로 밀려난 쓰이지 못한 글들이 만든 엄청난 형벌인가 생각해 본다. (아. 내가 고흐 같은 예술가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근데 그 사실이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서 매번 나중에 무엇을 하고 싶냐고 했을 때 그냥 회사를 다닐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건 내가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하던지, 피겨스케이팅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막연하고 어이없는.
'내가 글로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성공을 못한대도 상관없지. 아니, 먹고 살 정도는 되어야지 직업이라고 할 수 있지.'
책 한 권을 쓰고 가장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은 만나는 사람마다 '요즘은 글은 쓰고 있냐'라는 말을 한다는 거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있는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숙제를 해오지 않은 학생이 된 기분이다. 머쓱하게 웃으며 요즘은 쓰고 있지 않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그때마다 '오늘은 써야지. 내일은 써야지. 이번 주에는 써야지. 이번 달에는 써야지.'라는 말만 하며 비겁해진지 오래다. 그래도 이 질문이 퍽 나쁘지 않다. 책을 한 권이라도 써본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에. 내가 쓰는 사람이라는 걸 계속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 질문이 나에게 언젠가 닿지 않는다면 아주 슬퍼질 거다. 그러기에 나는 써야 한다.
두 번째 책을 낼 때부터 비로소 작가가 되는 것 같다. 잘 쓰든 못 쓰든 성실히 꾸준히 쓰는 사람만이 작가라는 걸 나는 안다. 백지 앞에서 그 막연하고 막막한 감정들을 덤덤히 견디는 시간이 많아야 작가가 된다는 걸 나는 안다. 백지 앞에서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바보가 되기 싫어서 비겁하게 피했던 많은 시간들을 반성한다. 오늘은 그 백지 앞에서 두렵지만 끝까지 쓴다. 그래 나는 써야지 비로소 내가 된 기분이야. 이런 기분을 느낀지 오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눈시울이 뜨거워지네. 오늘은 개운하게 잠에 들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