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원래 요란하게 찾아와

by 알룰로스

아침 공기의 서늘한 온도가

조금 미지근해진 느낌이 들었다.

한낮에는 이제 얇은 패딩 점퍼도 덥다고 느껴진다.

집 앞에 앙상하게 말랐던 나뭇가지에는

어느 날 갑자기 샛노란 꽃봉오리가 싹을 터뜨렸다.

전반적으로 시리고 푸르뎅뎅했던 공기의 빛깔이

살짝 태운 누룽지 겉면처럼 누렁누렁해진 느낌이 든다.


큰일이다. 봄이 온 것 같다.


서둘러 겨울옷은 넣고

봄옷을 꺼내둬야겠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난다.

‘봄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강박증이

마음 한편에서 벌떡 일어난다.

봄을 맞이하기 위해 난 무얼 준비해 두었나.


봄이 찾아오면 몸과 마음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설렘과 조급함으로 내 세상이 소리 없이 진동한다.


이번 봄도 잘 지낼 수 있을까?


모두들 봄이 찾아오면 설레는 마음을 찾아 입는다.

두껍게 그동안 자신을 숨겨놓았던

겨울 외투를 벗어던지고

얇은 막 같은 외투로 봄바람을 맞이하려니

훨훨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길거리에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느낌이다.

그들의 표정에도 계절이 존재한다면,

분명히 봄 표정을 지으며 걷고 있다.


나 또한 봄을 좋아하고 늘 기다리고 기대한다.

그러나 한때는 봄이 싫었던 적도 있었다.

봄을 싫어했다는 것은 용기 있는 고백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싫어했다고 말하는 것에는

상당한 자기 검열과 용감함이 필요한 것이다.


봄이 싫었다기보다는

부담스러웠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세상은 추위를 걷어내고 얼었던 표면을 다 녹여서

샛노랑, 연분홍의 갖가지 고운 색들을

내놓기 시작하는데.

나 혼자만 아직 겨울을 완연히 벗어나지 못한 느낌.

나 혼자만 진정한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못한,

요상하게 외롭고 바보 같은 그 느낌.

온 세상은 겨울을 거쳐 드디어 봄에 도달했는데,

나만 아직 겨울에 갇혀있는 그런 느낌.


강이든 들판이든 길거리든,

어디에서든지 사람들이 환하게 웃으며

가벼운 봄차림으로 봄을 만끽하는 동안

나 혼자만 거기에 끼지 못하는 그 우울한 느낌이란.


실제로 봄에는 계절성 우울증 환자가 증가한다고 한다.

봄에는 겨울에 비해 일조량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이로 인해 호르몬 분비, 생활 패턴이 모두 바뀌면서

세로토닌과 멜로토닌의 분비 패턴 또한 변화하면서

피로감, 무기력, 우울감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봄철 우울감이나 우울증은 겨울에

움츠리고 있던 모든 것들이

봄이라는 계절이 되면 한꺼번에

바깥으로 밀려 나올 때,

그에 맞게 우리의 호르몬과 신체가

적응하는 당연한 변화인 것이다.

우울증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계절이

바로 봄인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그 특정한 시기와 순간마다

말로 풀어쓸 수 없는 요상한 감정들로

혼란을 겪곤 한다.


게다가 이 짧디 짧은 봄이라는 계절을

가만히 흘려보내기에는 너무도 아깝다는 사실도 안다.

마치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버린 나의 푸릇한

이십 대 초반 대학교 새내기 시절 같다는 것도.


그리하여 봄이 도착하면 나는 바구니 안 한가득

설렘, 기쁨, 긴장, 부담, 우울, 고독, 예민이라는

요동치고 혼란한 감정들을 봄철나물 따듯 담아놓는다.


’봄철 기분’ 한 상을 차려놓고는,

원래 봄의 시작이란 이렇게 요란한 것이라며

별 일 아닌 듯 생각해 버린다.


실체를 알고 나면 역시 한결 나아진다.

봄은 원래 요란하게 오기 때문에

나도 같이 요란해지는 것이다.


봄에 태어난 사람은 그 혼란하고 요란법석한 시기에

차가움과 따스함을 한 줌씩 안고 태어났을 테다.


따스함을 기대하기에는 어디선가 꼭

꽃샘바람이 불어와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고,

추위를 대비하기에는 어딘가에서는

노란 개나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며

생명의 축제를 시작하는 요란한 계절.


그런 계절에 태어난 사람은

아마 생명이 태어나기 위한 모든 고뇌와 발버둥,

온화함과 따스함을 요란하게 갖고 태어났으리라.


나는 가장 가까이에 그런 봄의 사람을 알고 있다.


“그러게, 왜 봄인데도 바람이 불고 추울까.

엄마 생일 너무 신경 안 써도 돼. 괜찮아.”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그 딱 애매하고 모호한 경계선.

그 시점에 태어난 엄마의 생일을 기점으로

늘 진정한 봄날씨가 시작되곤 한다.

올해 엄마 생일에는 엄마가 봄철 감기에 딱 걸려버려서

예정된 생일 가족 모임을 하지 못했다.


엄마와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엄마, 봄은 원래 추운 거야.

마냥 따뜻한 계절이 아니야.

봄은 늘 단단히 옷깃을 여미고 준비하고 맞이해야 해.”


봄은 원래 춥고 따끗하고 요상해서

단단히 맞이할 준비를 해야한다는

잔소리로 마무리하며 전화를 끊었다.


사실은 그 말 뒤로도 더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늦겨울과 초봄, 그 애매모호한 경계점에

태어난 엄마를 축복해.

엄마는 그 경계선에서 세상에 따스함을

퍼뜨리려고 솟아나는

미약한 샛노랑 꽃봉오리 같이 태어났어.

아직은 황량한 황토색 같던 잔디에서

조금씩 푸릇한 초록색을 움트는

연약한 풀 같이 태어났어.


엄마는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따스함과 온정을

베풀고 보내주러 온 봄의 전령 같은 사람이야.



그리고 그 결과가 고작 바로 나야. 맘에 들지?



실제로 이 말을 늘어놓았다면

엄마는 나를 낳은 것, 키운 것이 늘 행복하기만 했다며

봄의 정령처럼 따스한 사랑의 답을

잔뜩 들려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안다.


봄이 뒤에 따라올 새로운 계절들을 낳고 키워가기 위해

얼마나 시린 꽃샘추위와

크고 작은 기다림, 고독, 고통이 있었을지.


원래 봄은 마냥 따스한 계절은 아니니까.

절대 만만하게 예쁘장한 계절이 아니니까.


감기가 다 나은 엄마를 만나면

봄을 불러오느라 고생했다며

따뜻한 꽃잎차 한잔을 꼭 사줘야겠다.


날이 완연히 풀리는 주말 한낮에는

봄준비를 아직 못했더라도

남편과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봄거리를 봄차림으로 가볍게 걸어야겠다.


그러면 요란한 봄의 시작을 지나

비로소 진짜 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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