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도 함께 참석 바랍니다

by 알룰로스

나의 기념일에는 늘 케이크가 함께 한다.

특히나 생일에는 케이크가 빠질 수 없다.


동그란 원형의 케이크 시트에 듬뿍 올려진

하얀 생크림과 슈가파우더가 뿌려진 딸기들.

예쁘게 장식한 리본과 두툼한 네모 박스를

한 손에 잡고 케이크 가게를 나설 때에는

축하받고 축하할 줄 아는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자만심이 들어 만족스럽다.


생일에는 케이크가 필수지만

생일 외의 소소한 기념일들도

챙기기를 좋아하는 나의 특성상,

일 년 내내 케이크의 등장 횟수가

은근히 많았던 편이다.


새해는 새해라서,

연말은 연말이라서,

크리스마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당신의 입사 기념일,

친구의 승진 소식, 누군가의 임신 소식 등

삶은 축하할 일 투성이지 않은가.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케이크와 함께 해야 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느낌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늘어나는 가족 구성원들의 생일은 물론이었고

친구들과의 시간은 훨씬 줄었는데

이상하게 챙겨야 할 지인들의

케이크는 늘어난 것 같았다.


마냥 아이처럼 기뻤던 케이크 구입이

어느 순간부터는 어쩔 수 없이 해내야 하는

과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생신 때에도

늘 케이크가 함께였다.

나는 학생 시절에도 얼마 없는 용돈으로

집 근처 파리바게트에서 꼭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사서

엄마아빠의 생일파티 분위기를 담당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 환갑을 훌쩍 넘긴 엄마가

어느 날 내게,

케이크는 이제 안 사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케이크는 당 수치를 올려서

몸에도 안 좋고 돈도 아깝잖니.”


그 말을 듣고도 몇 해는 홀케이크를 고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점점 작은 조각케이크 정도로

절충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케이크 없이

용돈 봉투만 내미는 생신 파티가 이어졌다.


부모님의 생신뿐만 아니라

내 생일이나 기념일에도 케이크는

점점 지워져 가는 듯했다.

원래는 신나서 케이크 종류를

몇 주 전부터도 고민하던 나는,

이제 눈앞의 케이크들을 구경하면서도


‘케이크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싸졌지?

살도 찌고 몸에도 안 좋고

좋은 거 하나 없으니 이번엔 그냥 패스할까.’

하는 고민에 잠긴다.


삼시세끼 챙겨 먹고 숨만 쉬어도 버거운 세상인데

케이크가 너무나 커다란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어느덧,

케이크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큰일이었다.

내 삶의 소소한 기쁨이던

케이크가 버거워지기 시작하다니.


이건 내게 커다란 부정적 신호였다.


나이가 들어가고 삶이 버거워진다는 증거였다.


너는 동심을 잃어버린 재미없는 어른이

진짜로 되어가고 있다고,

진열장 속 예쁘고 달콤해 보이는 케이크들이

입을 모아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되어버릴 수는 없다.

케이크를 포기하면,

기념일도 언젠가 흐지부지 지워지고 말 거야.


케이크는 먹는 것 그 이상의 상징성이다.

우리가 우리 인생에 축하하고 축복할 날들이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더 케이크에

집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케이크로 오늘을 기념하며

손가락 틈으로 새어나가는 하루하루를

겨우 잡고 고군분투하여 축복할 것이다.


사랑하는 나 자신, 가족, 친구, 지인과의 기념일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고

무거운 케이크 위에 반짝이는 초 하나를 꽂고

아주 사치스럽게 듬뿍 축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념일이란

바로 오늘이 될 수도 있음을 안다.


케이크를 멀리하지 않고

가까이하기로 다짐함으로써,

인생의 크고 작은 기쁠 날들을

더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된 기념일.


지친 하루하루의 사이에 다가올 기념일 파티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작은 초대장 카드를 보낼 것이다.



‘반드시 케이크도 함께 참석 바랍니다.

크든 작든 생크림이든 초콜릿이든 뭐든 상관없어요.

당신의 인생을 듬뿍 기뻐하고 축복할 용기 있는 마음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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