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안 썼던 책 몇 권들
잘 가, 2016.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늘 독후감을 쓰곤 하는데, 유독 독후감이 잘 써지지 않는 책들이 있다. 대부분 단편집과 아동도서들인데, 그런 책들은 독후감을 따로 쓰기가 애매했달까, 아니면 귀찮았달까. 그것도 아니면, 책을 읽고 난 후 글로 쓸 만큼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 책들을 모아서 한 번에 독후감을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말이다.
가장 위대한 단편 작가라고 알려진 알리스 먼로의 단편집이다. 단편집은 우리 소설이건 영어 소설이건 별로 읽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겐 도전 같은 책이었다. 읽어보니 그녀의 단편들은 유리 안에 들어 있는 예쁜 장난감 집 같았다. 아름답긴 한데 손으로 직접 만질 수는 없고, 모든 것이 환히 들여다 보이지만 나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단편의 묘미도 느끼게 됐다. 단편에서는 한 사람의 전체 일생을 알 수가 없다. 한 사람이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은 어땠으며, 어떤 학창 시절을 보낸 후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지, 이후에 그 사람 인생은 어떻게 진행이 될지, 그런 이야기가 다 나오지 않는다. 그저 주인공의 인생에서 어느 한순간을 떼어서 보여줄 뿐이다. 그런 면에서는 단편이란 우리의 주변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속내를 다 드러낼 만큼 친하지는 않지만, 서로 만나면 안부를 묻고 상냥하게 대화하는 사람들. 그러다 혹시 멀어지더라도 속을 끓이며 그리워하지 않을 사람들. 직장 동료, 동네 주민, 같은 학교 동창생..
우리와 잠깐 자기 삶의 한 단면을 공유하고는 다시 멀어져 가는 사람들. 그건 진심이었을까? 왜 그랬을까? 이다음에는 어떻게 하려는 걸까? 묻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직이나 이사, 졸업과 같은 인생의 갈림길에 도착하면 미련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 그게 바로 단편집의 주인공들이 아닐까 싶다.
역시 앨리스 먼로의 짧은 단편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호평을 받은 이야기다. 결혼한 지 40년이 넘은 노부부. 아내는 그만 치매에 걸리고 만다. 아내는 더 이상 남편을 힘들게 하기 싫어서 그나마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남편에게 자신을 요양원에 입원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자기가 돌보고 싶었지만 아내의 간절한 부탁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남편은 아내를 한 요양원에 입원시키게 된다. 요양원 규정 상(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이유로) 한 달 후에나 겨우 면회가 허락된 남편. 그러나 아내는 이미 남편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랑에 빠졌다. 같은 병동에 있는 다른 남자 환자와.
아내를 다시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할까? 하지만 그녀의 저 환한 미소를 보라. 그녀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하고 있다.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남편은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영화도 꽤 수작이라고 한다. 영화로도 보고 싶은 소설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막시는 여름방학 동안 <스튜어트 리틀(Stuart Little)>이라는 책을 다 읽어야 한다. 하지만 여름방학 동안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막시는 수중 발레 연습도 해야 하고, 다른 책도 읽어야 하고, 키우는 개도 훈련시켜야 하고, 미래에 뭐가 될지 고민도 해야 하고, 방 정리도 해야 한다. 드디어 개학이 코앞에 다가왔다. 막시가 계속 미적거리자 엄마는 급기야 책을 다 읽지 않으면 막시가 연습해 온 수중 발레 공연에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과연 막시는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주인공이 3학년인 만큼, 초등학교 3학년이 읽기에 딱 안성맞춤인 책이다. 길이도 짧고, 편집도 시원시원하게 되어 있는 데다가 막시의 모습을 시시콜콜 보여줄 사진도 잔뜩 들어 있다. 물론 난이도도 쉽고, 재미가 있는 건 덤. (책에 수시로 나오는 Which is~ 문구만 잘 이해하면 독해실력 중급자는 무난히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알리스 먼로의 단편집에 이어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에도 도전해봤다. 사실 이 책은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가장 먼저 알게 됐다. 나는 성격 상 뭔가를 시작하면 처음부터 좍~ 봐야 하는 사람이다. 내가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은 미국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보게 됐는데, 앞에 나왔던 내용이 궁금해서 기어코 1편부터 다 찾아서 보고야 말았다. 안 그러면 너무 불안하달까. 참, 뭐 같은 성격이다.
아무튼, 그 성격 덕분에 <이동진의 빨간 책방>도 최근 것부터 듣지 않고 1회부터(그러니까 몇 년 전 것부터) 죽 찾아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듣게 된 회차가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이 터진 다음에 올라온 것이었다. 진행자인 이동진 평론가는 미리 녹음해 놓은 분량을 방송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녹음을 끝마친 방송이었는데, 팻캐스트 특유의 분위기가 그렇듯 웃으며 희희낙락하며 녹음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이 죽었고, 비극적인 시국에 차마 그런 방송을 틀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 녹음분의 방송은 차후로 미루고, 대신 출판사의 양해를 얻어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에 실려 있는 단편 중 하나인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겠다고 했다. 아마 듣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 거라며.
잔잔하게 이어지는 이동진 평론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정말 그 이야기에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막상 다른 단편들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팟캐스트 방송의 영향이 강력했는지, 십여 편의 단편들 중에서 이미 내용을 알고 있었던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 가장 좋았다. 표제작인 <대성당>도 좋았고.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알리스 먼로의 단편이 더 좋았다. 레이먼드 카버가 위대한 작가임에는 틀림없으니, 이건 내 개인적인 호불호로 봐주시길.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나니아 연대기의 첫 번째(여섯 번째) 작품인 <마법사의 조카>이다. 예전에 영화로 봤던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의 원서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을 작년에 읽었었다. 사실 별 기대 없이 아이에게 읽어주기 위해서 같이 봤는데,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나니아 연대기 7권을 모두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정보를 찾아보던 중 내가 읽은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이 시리즈의 1편이지만, 사실은 2편이라는 걸 알게 됐다. 뭔 소린고 하니, 나니아 연대기는 출판 시기와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시기가 달랐던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읽었던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은 가장 먼저 출간됐지만 이야기 순서 상으로는 두 번째 이야기이고, <마법사의 조카>는 이 시리즈 중 여섯 번째로 출간되었지만, 나니아 연대기 속의 시기상으로는 가장 첫 번째를 다루고 있다. 작가님께서 책을 쓰면서 프리퀄을 쓰다가 속편을 쓰다가 , 왔다 갔다 했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출판된 순서로 책을 읽는 이들도 있는데, 나는 이야기 순서대로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나의 그, 성격 때문이다. 사실 이 시리즈는 출판사에 따라서도 달라진다고 한다. 어떤 출판사는 출간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 출시했고, 어떤 출판사는 이야기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 출시했다. 그래서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 어떤 시리즈에서는 1권으로 되어 있고, 어떤 시리즈에서는 2권으로 되어 있다. 아무튼, 나는 여섯 번째로 출간되었지만 시기상으로는 가장 앞선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마법사의 조카>를 가장 먼저 읽기로 했다.
제목이 너무 재미없게 생겨서인지 이것도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이 책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시리즈다. 영어도 어렵지 않으니 독해 실력이 중급 이상이고 판타지물을 좋아하신다면 원서로 도전해봐도 좋을 듯하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하는 소리지만, 2017년에는 좀 더 책을 열심히 읽어야지, 다짐해봅니다. 하지만 벌써 벌여놓은 일들이 많아서.. ^^;; 그래도 핑계 대지 않고 노력해보려고요.
모두들 연말연시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