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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았는데,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은 걸까?

<스토너> by 존 윌리엄스

by 불이삭금

지루할 정도로 평범한 삶. 마치 우리 인생처럼



처음 책 제목을 들었을 때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무슨 뜻인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 제목과 낯설게만 보이는 표지는 내게 책이 지루할 것 같다는 편견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건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이동진 작가와 김중혁 작가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이 책을 보는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뉠 거 같아요. 끝까지 읽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끝까지 못 읽는 사람이 있을 순 있겠지만, 다 읽은 사람이라면 안 좋아할 수 없는 책인 거 같아요. 이상하게 감동이 있는 책입니다.


나는 책을 끝까지 읽었다. 두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다 읽은 사람이라면 안 좋아할 수가 없는 책이다. 이상하게도, 감동이 있는 책이다.


책의 줄거리만 살펴보면 세상에 이렇게 지루한 책이 있을까 싶다. 시골에서 자란 청년 스토너는 ('스토너'는 사람 이름이었다.) 새로 생긴 대학에 진학해서 농업학을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조언에 생각지도 못하게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농삿꾼인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 자식 뒷바라지를 해주시고, 스토너도 잡일을 해가며 대학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런데 뜻밖에, 그는 사랑에 빠지게 되고 만다. 영문학과 말이다. 농업을 공부해서 자신들을 도와 농삿일을 이어갈 줄 알았던 부모님은 스토너가 대학 졸업 후 영문학을 계속 공부하겠다고 하자 놀란다. 스토너는 결국 대학원 공부를 마저 해서 대학 교수가 된다. 그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대학 교수로서 삶을 영위하다가 은퇴를 하고 삶을 마감한다.


대학 진학 무렵부터 스토너가 죽을 때까지의 삶이 죽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렇게만 적어놓고 보면 굉장히 지루할 것 같지만 의외로 재미있고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리고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166997[1].jpg 내가 읽은 원서 표지. 낯선 제목, 우울한 표정의 사내. 별로 읽고 싶게 생기진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에 표지를 다시 보면 그가 참 짠하면서, 존경스럽다.

책표지 출처: Goodreads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걸까?



그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한 여인을 사랑해서 그녀와 결혼을 했지만, 그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낳았지만, 딸의 인생이 점점 망가져가는 걸 막아주지 못했다. 영문학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영문학을 공부했지만 역사에 남을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그 무엇보다 사랑했지만 정작 그가 은퇴한 후에 그를 제대로 기억해주는 동료 선생님이나 제자는 거의 없었다. 그가 남긴 몇 권의 저서들과 논문들은 학생들이 잘 찾지 않는 도서관 한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을 것이다. 인생이란, 그저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걸까?


그는 문득문득 고민한다.


내 삶이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인가?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삶은 무엇이고, 없는 삶은 무엇인가? 일과 사랑에 성공하면 가치 있는 삶인가? 후세에 길이 남을 명성을 가지면 가치 있는 삶인가? 이렇다하게 내세울 건 없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은, 의도치 않게 계속 실패하고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삶은 가치가 없는가? 스토너가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자문할 때, 책을 읽는 독자들도 저마다 자신의 삶에 대해 뒤돌아보게 된다. 너무나 사소하고 허망하고 잘난 것 없는 내 삶은, 가치 있는 삶인가?


스토너는 소설의 주인공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자신을 옭아매는 결혼생활을 과감히 끊고 나오지도 못하고, 딸을 보호하기 위해 아내에 맞서 싸우지도 않는다. 대학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거의 순응하며 속으로만 삭이고 만다. 뒤늦게 사랑이 찾아왔을 때도 용기있게 그 사랑을 움켜잡지 못한다.


“뭘 망설이는 거야? 그런 아내와는 이혼해버려! 딸은 네가 지켜야지! 이런 대우는 부당하다고 항의해야지! 들이받아야지! 뭐하는 거야!!” 그의 등에다 대고 이렇게 소리치고 싶지만, 사실은 안다. 그는 지금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음을. 남의 일일 때는 손쉽게 말해버리지만, 막상 그게 내 일이 됐을 때는 고민에 고민을 하다 혼자 가슴 속에 묻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더 짠하다. 고구마처럼 답답한 그의 인생이 사실은 현실과 더 닮아 있기에, 사이다처럼 후련한 인생은 스크린 너머 대본대로 읊어 대는 배우들에게만 있기에.


ka3091[1].jpg 한글 번역본 표지. 원서보다 이게 더 멋진 것 같다.


책표지 출처: 북이오



그래도 그를, 보잘것 없는 내 삶을, 응원한다.



스토너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개인사에 가슴이 아플 때가 많다. 그의 삶은 스토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꾸 한쪽이 기울어지는 천막 같았다. 한쪽을 세우면 반대쪽이 무너지고, 반대쪽에 지지대를 세우면 다시 이쪽이 가라앉는. 그렇다고 해서 손놓고 천막이 무너지길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든 가정이든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 사십대에 들어서서도 스토너는 자기 삶이 얼마나 허망한가 하는 것을 종종 깨닫는다. 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근본적인 허탈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지만 스토너는 그 허탈감에 압도당하지 않는다. 누가 알아주지는 않지만 끝까지 문학과 강단에 대한 사랑을 안고 간다. 그렇게, 내세울 것은 없지만 진솔하게 자신의 삶을 살다 가는 스토너의 모습은 진한 여운과 감동을 준다. 그리고 그의 모습에서 우리네 부모님과 나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가 탄력이 붙을 때까지는 좀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일단 궤도에 오르고 나면 끝까지 힘있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자기 인생에 대해 돌아보고 싶다면 아니, 자기 인생을 위로받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나를 깨우는 책 속 몇 마디


1.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직업의 전망, 일자리 수요, 초봉 월급, 경쟁률.. 다 따져보자니 너무 힘들다고? 그렇다면 그냥 자신이 사랑에 빠진 일을 선택하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But don’t you know, Mr. Stoner?” Sloane asked. “Don’t you understand about yourself yet? you’re going to be a teacher.”

Suddenly Sloane seemed very distant, and the walls of the office receded. Stoner felt himself suspended in the wide air, and he heard his voice ask, “Are you sure?”

“I’m sure,” Sloane said softly.

“How can you tell? How can you be sure?”

“It’s love, Mr. Stoner,” Sloane said cheerfully. “You are in love. It’s as simple as that.”

It was as simple as that. (p. 20)


“모르겠나, 스토너 군?” 슬론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갑자기 슬론이 아주 멀게 보였다. 연구실의 벽들도 뒤로 물러난 것 같았다. 스토너는 자신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질문을 던지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십니까?” “정말이지.” 슬론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2.

우리의 삶이 한번이라도 살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다행이다. 이 질문을 나만 던진 게 아니라는 게,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을 해본다는 게.


He found himself wondering if his life were worth the living; if it had ever been. It was a question, he suspected, that came to all men at one time or another. (p. 179)


자신의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기에 직면하게 되는 의문인 것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의문이 이토록 비정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3.


He was forty-two years old, and he could see nothing before him that he wished to enjoy and little behind him that he cared to remember. (p. 181)


이제 마흔 두 살인 그의 앞날에는 즐겁게 여길 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뒤를 돌아보아도 굳이 기억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다.


위에 인용한 2번 문구를 여기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살면서 누구나 이런 기분을 한번쯤은 느끼겠지. 누구는 20대에, 누구는 30대에, 누구는 40대에.



4.


They talked late into the night, as if they were old friends. And Stoner came to realize that she was, as she had said, almost happy with her despair; she would live her days out quietly, drinking a little more, year by year, numbing herself against the nothingness her life had become. He was glad she had that, at least; he was grateful that she could drink. (p. 248)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스토너는 그레이스가 직접 말했던 것처럼 절망을 거의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레이스는 해가 갈수록 술을 조금씩 더 마셔서 공허해진 자신의 삶에 맞서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만들면서 하루하루를 조용히 살아갈 터였다. 그는 그녀에게 적어도 그런 생활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레이스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한국어판 제목: 스토너

원서 제목: Stoner

저자: John Williams (존 윌리엄스)

출판사: New York Review Books

특이사항: 저자가 살아있었을 때는 빛을 보지 못하다가 출간된지 50년이 넘어서, 저자가 죽은지 20년이 다 돼서야 전세계 베스트셀러가 되며 화제가 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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