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내가 영어 교재를 출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해요?”하고 묻는다. 더군다나 내가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한 적도 없고, 배낭여행도 가본 적이 없으며, 외국에 발 한번 디뎌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영어 회화책을 냈다는 걸 알게 되면 소위 ‘국내파’인 내가 어떻게 영어를 공부했는지, 영어를 잘 하는 비결은 뭔지 지대한 관심을 보이곤 한다.
시중에는 어떻게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과 자신이 공부한 방법을 소개하는 책들이 넘쳐난다. 영어를 잘하려면 문법 기초를 확실히 다져야 한다, 귀가 먼저 트여야 입이 열린다, 입말이 먼저다, 영어를 잘 하려면 무조건 많이 읽어라, 문장/패턴을 외워라 등등. 이 중에 어느 것이 맞는 말일까?
다른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어떤 운동이 건강에 가장 좋은 운동일까? 유연성을 늘리는 요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수영, 근육을 키우는 무산소 운동, 심장에 좋은 유산소 운동. 나름대로 장단점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운동은 바로 “자신이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이다. 헬스장을 끊어놓고 일주일만 가고 그만두거나, 온갖 예쁜 요가복을 사놓고도 요가는 안 하고 집에서 홈웨어로만 입고 있으면 제 아무리 좋은 운동이라도 효과가 없다. 자기가 재미있어하는 운동을 꾸준히 하면 그게 뭐가 됐건 최고로 좋은 운동이다. 어떤 운동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운동을 꾸준히 하느냐가 중요하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뭘 공부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꾸준히’ 공부하느냐가 중요하다. 문법도 좋고, 뉴스 듣기도 좋다. 영화로 공부해도 좋고, 교과서를 외워도 좋다. 어느 하나가 옳고 나머지가 틀린 것이 아니다. 영어를 공부하는 데 ‘옳은 방법’과 ‘틀린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내게 맞는 방법’과 ‘나와 맞지 않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서 단 10분이라도 매일 꾸준히 공부하는 게 영어 실력을 늘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매일의 힘'은 결코 얕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매일의 힘'은 결코 얕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뭔가를 꾸준히 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다만 그걸 해내려면 한 가지가 필요한 게 있다. 그건 바로 “영어를 좋아하고 즐기는 것, 나만의 재미를 찾는 것”이다. 하기 싫은 걸 점수를 위해 억지로 한다면 절대로 꾸준히 할 수 없다.
예전에 만난 어느 예술가에게 어떻게 하면 인물 그림을 잘 그리느냐고 물어봤던 적이 있다. 물어보면서도 나는 그가 대답할 말들을 예상하고 있었다. 데생을 많이 해야 한다던가, 잘 그린 그림을 따라 그려 보라던가, 신체의 비율을 알아야 한다던가 하는 그런 뻔한 말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림을 좋아하면 돼요. 그림을 좋아하면 잘 그리게 돼요.”
영어도 그렇다. 영어를 좋아하면 영어를 잘하게 된다.
나는 영어를 좋아한다. 내 경험을 뒤돌아보니 내가 영어를 잘 하는 건 영어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성문 기본 영어’나 ‘성문 종합’ 혹은 ‘맨투맨’ 같은 문법 책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당시 TV에서 영어 강의를 하던 유명한 강사는 팝송으로 공부하는 걸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팝송은 가수들의 발음도 부정확하고 좋은 생활회화 표현이 안 나오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팝송을 좋아했던 나는 팝송으로 공부를 했다. 팝송 가사들을 해석하고, 내가 좋아하던 외국가수들이 나온 영어 잡지를 구해다가 그 기사를 읽었다.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사전을 뒤져가며 한 문장 한 문장 해석해 갈 때마다 내가 직접 그 가수들을 만나는 것 같아서 무척이나 행복했다. 나를 대학에 합격시킨 건 “뉴키즈 온 더 블록”이었다. (아, 연식이 드러난다.)
영어에 대한 내 사랑이 잠시 식을 때가 있었는데, 대학에서 토익공부를 할 때였다. 도대체 왜 토익을 공부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그저 다들 해야 한다니까, 취직하려면 높은 점수가 필요하다니까 나도 공부를 했다. 체계적으로 문법 공부를 하지 않았던 나는 토익의 문법 파트를 무척 어려워했다. 그렇다고 듣기나 독해가 쉬운 것도 아니었다.
영어학원을 다니고, 토익 교재를 사서 공부했다. 각 파트별로 어떤 문제가 나오는지 유형 분석을 하고, 실제와 똑같이 하려고 시간을 재가며 모의 토익 시험도 봤다. 내가 과연 “복사기에 종이가 걸렸다”는 말을 영어로 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무작정 외우고 공부했다. 그 당시 나는 고득점을 해야 한다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토록 좋아했던 영어인데, 토익은 꼴도 보기 싫었다. 800점은 넘겼는데, 900점은 넘사벽처럼 보였다. 다른 친구들도 600점에서 800점으로 올리긴 쉬워도 800점에서 900점으로 올리는 건 굉장히 어렵다고 겁을 줬다. 각고의 노력 끝에 900점을 턱걸이로 넘겼을 때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당장 토익 책을 던져버렸다.
그 후로 토익은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난 영어를 좋아했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영어와는 계속 친하게 지냈다. 영어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영화와 미국 드라마를 보고 또 봤다. 점수를 내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거였기 때문에 ‘공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흐른 후 내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점검도 할 겸 토익 시험을 또 봤다. 그간 정석적인 영어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점수가 더 떨어졌을 거라 생각했다. (영어 소설을 읽거나 영화와 미드를 보는 건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즐긴 거니까.) 그런데 나는 내 평생 가장 높은 토익 점수를 받았다. 영어를 좋아하고 즐기니까 영어를 꾸준히 하게 됐고, 영어를 꾸준히 하니까 영어 실력이 는 것이다. 진작에 즐기면서 할 걸. 스트레스 받아가며 공부했던 게 억울하기까지 했다.
모든 사람이 영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신이 이미 좋아하고 있는 것과 영어를 접목시키는 방법도 있다. 영어소설이나 팝송, 영화나 드라마도 아주 좋은 매개체이다. 책을 보는 게 지겹다면 TED 동영상이나 유투브 동영상을 활용할 수도 있고, 쇼핑을 좋아한다면 해외 직구 사이트를 둘러볼 수도 있다. 하다 못해 아마존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상품(책이건, 화장품이건, 인형이건 간에)의 평을 영어로 읽어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된다. 뭐가 됐건 꾸준히 영어를 붙잡게 만드는 '재미'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영어를 좋아하고 즐기라고 하면 사람들 반응은 시큰둥하다. 마치 맛집 비법을 알았을 때랑 비슷하다. 맛집 비법을 알게 된 사람들은 대게 이렇게 반응한다. “뭐야, 결국 MSG랑 설탕이었잖아. 그걸 누가 못해?”하며 무시하거나, “천연 조미료를 10개나 쓰고, 소스는 7시간 동안이나 끓여야 한다고? 바쁜 세상에 언제 그러고 있어? 그냥 사 먹고 말지.”하고 포기해 버린다. 내 얘기를 들어도 같은 반응이 나온다. “영어를 좋아하면 된다고?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를 누가 못해?”하며 무시하거나 “당장 시험 점수가 급한데, 언제 재미 찾고 앉아 있어? 그냥 학원에 다니고 말지.”하고 포기해 버린다.
영어를 좋아하지도 않고 재미를 찾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그냥 재미가 없더라도 꾹 참고 꾸준히 하는 수밖에 없다. 문장을 통째로 외우든, 영화를 보든, NPR 뉴스 받아쓰기를 하든 상관없다. 매일 10분이라도 꾸준히 하라. 공부는 괴로울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영어 실력은 보장될 것이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지치지 않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고 싶다면 내가 말한 비법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영어를 좋아하고, 영어에서 나만의 재미를 찾는 것. 그렇게 즐기며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당신의 영어 실력도 꽤 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