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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이삭금 Nov 07. 2024

관제 센터, 들리나?

나는 농담이다 by 김중혁

제목: 나는 농담이다

저자: 김중혁



달에 착륙한 우주인을 그린 책 표지. 아, 참고로 책에서는 달에 가는 내용은 없다.

출처: 교보문고



낮에는 컴퓨터 수리공이지만 밤에는 코미디 클럽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남자 송우영. 얼마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짐을 정리하다가 그녀가 미처 부치지 못한 편지를 발견한다. 자신의 이부형제인 이일영에게. 그에게 편지를 전하러 길을 나서지만, 이미 이일영은 실종이 된 상태다.


그는 편지를 전할 수 있을까.



그들의 소리는 이어졌을까


송우영, 아마추어 스탠드업 코미디언.

어둠에 묻혀 캄캄한 객석에 개그를 던지는 남자.

자신의 코미디가 먹힐지, 관객이 웃어줄지, 아니 그들이 애초에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들여 개그를 짜고 미끼 없는 낚싯바늘을 던지듯, 허공에 개그를 던진다.

누군가는 낚여 웃어주기를 바라며.


이일영, 아무것도 없는 우주에 홀로 남은 남자.

우주선에 문제가 생겨 홀로 우주에 남은 남자.

그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공간.

누가 들어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가슴속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는다.


송우영의 어머니, 모든 것을 아는 여자.

받을 수도, 보낼 수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편지를 쓴 어머니.

어떤 말은 몸 밖으로 밀어내야만 하기에.

이 작은 몸뚱이 안에 가둬만 놓으면 폭발할 거 같아서.





저 세 사람의 마음은 이어졌을까.

서로에게 가 닿았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나 그러지 않나.

누구라도 좋으니 내 말을 들어주길.

듣고 웃어주길.

듣고 공감해 주길.


마치 어두운 바다에 띄우는 SOS 신호처럼.



송우영보다는 이일영에 더 마음이 갔던


이 책은 때로는 송우영, 때로는 이일영, 때로는 이일영의 애인인 강차연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송우영이 나오는 부분은 마치 내가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앞에 술 한 잔 놓고 어둠에 숨어 아마추어 코미디언 송우영의 삼류 개그와 성적인 농담들을 듣는 기분. 왠지 쿰쿰한 술집 냄새까지 날 것만 같은 생생함.


하지만 그 부분보다 이일영의 파트가 훨씬 좋았다. 홀로 우주에 떨어진 그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사실 그의 상황은 몹시 특수한 건데(우주 미아가 되는 경험을 누구나 하지는 않을 테니) 왠지 그의 모습은 보통 사람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결국 죽으니까.

굳이 힘들게 훈련받고 먼 우주에 나가지 않더라도

누구나 살다 보면 무서움, 두려움, 외로움, 고독, 미련, 후회를 느끼니까.


그래서일까. 내게는 송우영보다 이일영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자신이 녹음하는 것이 지구에 도달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가슴속 말을 늘어놓는 이일영에게.


누구나,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결국 입을 여니까.


어쩌면.

내가 웹소설을 쓰는 것도.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것도.

홀로 녹음하는 이일영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관제 센터, 들리나?

여기 글을 쓰는 한 작가가 있다.

관제 센터.......






내가 사랑한 문장들


1.

송우영과 송제니 둘 다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엄마 물건'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었다. 엄마는 사라지고 물건만 남아 있다는 게 어떤 일인지 깨닫고 있었다. 엄마에게 돌려주고 싶어도, 다른 사람이 건드리지 못하게 지켜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됐다. 소유한 사람이 물건보다 먼저 사라지고 나면, 소유라는 건 의미가 없어진다. (p. 28)


2.

나는 지금 우주에 있지만 동시에 지구의 우리 집 마당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기가 어디일까. 대체 어디일까. 관제 센터에서 딱 한 줄의 메시지만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여기가 어디인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X-40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시스템을 리부트 했지만 달라지는 게 없다. 신호를 여러 번으로 나눠 전송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전송 버튼을 누르겠다. 다시 한 번 말하겠다. 관제 센터,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내가 있는 곳을 모르겠다. 알려줄 수 있다면, 그것만 알려 주길 바란다. (p. 39)


그는 지금 자신이 우주의 미아가 되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있지만.

실상 지구에 두 발 붙이고 살면서도 모르는 사람들 천지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3.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할아버지를 생각해. 미래는 돈이 될 수 있지만, 돈을 절대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거든. (p. 79)


그럼 미래를 보장해 주는 건 뭘까.

학력?

권력?

인맥?


4.

물결 속에 들어 있는 물결 같다. 구름 속에서 흘러가는 구름 같다. 어딘가의 내부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있다. 설명할 길이 없다. 관제 센터, 들리나? (p. 96)


아무것도 없고 캄캄한, 발 디딜 곳도 없고 잡을 것도 없는, 위도 아래도 없는 우주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을 잘 묘사하고 있다.

정말 저런 느낌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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