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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이삭금 Oct 31. 2024

우리 동네에도 이런 서점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by 이도우

제목: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저자: 이도우




출처: 교보문고



드라마로 알게 된 책.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잖아?


도서관에 들러 한국어 책 섹션을 열심히 훑었다. 볼 만한 재미있는 책이 있는지 찾기 위해. 그때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일전에 드라마로 재미있게 봤던지라 책도 선뜻 골라 들었다. 그러면서도 별로 기대가 되지는 않았다. 드라마를 이미 봤으니까.


그런데 의외로 책이 무척 재미있었다. 드라마와 상당 부분 비슷하게 흘러가는데도 책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건 왜일까.

드라마로 봤던 배우를 떠올리며 읽기 때문일까. 아니면 작가의 필력 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겠다.


<굿나잇 책방> 우리 동네에도 입점이 시급하다


미술 강사로 일하다가 각박한 현실에 마음을 다쳐 다시 고향으로 내려간 해원. 한때는 민박집으로 운영했지만 지금은 온통 망가져서 이모 혼자 사는 이 층집 '호두 하우스'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려고 했는데. 고향에서 뜻밖의 공간을 발견한다. 논밭이 펼쳐진 시골 마을에 생긴 독립 서점 <굿나잇 책방>.


이런 시골에 책방이? 그것도 독립 서점이?


굿나잇 책방의 주인은 학교 동창인 은섭. 둘은 책방을 매개로 점차 가까워지는데.



동명의 드라마. 두 주인공과 배경인 서점을 잘 그려냈다.


그런 남자 없습니다.


내용도 잔잔하니 재미있고, 깨알같이 웃긴 포인트도 있고. 낭만을 자극하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읽으면서 한 가지 불만인 점이 있었다. 남자 주인공 은섭을 너무 '판타지'로 그려놨기 때문.


마음씨는 바다처럼 넓고 심성도 곧으며, 아이들하고도 잘 놀아주고 이해심도 깊다. 읽는 좋아하고 쓰는 걸 즐기며 무려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남자가 얼굴까지 (드라마에서는) 서강준이라니. 이런 남자가 진짜 존재하긴 하는 걸까.


책 좋아하는 여자들의 로망을 한 군데 모아 놓은 게 은섭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로맨스가 아니라 판타지 장르인 걸로.



내가 발견한 오타들


책에서 가끔 오타를 발견하곤 하는데, 이 책에서는 무려 세 군데나 발견했다. 아, 하나는 오타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하나.

해원은 턱에 손을 괸 채 멍하니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p. 209)


=> '괴다'라는 말은 '기울어지거나 쓰러지지 않도록 아래를 받쳐 안정시키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정확히는 '턱을 손에 괸 채' 혹은 '턱을 손으로 괸 채'라고 해야 한다.


둘.

명여는 마음이 추운 사람처럼 카디건을 여기며 조용히 대꾸했다. (p. 363)


=> '여미며'가 맞는 말이다.


셋.

숲은 추워도 서로의 입술을 따뜻했다. (p. 395)


=> '입술은'이 맞다.


이 오타들을 발견한 책은 2018년 7월 5일 초판 3쇄 발행본이다. 후에 나온 책에서는 오타가 수정되었을지도.






내가 사랑한 문장들


1.

해원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필요한 것. 과연 내게 뭐가 필요할까. 요즘은 딱히 원하는 게 없었다. 다 가진 것도 아니면서. 실은 가진 게 거의 없다시피 한데. 정말 자신에게 뭐가 필요한지 모르겠는 마음이었다. (p. 36)


나도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일까.


2.

그래도 연말이 다가오는데 이모와 무엇인가를 축하하고 싶었다. 축하할 일이 없다면 아무 일이 없다는 걸 축하하면 되니까. (p. 40)


축하하면, 또 축하할 일이 생기더라고.


3.

"글쎄... 잘 자면 좋으니까. 잘 일어나고 잘 먹고 잘 일하고 쉬고, 그리고 잘 자면 그게 좋은 인생이니까."
"인생이 그게 다야?"
"그럼 뭐가 더 있냐? 그 기본적인 것들도 안 돼서 다들 괴로워하는데." (p. 54)


맞네. 인생 뭐 있나. 그게 다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좋은 인생을 살고 있는 거 같아.


4.

"살면서 가끔 괴로울 때 그 책을 다시 읽는데 그냥 나한테는 그런 책이야."

해원은 가만히 끄덕였다. 수십 번 읽어서 반들반들 닳아버린 책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 부러움이나 질투였는지도 몰랐다. 그녀에겐 이렇게 닳을 만큼 아끼고 싶은 것이 있을까. (p. 58)


5.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반지 끼워주고 싶은 손가락이 그 속에 있는 거거든. (p. 66)


6.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남겨둔 밤, 작자미상의 글을 읽고 싶다. 지은이가 누구인지 영영 잊혀져버린 시와 산문들. 누가 썼는지 몰라 저작권료를 줄래야 줄 수 없는, 미안하고 소중한 이야기들. (p. 119)


7.

"나는 그 말이 싫어. 오해라는 말."
두 남자의 동작이 멈췄다.
"뭐가 오해야? 그냥, 잘못했으면 잘못했다, 실수였다, 미안하다 그러면 되는 거지. 오해하셨네요. 뭔가 오해가 있으셨나 봅니다. 오해를 풀어드리려고요.... 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까."
장우는 새삼 술이 깨는 눈빛이었다.
"누가 뭘 오해했다는 건데. 그건 두 번 상처 주는 거야. 오해할 만큼 이해력이 모자랐거나 독해력이 떨어졌거나. 의사소통에 센스가 없어서 혼자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그거 아니잖아. 오해는 없어. 누군가의 잘못이 있었던 거지. 그걸 상대방한테 네가 잘못 아는 거야, 라고 새롭게 누명 씌우지 말라고." (p. 132)


8.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까지 독립출판을 시작하는 게 현명한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거고.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그걸 했을 때의 인생을 영영 모르게 될 테니까. (p. 254)


9.

그들은 내가 그걸 아프게 여기길 바랐었지. 어딜 가나. 어릴 때도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존재들은 있기 마련이다. 어째서 너는 불행하지 않지? 어째서 그렇게 태연하고 덤덤하게 살 수가 있지? 너는 뒷산 오두막에서 살던 놈이 아니었던가? 네 아버지는 부랑자였잖아? 왜 너는 주눅 들지 않는 거지? 같은 질문들과 비난들.
...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는 불행하고 슬퍼야 하나? 그들은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불행할 조건이 갖춰졌는데 어째서 불행하지 않은 거야, 라는 폭력적인 질문. 그 질문이 옳은가.
...한참 생각해봤지만 역시 아니었다. (p. 255)


10.

죽기엔 그때의 해원이 덜 아팠던 것일까. 하지만 아픔의 크기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많이 아프다고 누구나 세상을 버리는 건 아니었고, 남은 사람은 덜 아파서가 아니라 살아가려고 끝까지 애썼기 때문이었다. (p. 271)


11.

인생은 그리 길지 않고 미리 애쓰지 않아도 어차피 우리는 떠나. 그러니 그때까지는 부디 행복하기를. (p.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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