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와 전쟁을 치르던 열아홉 살, 그 입시와의 전쟁을 내 손으로 끝낸 스무 살, 그리고 살과의 전쟁을 시작한 스물한 살이 한 달이 채 안 남았다. 그리고 나에게 겨울이 또 온다. 한 껏 성숙해져보려 했지만, 늘 수포로 돌아가는 나의 일상기.(웃음)
여러 해의 겨울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열아홉 살, 아침에는 눈 뜨기 싫어서 지각하고, 저녁이 되면 이따금씩 울고 새벽에는 잠에 들기 싫어서 여명이 밝아야 잠에 들었었다. 주말에는 스무 시간 가까이 잠에 빠졌고 늘 일어나 보면 해가 중천이거나 세 시쯤이었다. 일어나서 아침밥은 무조건 많이, 점심은 학교 급식, 저녁에는 석식을 먹고도 매점에 갔다. 당 충전을 위한 간식들은 늘 주머니에 있었으며, 일과 후 집에 돌아와서 먹는 야참은 꿀맛 같았다. 노량진 인근의 저렴한 마트에서 캔 커피를 공수해서 야간 자율 학습 시간마다 먹었고, 친구들과 패스트푸드를 즐기는 건 일상 다반사였다.
이때의 나는 야간 자율학습실 삼 년 우수생이었고, 기억하는 모든 순간에 공부를 하거나 공부를 계획하고 있었다. 시간을 십 분 단위로 쪼개 놓은 플래너에 순수 공부시간을 적어 넣으며 어제의 나, 그제의 나와 비교하며 내일의 나를 채찍질했다. 사실은 지금 몇 시인지 현재 시간 감각도 잃은 채로 살았는데 말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더 무엇인가 붙들어야만 했다. 아마 그 대상은 성적이 오를 거라는 희망을 주는 것들과 당장에 희망을 주는 음식들뿐이었다.
그 해 겨울, 나는 수시로 서울의 모 전문대학에 들어갔고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1년 휴학을 했다. 반수를 위해서였다. 학교를 다니는 도중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그 후에는 월 15000원 공립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집에서 도시락을 싸갔다. 당연히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이 연속되어서였을까. 나는 폭식을 멈출 수는 없었다. 원래도 소아비만이었지만, 1년에 20kg 가까이 쪘었다. 늘 마음속으로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사실 하나도 괜찮은 건 없었다. 친구들과도 연락을 잘하지 않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식습관, 수면 패턴으로 망가진 몸이 수능이 다가와서는 말을 듣지 않았다. 몸과 정신이 무기력 해지고 차마 더 이상 뭔가를 해볼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사실 나의 반수를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상황들을 나 혼자 감내해야 했고, 돈을 모으거나 벌어서 공부에 투자해야 했다. 그렇게 나의 모든 순간들을 저버리고서라도 그간 간절히 원했던 것들을 얻고 싶었다.
스무 살, 나는 홀로 마지막 수능을 맞았다. 결과는 국어 시험 중 일부 답을 OMR 카드에 적지 못하는 것으로 실수라기엔, 너무나 나 자신에게 못할 짓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미친 듯이 문제만 풀었던 것 같다. 진짜 미쳤었지. 수능을 치는 동안 간신히 정신을 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당연하게도 나의 아름다웠던 꿈을 단념해야만 했다. 그리고 무엇을 열심히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수능장 문을 나가는 순간, 무언가라도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다.
수능 날 이후로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나날들이었다. 나를 믿어 준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고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솔직히 영원히 잠들고 싶었다. 그 죄책감과 책임감과 나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 성격은 파탄 나고 눈을 뜨면 음식을 먹어댔다. 나는 스무 살의 일부를 망가진 몸과 정신으로 그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스물한 살이 되었다. 복학은 같은 해 8월에 예정이었고 나는 새롭지 않은 새 해를, 어쩌면 처음으로 입시에서 벗어난 첫 날을 맞고 있었다. 나는 별 다를 것 없이, 관성대로 삶을 살아가던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