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첫사랑 셜록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의 시간은 이미 다 지난 일인 것을 안다. 그럼에도 한때 세상을 같이 살아왔던 사람으로 우리 둘은 서로에게 의지했다. 아니. 내가 셜에게 일방적으로 기댔다. 삶의 어느 시점에는 셜이 가진 반문화, 히피스러움이 너무나 증오스러웠다. 내딴에는 왜 저런 것을 하냐며,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 아니냐며 말이다. 계급주의를 타파하고 급진적인 세상을 이룩하자던 운동권의 말이 내 귀에 들릴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난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고 세상이 달디 단 곳이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셜의 조언이 필요했다. 혼자 어떻게 세상을 견디며 살아왔는지 셜에게 물어보고 싶어서 말이다. 아니 좀 더 이기적으로 말하자면, 나 좀 살려달라고, 여긴 이 세상은 무서운 곳인 거 같다고, 당신이 내게 꼭 필요하다고 말이다. 언젠가는 셜이 없는 세상에서 나는 강인하게 살아가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도 울고 불고 하고 그래도 바뀌지 않는 세상을 보며 나만의 세계관을 구축해야겠지만 지금은 셜의 품에서 살고 싶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묻던 상우도, "상우씨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라고 한숨 짓는 은수도 "라면 먹고 갈래요?"라고 묻던 연애 초반이 있었다. 상우는 나 사랑하는 사람 생겼다고 친구에게 힘껏 외치는 시간에 은수는 연애 사실을 숨겨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말이다.
영화 내내 두 사람의 사랑의 온도는 같지 않았다. 수줍게 첫사랑을 하는 상우와 "열정" 상우를 귀엽게 보는 은수의 사랑의 온도는 어쩌면 같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것이 피차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며, 두 사람만 겪는 일도 아니다. 사랑의 감정선이 같은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우리가 《봄날은 간다》를 깊게 이해하고, 오래 기억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은수가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이었는가 묻는다면, 그건 아니올시다. 상우가 서툰 사랑을 한다고 해서 마냥 숙맥이었는가 하면 그건 아닐 것이다. 그저 사랑이 왔을 때봄날은 가고 있던 것이다. 인간은 시간을 잡을 수 없고 추억으로만 사랑을 기억한다면, 봄날이 마냥 제 자리를 지키며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봄날은 간다》의 마지막 장면
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햐, 상우가 자기 감정에 못 이겨서 욕한 선배님한테 엄청 빌었겠구나."싶었다. 선배는 욕하는 상우의 모습에 어리둥절 했을 것이다. 헤어진 건 헤어진거고 공과 사 구분은 했어야 했는데 상우는 그만 홧김에 후임 구하라는 말과 함께 직장을 그만둬버린다. 감독님의 의도는 영화 속 상우의 미숙함을 표현하려고 했을 것이겠지만 고물가 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그만 경악을 금치못했다ㅋㅋㅋ.(식겁)
백수(=나)는 웃지말자.
사랑이 찾아온 순간, 봄날은 간다.
이영애 배우와 유지태 배우의 말갛고 뽀얀 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라서 좋았다. 《봄날은 간다》는 내가 3살 때 나온 영화라고 한다. 이제는 상우와 은수 모두를 머리로는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나도 상우처럼 살고 있는가 싶어서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데헷. 사랑하는 자들이여, 그 대상이 무엇이든 건강하게 사랑하고 있다면 그대들은 축복받았다. 봄날처럼 기억될 든든한 추억이 삶을 지탱해 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