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니 Feb 07. 2021

아이의 감정에  함부로 이름 짓지 않기

  엄마들은 이모저모 각자의 철학과 기준을 갖고 아이를 기릅니다. 철학과 기준은 다르지만 엄마들의 공통된 생각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좋은 엄마의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어서 사람에 따라 기준이 매우 높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기준 중에 좋은 엄마의 기준으로 삼는 것 중 하나는 공감해주는 엄마입니다. 공감해주는 엄마의 다른 의미는 소통을 잘하는 엄마겠지요. 공감은 관계 형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단어이기 때문에 육아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어른들도 공감을 잘해주는 사람과 있으면 소통이 잘 되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공감은 언어 이외에 표정이나 다양한 동작의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감 잘 못하는 엄마예요!”라고 하는 엄마가 있다면 공감에 특별한 기술은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우선은 아이가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의 깊게 들어보려는 태도가 중요하겠지요. 특별히 어떤 언어로 반응해 주지 않더라도 표정으로 대답해 줄 수도 있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끔씩 이해가 안 되는 말들을 되물어주는 과정에서 아이는 엄마에게 공감을 받습니다. 결국 경청만 잘해도 상대는 공감받는다고 느낍니다.

  요즘 엄마들은 공감을 잘합니다. 아이가 친구관계에서 부당함을 느끼거나 화가 났을 때 엄마에게 문제를 가지고 오면  상황을 되묻고 판사처럼 굴기보다 공감을 먼저 해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음은 6살 재희 엄마의 사례입니다. 재희 엄마는 공감을 잘하는 엄마입니다.  6살 재희는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짜증을 많이 냅니다. 엄마는 재희랑 만나서 반가운데 보자마자 짜증을 내는 재희를 보면서 받아주다가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되니 어느 날은 화도 냅니다. 그래도 재희 엄마는 육아서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한 엄마라 재희의 마음을 읽어보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재희의 짜증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유치원에서 뭔가 일이 있었겠구나 싶어 얘기를 들어봅니다.


엄마:“재희야 유치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재희: 음... 오늘 설아가 나하고 놀아주지 않았어!

엄마: 그래? 그랬구나. 속상했겠다.

재희: 어..

엄마: 설아랑 무슨 일이 있었어?

재희: 내가 민찬이랑 엄마, 아빠 놀이하고 있었는데 설아가 갑자기 와서 자기도 하겠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안          된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나한테 나쁘다고 했어. 나중에 내가 놀자고 하니까 나랑 안 놀겠다고 했어.

엄마: 설아가 왜 그랬을까? 너무 속상했겠다.     


얘기를 들어보니 재희가 먼저 설아를 속상하게 한 이 상황에서 엄마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요? 갑자기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가해자가 되었네요. 재희 엄마는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어요. 재희에게 설아가 화난 이유에 대해 얘기하자니 재희가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엄마의 얘기를 듣지 않을 것이고, 무조건 재희 편을 들자니 재희는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할 것 같아 아무 말도 못 하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공감에 너무 집중을 하다 보면 훈육이 잘 안되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반응을 하면 자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니 이 또한 훈육을 실패하는 원인이 됩니다. 재희 엄마의 고민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마음을 공감해 줘야 하는 역할과 가르치는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는 사람이라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재희 엄마가 놓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내 생각대로 아이의 감정을 단정 짓는 것은 오히려 진정성이 떨어집니다. 재희 엄마는 재희의 기분을 살핀 후 재희의 기분에 대해 물어봐 주는 엄마죠. 게다가 섣불리 가르치려고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감 잘하는 재희 엄마가 몇 가지 놓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선 재희에게 “속상했겠다!”라고 이야기 한 부분을 볼게요. 엄마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아이의 감정에 함부로 이름을 다는 거예요. 이것은 아이의 감정을 함부로 침범하는 것이라 조심해야 합니다.

재희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재희의 감정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서 재희에게 그래서 기분이 어땠는지 물어봐야 합니다. 재희는 그때 속상했다는 말 대신 서운했다. 화가 났다.라고 얘기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 그때 그 기분을 함께 공감해 줘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공감입니다. 만약 재희가 느끼지 못한 감정을 엄마가 얘기하면 재희 또한 자신의 감정에 잘못된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재희의 사례를 다시 보면 엄마가 놓친 것은 또 있습니다. 재희의 상황을 언어로 정리해 주고 질문하기입니다. 속상했다는 말 뒤에 마지막 대화에서 재희 엄마는 재희에게 옳고 그름에 대해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혼란이 왔습니다. 이때 재희의 감정을 읽어준 후 설아가 왜 같이 놀지 않겠다고 했는지 알면 엄마한테도 알려달라고 하세요.  

재희의 감정이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는 엄마의 훈육이나 조언이 먹히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속상한 마음을 공감만 하면 되지만 간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지면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엄마:“재희야 아까 해준 얘기 엄마가 더 듣고 싶은데, 민찬이랑 요즘 잘 놀아?

재희: 어.. 소꿉놀이하고 놀아.

엄마: 아.. 그렇구나. 그런데 갑자기 설아가 와서 같이 놀자고 한 거야? 그런데 설아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었어?

재희: 아니.. 설아는 자꾸 자기가 엄마를 한다고 해! 그래서 안 된다고 한 거야!

엄마: 아! 예전에 같이 소꿉놀이를 했었구나!

       그런데 재희야 설아가 왜 너랑 안 논다고 했는지 알아?

재희: 몰라.. 음. 내가 안 논다고 해서?

엄마: 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러면 설아가 속상해서 재희한테 놀지 않겠다고 했을까?     


  이 이상 재희가 알아야 할 게 더 있을까요? 재희는 설아에게 수동 공격을 했습니다. 수동적 공격성은 자신의 불만을 소극적이고 간접적으로 표출하는 행동인데요. 여자 친구들의 경우 대상에게 화가 나면, 은근히 따돌리거나 대답을 하지 않고 무시하는 행동을 합니다. 재희는 그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엄마 역할을 번번이 설아에게 뺏겼을지 모르겠어요. 일단 미워하는 마음이나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성장과정에서 대상에게 갖는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이죠. 이것을 나쁘다고 나무라기가 어려워요. 재희가 경험하고 있는 유치원 친구들 간에 벌어지는 미묘하고 소소한 감정들을 엄마가 객관적으로 다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그동안 말은  못 했지만, 설아와 이런 비슷한 일이 많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상태에서 이 문제를 재희의 잘못으로 몰아세우기는 조심스럽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재희가 상황 파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설아에 대한 감정이 어떤지 대화를 통해서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다음은 재희의 몫인 것 같아요. 재희가 버스에서 내려 제일 먼저 엄마에게 이 문제를 꺼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실 재희는 설아한테 화가 나서 이야기를 시작한 게 아니라 자신이 설아를 놀이에 끼어주지 않아서 마음이 불편해서였으니까요. 그러니 엄마가 이 일에 대해 잘못을 따져 묻는다면 재희는 입을 닫겠죠. 재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풀고 싶은지를 중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 됩니다. 엄마는 이 과정을 통해 재희의 마음을 확인하고 잘 들어주면서 감정을 털어 내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먼저 사랑해 준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